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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Sep 07. 2023

우리의 눈물버튼

 얼마 전 작창가와 함께 오전 차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 번 우려낸 차 처럼 은은한 향이 맴도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작품을 할 때의 원천이나 고충에 대해 듣다가 ‘간절함’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순간 우리는 베테랑 연기자처럼 1초 만에 두 눈에 눈물이 그득 찼다. 나는 가족들 앞에서도 눈물을 잘 참는다. 혼자 있을 때가 아니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마인트 컨츄롤 가능) 그런데 그 ‘간절함’이라는 말에 돌연 눈물이 차오른 것은, 그 경험은 좀 신기했다. 너무 찰나의 순간이라 막을 새가 없었다고나 할까. 우리는 동시에 울컥하고는 서로 너무 웃기다면서 박수를 짝짝 치고 고인 눈물을 휴지 모서리로 스미게 했다. 그리곤 곧바로 절밥이 맛있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 이사를 했다.


 심리상담을 해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정형돈 씨가 홍석천 씨에게 “나는 형처럼 내 삶을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세상과 싸워본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하자 홍석천 씨가 곧바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었다. 그는 방송인 동료들에게 그런 말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해 이따금 서운했었다면서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휴지 모서리에 눈물을 스미게 했다.


 그 뒤로 이따금 ‘간절함’에 관해 생각했다. 나는 무엇에 간절했었나, 나는 무엇에 간절한가. 확실한 것은 낙천으로도 낙담으로도 간절함에 대하여 나는 말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무언가 간절한 것이 있었다면 그건 단지 멀쩡해 보이려고 애쓰는 것 정도였다.(물론 이것이 헛되다 말할 수는 없지만) 타인 앞에서 눈물을 차오르는 걸 허락하지 않는 것도 그것의 일종일까? 어쨌든 눈물보다는 ‘너무 슬퍼여 흑흑’하고 너스레를 떠는 게 나에게는 더 익숙하니까. 나처럼 극악무도한 인간이라고 간절한 순간이 아예 없었겠는가. 다만, 떠올리고 싶지 않아 감추었고 그것을 절대 열어보지 않을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나서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취소하고 사정하고 싶었다. 겁이 나서 하지 못한 말이 있다고,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고. 나에게는 간절한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부탁해요.’라는 말을 다섯 번 적어 보냈다. 건널 수 없는 강물에 사람을 빠뜨리고 허우적대는 모습을 바라보며 잘못했다고 손을 비비는 꼴이었다. 그 아무리 간절하다 한들 비벼진 손바닥이 닳기라도 하겠는가. 나는 또한 멀쩡한 얼굴로 살아가며 이따금 가해자의 위선을 견뎌야만 할 것이다. 그것을 인지하면서도 나는 어떤 '간절함'을 느꼈다. 이제껏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말하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절대 열어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함께 열어달라고 내미는 마음. 눈물이 그득 찬 얼굴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부탁해요.'라는 말은 그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강물에 가라앉았고 내일이면 다시 태어나 한 번은 죽어야만 했던 상처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나는 비비던 손을 털고 집으로 돌아오며 소용없는 눈물을 닦을 것이다. 긴 정적에 짓눌리며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일어나 샤워를 했다. 빈 오선지를 꺼내 가는 연필로 제목을 적었다. ‘부탁해요’


  ‘모든 슬픔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문장이 한 번에 매끄럽게 나오질 않았다. 몇 번 반복해서 말해보았다.  ‘모든 슬픔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모든 슬픔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그래도 매끄럽게 나오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끝내 말하지 못한 간절함 때문일까.


 앞으로 누군가를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그것은 ‘간절함’일 것이다. 사랑과 삶, 추억과 그리움, 이야기와 진실 그리고 모든 것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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