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마음 (6)
좋아하는 이불이 있다. 흰 바탕에 파스텔 빛깔의 잔꽃 무늬가 들어간 얇은 솜이불이다. 아이를 낳고 병원에 있을 때 이불이 부족해 어머님 댁에서 빌린 건데 어쩌다 보니 우리 집까지 온 이불이다. 적당히 부드러워 촉감이 좋고, 또 적당히 가벼우면서도 따뜻해서 이맘때 덮기 좋다. 육퇴를 하고 털썩 누워 그 이불을 덮으면 포근하고 편안한 그 느낌이 너무 좋다. 잠들기 전까지 그 보송한 느낌으로 이리 뒤척 저리 뒤 척하는 순간은 나에게 가장 큰 휴식이 된다. 겨울까지 이 이불 하나면 큰 추위 없이 무난히 잠들 수 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덮던 이불은 좀 두꺼웠다. 줄곧 주택에 살았던 우리 가족은 주택 특유의 외풍 덕에 겨울이면 두꺼운 이불을 꺼내 덮곤 했다. 두툼한 이불을 어깨까지 한껏 끌어올려 덮으면 바람 들어올 틈 없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리고 묵직하게 눌러주는 그 느낌도 따뜻하고 포근한 기분에 한몫을 했다. 그렇게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도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얼굴은 늘 차가웠다. 특히 자다 보면 코가 시리다는 느낌이 들곤 했으니 외풍의 위력이 제법 셌다. 외풍의 힘을 키우는 데는 얇은 창도 한몫을 한 것 같다. 자려고 누우면 창밖의 겨울바람 소리가 들리던 날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 덜커덩하고 바람에 창이 흔들릴 때도 있곤 했다. 골목으로 나있던 내 방 창문은 종종 그렇게 겨울바람이 얼마나 차갑고 세게 지나가는 지를 여실히 말해주곤 했다.
외풍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내 방의 기억이 어느 날 문득 떠올랐다. 얇고 포근한 이불을 덮고 누웠다가, 어두운 색의 큰 꽃들이 그려진 두꺼운 내 이불이 생각났다. 바람소리 하나 들어오지 않는 26층의 안방에서, 멀리 개 짖는 소리, 아빠의 차가 집 앞에 주차하는 소리, 겨울바람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리던 이층 집 내방이 생각났다. 정확히는 그리웠다. 라디오를 듣다 잠들던 밤, 일기를 끄적이던 밤, 친구가 놀러 와 재잘거리던 오후, 늦잠을 자던 한가로운 휴일, 등교 준비를 하던 바쁜 아침까지... 고민 많고 걱정 많던 학창 시절을 함께했던 작은 내 방이 그리워졌다. 물론 지금도 그 집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 언제든 갈 수 있지만 내가 쓰던 책상, 책장, 이불, 문 앞에 붙여둔 브로마이드까지 어느 것 하나 남아있진 않다. 게다가 나는 그때에 비해 나이를 제법 많이 먹었다.
날이 추워져서일까. 그리운 것들을 자꾸만 붙잡게 된다. 나에게 그리운 것이란 늘 따뜻하고 포근한 것들이니까. 그래서 날이 겨울이 다가오면 그리운 것들을 하나씩 마음속으로 불러들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