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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Apr 15. 2016

어느 여름밤

네가 내 맘 속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횡단보도는 짧은게 두 개, 각자의 손에는 캔맥주와 캔막걸리가 하나.


 뉘엿뉘엿 해는 넘어가고 어두워진 학교 운동장엔 밤공기가 서늘하다. 운동장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운동을 하러 나온 중년의 부부와 오붓한 데이트를 하러 벤치에 앉아 다정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두 부류가 있었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는 후자였다.


 고 작은 캔막걸리에 무슨 기분은 홀딱 정신을 팔았는지 여자는 남자의 무릎에 누웠다. 치마 위로 올려준 남자의 가방이 따뜻했다. 태아처럼 몸을 구부리고 남자의 무릎 위에서 더 깊게 파고들자 토닥토닥 아기 재우듯 움직이는 남자의 손이 두텁고 포근했다.



 남자는 모르는 남자만의 체취가 여자를 안정에 빠져들게 했다. 눈을 감고 귀로는 사랑스런 목소리를 듣고 코로는 체취를 담았다. 온통 자신의 몸에 흡수시켜  집까지 가져가고 싶었다. 포근하다.


 별이 하나 둘,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의 눈이 마치 별이라도 박은 듯 반짝인다. 운동장을 돌며 운동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술김이라 그런지 여자는 부끄럽지 않.


 시계는 점점 12시에 가까워졌다. 여자는 집에 가기 싫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걷기만 해도 가만히 여기 앉아 있어도 좋으니 그냥 남자와 함께 있고 싶었다. 편의점에서 산 막대사탕을 입에 넣었다. 사과향이 구석구석 퍼지도록 계속 굴렸다. 남자의 품도 손도 눈도 이 시간도 너무 좋아 여자는 꿈 같았다. 집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자 남자도 보내기 싫단다. 이럴 땐 속도 모르고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다.



 바람 손짓 한 번에 나무가 우수수 하고 웅성웅성거린다. 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심벌즈같기도 하다. 한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평생을 사는 나무처럼 자신도 여기서 함께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었다.


 너무 좋아요. 직설적인 표현이 부끄러워 맘에만 담은 채 느린 발걸음으로 고집을 부렸다. 하루가 48시간이면 당신을 보는 시간도 길어질텐데.. 집에 가기 위해 잡은 택시가 그냥 가버렸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창 밖으로 택시 번호를 확인하는 남자가 눈 앞에 있는데도 그리웠다. 여자는 이런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



 규칙적인 주황색 가로등을 지나쳐가며 자꾸만 아쉬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여자는 남자의 무릎에 누워 가까운 손길과 사랑을 느끼던 시간을 되새겼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정도로 행복했다.


 집으로 걸어가고 있을 남자를 생각하며, 빨리 보고싶은 남자를 생각하며 여자는 아쉬운 눈을 비볐다. 까맣게 비치는 자신의 얼굴은 남자를 닮아 있었다.









사진출처 @minch_am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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