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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Aug 17. 2016

풋사랑

열 하고 여덟, 혹은 아홉

너는 내게 처음으로 예쁘다고 말해준 사람이었어

어느 밤 놀이터 그네 위에서 난생 처음 내 스스로 외모 콤플렉스에 대해 이야기 꺼낸 날, 내 왼쪽 그네에 앉아 진지하게 듣던 그 표정을 난 앞으로도 잊지 못할거야. 어쩌면 난 그 날 네게 완전히 반해버렸을지도 모르지


너는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어

난 네 이름만 알고 있었지만, 너는 내가 안경을 벗으면 속눈썹이 길다는 것도 혈액형도 성대결절로 고생한 후 점점 돌아오는 목소리도  모두 알고 있었어 너는 서로 한 마디도 안 해본 사람에게 집이 같은 방향이니 같이 가자고 말할 용기를 어떻게 냈는지 모르겠어


나는 네가 좋았어

장난기 품은 눈도 재미있었고 너와 하는 이야기는 다 즐거웠어

하지만 연애가 두려워서 너를 밀어내던 날, 나는 완전히 너의 나쁜 년이 되어버렸어. 웃기겠지만 너를 보내고 나는 한동안 마음이 허전했어. 가끔 드는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널 밀어내지 않고 너를 만났다면 나는 행복했을 것 같아. 즐겁고 행복했을 것 같아.


나 스스로 나쁜 년을 자처했고 너에게 아직까지도 미안한 마음 뿐이야 그렇게도 어린 계절이었지만 난 마지막 순간 빼고는 네게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어


내 뒤늦은 반성문을 읽는 너는 내 마음을 읽고 얼마나 비웃을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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