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가 나타났다. 평범한 마을에 코뿔소가 나타나 고양이를 밟았다. 고양이는 죽고 사람들은 슬퍼했다. 그렇게 처음에는 모두가 코뿔소를 아주 무서워했고 심지어 코뿔소가 마을에 나타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제각기 다른 이유로 제각기 다른 사람이 하나, 둘 코뿔소로 변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 논리학자, 장사하는 사람들, 순종하는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 모두가 코뿔소가 되었다. 그중 아직 변하지 않은 사람과 사람이 있었다. 사람 1과 2는 인간이 코뿔소로 변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2는 불안해했다. 사랑도 이기지 못한 그 불안은 자신이 코뿔소로 변하리라는 불안이 아니라 자신만 빼고 모두 코뿔소로 변했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이었다. 2는 1에게 자꾸만 물었다. 이마에 뿔이 돋아나지 않았는지, 우리도 코뿔소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닌지. 결국 2는 코뿔소가 된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사람 1은 혼자가 된다. 연극 <코뿔소>는 모든 코뿔소가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혼자 남은 사람을 조명하여 막을 내린다.
세상이 변하고 사상도 변한다는 사실에 대해 자주 생각하던 시기에 '공상집단 뚱딴지'의 연극 <코뿔소>를 보았다. 그리고 매일 코뿔소에 대해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어떤 영화의 제목 같은 변화를 매끄럽게 겪어나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도 잃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양보하는 마음이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노인을 공손히 좋아하는 마음, 아이를 보면 먼저 웃어주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것인데….
내 안에도 코뿔소가 살고 있다. 그리고 코뿔소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살고 있다. 그 둘 간의 사이가 날카로워질 때마다 이 연극이 생각날 것이다. 매일 불안하지만 불안에 지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진심. 그런 마음을 다잡을 때마다 코뿔소를 생각할 것이다. 코뿔소가 되지 않으려고,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모르는 고양이를 밟거나, 누군가를 외로이 혼자두지 않으려고. 그런 애를 쓸 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