한 심리학자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TV가 원시인들이 모닥불을 피워놓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도 캠핑을 가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장작이 타오르는 것을 보며 나무가 자작자작 타는 소리를 듣는 것은 하염없이 평화롭다. 그 따뜻한 온기와 소리가 좋아서 장작을 계속 밀어 넣곤 했다.
'불멍'이라고 불리는 모닥불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을 요즘엔 유튜브로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예전 아내들이 모여 남편 흉을 볼 때면 남편이 일터에서 돌아와 씻고 밥 먹고 제일 먼저 하는 것이 TV를 켜고 소파에 눕는 일이라고 하소연들을 했다. 집마다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독서를 하거나 TV가 없어 다른 취미를 가진 집들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굳이 TV를 켜는 대신 휴대폰을 바라보는 일도 많기 때문에 휴대폰 보기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시청하고 웹툰을 보는 등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것들이 있다. 아이들도 학교를 다녀오거나 학원을 가기 전 시간이 날 때마다 휴대폰을 붙들고 있어 집마다 전쟁이 벌어진다. 이쯤 되면 전 국민 TV나 핸드폰 중독증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은데 우리는 왜 이러고 있을까.
쉬는 틈에 자거나 다른 것들을 할 수 있는데 TV를 켜고 뉴스나 드라마를 보고 예능을 보며 쉰다고 한다. 쉬는 사이 휴대폰으로 웹툰을 보거나 유튜브를 시청하며 쉰다고 한다.
TV 멍, 핸드폰 멍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보며 쉰다.
오늘 일터에서 겪었던 일로 인한 스트레스,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느낀 피로감에 지쳐 다른 즐거움을 찾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 손안에 들려져 있는 핸드폰이고 리모컨으로 틀기만 하면 나오는 TV가 아닐까.
하루종일 숨이 턱에 차도록 바빴을 나에게 주는 유일한 안식이자 위로가 전자 제품 속의 세상이다. 그 속에서는 현실에 발 묶인 나 대신 여행을 가고 나 대신 맛있는 것을 먹어준다. 마음고생하며 인간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다. 깔깔거리며 친구처럼 웃어주고 이야기하고 마음을 위로해 준다. 필요한 정보도 검색하면 영상으로 친절히 설명해 주고 알려준다. 친구를 만날 만큼의 에너지도 없이 집으로 터덜터덜 들어온 사람들을 덜 외롭게 해 준다. 맛집을 찾으러 다니는 것조차 힘든 이들 대신 먹방을 해준다. 지금 만나는 사람들과 인간관계만으로도 버거운 사람들에게 다양한 이들이 사는 세상을 보여주고 삶을 들려준다.
더 넓게 확장된 세상 속에서 어쩌면 사람들은 더 공허해지고 더 외롭다. 작은 마을에서 살아야 했던 시절보다 갈 곳도 많아지고 먹을 것도 많아졌지만 보고 듣고 아는 게 많아질수록 더 피로하다.
멍하니 영상 속의 사람들이 발로 뛰어 쵤영한 세상을 대리 체험하고 상상 속을 이야기를 풀어낸 드라마나 웹툰을 보며 현실을 잠시 내려놓는다.
껐을 때 다시 고단한 현실로 돌아오고 켜면 언제든 외롭지 않은 세상으로 연결된다. 도란도란 온기 어린 모닥불에 둘러앉은 것만 못하지만 그런 기분은 낼 수 있으니 우두커니 방 안에 혼자 있어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