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다 굽이치길 반복한다. 겉은 빛이 반짝거리며 아름다우나 그 밑은 암흑이다.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며 내 앞에 있는 모래들을 움켜쥐어 데려가 익사시켰다. 쏴아- 거리는 소리는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음악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바다를, 또 파도를 바라보았다.
사람도 저 바다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순간마다 모습을 바꾸는 저 바다를 가슴에 품는 것과 같다고.
어쩌면 그동안의 나는 상대의 잔잔한 상태와 밝게 반짝거리는 겉모습만을 바라보며 그렇게 멋대로 사랑을 시작한건 아닌지 생각했다. 밝게 빛나는 사람의 어두운 심연을, 성이 나 굽이치는 모습을 생각해보지 않은 채 무방비하게 뛰어들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 바다를 내가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파도를 조절하고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참 바보 같았고 오만했다. 사랑도 사람도 결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를 바꾸려 발버둥 칠수록 오히려 더 빨리 가라앉을 뿐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사람은 저마다 보여주지 못하는 이면이 존재하고 내가 보기 싫은 모습 또한 존재한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에 소용돌이치며 부딪쳤다. 함께 섞이고 싶었으나 너무도 다른 밀도를 가진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결국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파도치는 바다를 가만히 바라본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온다. 이제는 거대한 파도를 감싸 안고 있는 모래사장에대해 생각한다. 잔잔했다가 굽이치고 멋대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이 변덕스러운 바다를 그만큼의 크기로 조용히 감싸 안아주고 있는 이 모래사장에 대해서. 삼인칭의 바다를 정복하고 싶던 꼬마를벗어나 이젠 어떤 이야기를몰고 오더라도 함께 조용히 쏴아- 사르르- 거리며 함께 노래할 수 있는 거대한 모래사장이 되고 싶다.
사람은 그리 쉽게 섞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오랜 시간 다양한 순간들을 함께하며 조금씩 닮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닮아가다가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하나처럼 보이게 되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함께 섞일 바다가 되지 못한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상대를 위한 모래사장이 되어 서로의 화음을 맞추며 안아주면 되니까. 사랑은 바다와 모래사장처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 소용돌이치고 있는 연인들이 있다면 서로의 다른 모습들을 조용히 받아주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