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고 했다

by 관지

오래전, 그러니까 40대 무렵

나는 객지에서 혼자살이를 시작했다.


인생 처음으로 하는 독립생활은

설렘 자체였고, 나는 그저 좋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마음에 살짝살짝 걸리는 게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는 것이다.


뭐지?

이게 뭘까? 하다가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재미 삼아

세상의 모든 감정들을 생각나는 대로 입에 올려 보았다.


기쁨? 즐거움? 행복? 사랑? 슬픔? 괴로움? 미안함? 등등....

그러다 외로움? 에

갑자기 온몸이 찌르르~~ 했다.

마치 전기가 통하는 듯.


?

나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깜짝 놀라며

그제야 알았다.

내가 지금 외롭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몸은 다 듣고 있다는 것을.


워낙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주변의 환경과 일터의 사람들도 좋아

만족하고 있던 터라 정말 몰랐다.

아니면 좋아해야 한다고 나를 강제로 밀어붙이며

스스로 세뇌를 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내 상태를 알고 난 후, 한동안 퇴근 후에 집에 오면

맥주 미니캔을 하나씩 따며 나를 토닥토닥 위로해 주었다.

사실 술은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쿵쾅거려서 잘 못 마시는데

그때는 어찌나 맛이 있던지.. 나중에는 이러다 중독될까 싶어 관뒀다.



요즘 화날 일이 없는데 화가 나고

서운할 일이 없는데 서운하고

슬플 일이 없는데 울컥, 텃밭에 쪼그려 앉아

풀을 메다가도 울음이 터지곤 했다


이 그럴만한 일이 없는데도 그럴 때는

내 마음이 저 좀 봐달라는 신호다.


그래서

뭐냐? 할 말 있으면 해라, 고

기회를 주고 나를 들여다보니

거기 안개 같은 우울이 깔려있다.


나는 그 흔한 갱년기도 없이 지나온 사람인데,

사실 예민한 듯 까탈을 부리긴 해도 무던한 사람인데...

이게 말로만 듣던 우울증세인가 싶다.


그래서 뭘 원하는지 물어보니

"딸이 있으면 좋겠다고, 딸하고 온천이나 가서 하룻밤 지내며

그동안 애썼다고, 수고했다고... 고맙다는 말이 듣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그렇구나...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닌데

그러나 결정적으로 나는 딸이 없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탐할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또한 거절할 수도 없다.

그러니... 어쩌랴.

그냥 오늘 새벽에는 이렇게 표현해 줘서 고맙다고... 말해줬다.


그러고 나니 웃음도 나고 기분이 좀 가벼워진다.

어제는 아들이 전화를 해서 별일 없냐고 물어보는데

내 상태를 잘 몰라서 얼버무렸다.

그런데 오늘은 누가 물어보면

"나 우울하대"라고 말하며 깔깔거릴 것 같다.


우울? 까짓것 그럴 수도 있지.

요즘 하늘도 우울하신지 날마다 안개가 자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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