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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Jun 14. 2021

새벽의 다림질

당신과 나의 보통의 날들

모두 잠든 새벽, 다림질을 한다. 덜 마른 머리는 선풍기를 틀어 말리면서 뜨거운 증기를 뿜어내는 다리미를 들고 나는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한다. 다리미가 내뿜는 증기가 가끔 손에 닿아 뜨겁다. 그래도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점점 펴지는 옷감을 당기고 펴며 다리미질에만 몰두한다. 살림 중 가장 좋아하지 않는 일이 다리미질이다. 뜨거운 증기, 반복되는 동작, 불편한 자세, 쉽사리 펴지지 않는 옷감에 뜨거운 기계를 수십 번 갖다 대며 팔이 아프도록 주름을 펴내는 과정이 내게는 유독 힘이 들어 기피하는 일이다.  옷 세탁은 그리도  열심히 하면서도 다리미질은 제일 싫어하는 집안일이다. 주름이 펴진 옷을 보는 것보다 과정의 힘듬이 시작 전부터 기를 꺾는달까.


녹록지 않은 이 일을 새벽에 하는 이유는 나의 고단한 하루에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날 듯 말 듯한 상태로 선풍기 바람을 쐬어가며 뜨거운 증기로 옷이 펴질 때까지 주름만 펴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었기에 차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고 사방이 고요했다.  이 새벽시간은 월요일을 앞두고 다들  집에서 조용한 휴식을 취하기 때문인지 일주일 중 가장 조용한 시각이다. 무심하게 동작을 반복하며 혼자 있기에 좋은 시각이었다. 그랬다. 그 시각은 타이밍이 절묘하게 선풍기가 윙윙 돌아가는 소리와 쓱쓱 다리미 지나가는 소리가 전부였다. 팔이 아프고 증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아 내가 다림질을 멈추기 전까지 나는 옷감의 주름을 펴는데 열중했고 그 시간은 단순히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몸을 고되게 하는 일이 때로는 고달픈 정신을 쉬게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토록 싫어하던 다림질이 그날  고요한 새벽, 온전히 혼자 앉아 있는 나의 머릿 속도 다려주는 것 마냥 정갈하게 해 주었다. 오른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이 아플 만큼 다렸으니 어깨는 욱신거렸고 선풍기 바람으로 머리칼은 말랐다. 눈물로 젖을 뻔한 나의 눈가도 말랐다. 수많은 상념과 근심으로 가득 찼던 내 머릿 속도  산뜻해지고 마음의 어지러움도 쫙쫙 펴지지는 못했어도 누그러졌다.

십 대의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로서의 나의 마음은 불안하고 평온하지가 않았다. 오늘도  화기애애하게 저녁을 잘 보내다가 작은 일로 아이는 눈물 바람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나의 마음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뒹굴었다. 요즈음 나를 마구 헤집어대는 상처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여 불면의 밤을 보내거나  많은 걱정을 안고 잠이 드는 날이 많았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이리라. 저도 얼마나 힘들겠는가 하고 수없이 되뇌고 아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안고 토닥이는 시간을 갖고 나면 어머니로서의 나는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집 앞 공원을 걷고 또 걸어도 그랬다. 집에 오면 나는 무한히 반복되는 집안일과 끼니 챙기기, 몸집은 다 커버린 아이 마음 살피기 그 살얼음판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어머니로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다들 그렇겠지만 나의 몸과 마음은 자꾸만 돌보지 못하고 미루어졌다. 내가 뭘 하면 좋은지도 모르는, 그냥 주어진 삶을 하루하루 견디어내는 일상 무한히 반복되고 있. 이에게 매일 실낱같은 희망 붙들어 매고 흔들리는 바람에도 어떻게든 버텨보는 그런 날들이었다.

나는 하얀 셔츠 위에 수없이 똑같은 다리미질을 반복하며 내 마음도 이렇게 하얗게 구김 없이 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역시 수없이 되뇌었다. 흡사 수련을 하는 과정 같이 느껴졌다.

아마 월요일 새벽 다시 다리미를 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고단한 노동이 주저앉아 우는 것보다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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