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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블리 Apr 28. 2016

11.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015.10.17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photoshop cs6)



힘들다고 포기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이 드는 일이다

용기를 낼 수 없다고 말하는 데에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듯이



요즘 어째서인지―사실 너무도 잘 알 것 같지만―'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빠져있다. 앨리스 향수에, 앨리스 쿠션, 앨리스 핸드크림까지 침대 머리맡에 전시해두고, 레드벨벳-Huff n Puff와 아이유-Red Queen을 무한 반복해놓고 취침. 잠결에라도 시계 토끼가 이상한 나라로 납치해줬으면 하는, 오롯이 조그마한 가슴팍에서만 서성이는 도피욕 때문일까. 


언제부턴가 현실도피욕이 자꾸 슬금슬금 기어 올라오더니만, 현재 척추 어귀쯤에 잠시 안착 중이다. 내 꿈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이 현실은 그것이 아니란 것'만 너무 확실하니까. 하지만 결정적으로, 도망치기엔 내가 너무 현실적이다. 


나는 이제껏 살면서, 너무 힘들다고 중도 포기한 적이 별로 없다. 힘들 것 같으면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돌다리를 두드리고 두드리다, 열 명이 안전하게 지나가면 고 틈새 돌다리가 닳지 않았을까 하는, 기우계의 이단아였으므로. 그래서 이제야 느끼나 보다. 힘들다고 포기하는 건 훨씬 힘이 드는 일이다. 용기를 낼 수 없다고 말하는 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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