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 그저 이 세상이 전부인지라 세상이 하자는 대로 따라 사는 사람.
이들의 특징은 유행에 민감하고 비교의식이 아주 투철하다.
두 번째는 길을 찾아 길을 떠난 사람이다.
세상에 있지만 물러서 있거나 살짝 비껴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각자 주어진 길이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상의 유행이나 가치관에 별 관심이 없는데 혈기왕성할 때는 문제아나 반항아처럼 굴기도 한다.
세 번째 사람은 마침내 그 목적지에 도달한 사람이다. 이들은 자기가 도달한 지 모를 수도 있고 아니면 알아도 어쨌든 떠벌리지 않는다.
그저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가야 할 곳이 없을 뿐이다.
이들의 특징은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저항 없이 받아들이며 산다. 좋고 싫음이 있으나 그 또한 그럴 뿐, 딱히 좋다고 방방거리고 싫다고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다.
나는 이 세 번째의 상태를 희구하는 두 번째 사람
이다. 나는 부자의 만족함 보다 가난한 사람의 만족에 관심이 있고 부자의 편안함 보다 가난한 사람의 편안함 곁에 있는 게 좋다.
나는 부자가 누리는 자유함 보다 가난한 사람의 자유함이 부럽고 부자에게서 풍기는 기품보다 가난한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기품에 종종 홀린다.
이렇듯 나는 가진 것으로 누리는 것보다
가진 것이 없어도 누리는 부요함에 끌리는 편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가치를 두는데 아마도 태생이 그런 것 같다.
최근에 이 세 번째 사람을 잠깐 보았다.
내 오래된 친구인데 며칠 전 통화를 하다가 그냥 알아차렸다. 그녀가 마침내 도달했음을.
그녀는 오래 길을 걸었다.
힘들고 고단하게, 외롭고 슬프고 억울하고 또 가난하게...
CC로 만나 결혼을 했고 두 아이가 있고 그러다 이혼을 했고 혼자 인도로 떠났고 거기서 외국남자를 만나 아들을 하나 낳았고 지금은 아이와 둘이 이국땅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여전히 궁핍하고 몸은 더 약해지고 있다.
가끔은 통역을 하고 알바를 하며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제 그 모두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 우리 집이 원룸이잖아. 그냥 모든 게 한눈에 다 들어오거든. 숨기고 가릴 데가 없어.
오늘 아들이 학교에서 며칠 여행을 갔는데 그거 준비한다고 난리법석이었어. 나는 또 전날 일 때문에 거의 잠을 못 잤고. 아이 가는 걸 보고 집에 오는데 집에 들어가기가 싫은 거야.
그 어질러진 꼴을 보고 나왔으니 들어가면 치워야 하니까 그게 심란한 거지. 근데 또 막상 갈 데도 없어.
그래서 할 수 없이 들어와서 구석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자버렸지. 이제 일어났어. "
그녀의 말속에서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의 한숨이나 분노 대신 숨소리 같은 웃음이 들렸을 뿐.
그녀는 이 신경질 나는 상황을, 자신의 처지를 딱해하지 않았고 그저 웃고 있었다.
그냥 그러할 뿐이었다.
거기엔 과거도, 미래도 없었고 소망도, 꿈도 없었다.
그냥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현재와 그것을 바라보며 웃어주는 존재가 있었다.
나는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그 땅에서 웃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