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마음 (7)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건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다. 그전에는 라면을 끓이거나 간단한 주먹밥 정도 만드는 게 전부였다. 결혼을 하고 남편과의 공간에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예쁘게 차려내는 일이 즐거웠다.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 덕에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게 신이 났다. 우리는 서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집안일을 나눴고 자연스레 음식은 내가, 청소와 빨래는 남편 몫이었다. 나는 내 몫인 음식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즐거웠고 새로웠다. 사실 그래 봐야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집밥을 먹었으니 만드는 일이 고될 것도 없었다. 야근을 하거나 외식을 하는 일도 잦았으니 집밥은 가끔 먹는 특별식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달라졌다. 우리는 꼬박꼬박 집밥을 먹는다. 사다 먹는 경우도 자주 있지만 그것도 반복되다 보니 메뉴가 거기서 거기에다 자극적인 맛에 질리기도 했다. 돌도 안 된 아이 둘을 데리고 외식을 할 생각은 사실 엄두가 안 나니, 집에서 먹는 게 편하고 당연하게 됐다. 나는 매일 점심과 저녁 하루 두 끼를 차려낸다. 비슷한 메뉴를 조금씩 변형하기도 하고, 레시피가 비교적 간단한 메뉴를 찾기도 하며 이렇게 저렇게 질리지 않게 매 끼니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떤 날은 쌀도 씻기 귀찮아서 시켜 먹기도 한다.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다 보니 항상 미리 준비해 놓는 재료들이 생겼다. 바로 대파와 버터다.
대파는 잘게 썰어 냉동실에 넣어두고 찌개를 끓일 때 볶음 요리를 할 때 조금씩 넣는다. 버터는 사실 대파보다는 사용빈도가 떨어지지만 볶음밥을 할 때나 고기를 구울 때 종종 쓰곤 한다. 대파 한 단을 사다가 잘게 썰어서 넣어두는 일은 생각보다 번거롭다. 그리고 매번 눈이 매워 눈물에 콧물까지 난다. 대파 한 단으로 잘게 썬 것 세 통,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길이로 썰어서 또 한 통, 총 네 통의 요리용 대파가 완성된다. 그다음은 버터다. 냉장고에서 미리 꺼내 뒀다가 적당히 말랑해졌을 때 잘라서 소분을 하는데, 항상 마음이 급해서 딱딱할 때 온 손목에 잔뜩 힘을 주고 자른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종이 포일로 하나씩 감싸서 밀폐용기에 차곡차곡 넣어 역시 냉동실에 보관한다.
한 칸에는 대파, 한 칸에는 버터를 넣고 냉동실 문을 닫는데 아- 너무 뿌듯하다. 이 느낌 뭐지. 이런 뿌듯함을 언제 느꼈었지? 그런데 내가 지금 대파와 버터를 잘라 넣고는 뿌듯함을 느끼네. 뭐지. 이 낯선 느낌은 도대체 뭐지...
보통은 일이 잘 될 때 이런 뿌듯함을 느꼈다. 공들이던 섭외가 드디어 됐을 때,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듯 이거다 싶은 아이템을 발견했을 때, 섭외한 출연자가 생각보다 방송을 너무 잘할 때, 원고가 너무 잘 써졌을 때, 시청률 올랐다고 회식하러 갔을 때... 뭐 이럴 때 느끼던 감정을 대파와 버터를 통해 느끼다니. 뭔가 이상하게 낯설어서 한참을 생각했다. 그 뿌듯함과 이 뿌듯함은 같은 걸까. 대파와 버터로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사람이 있는 자리에 따라, 하는 일에 따라 뿌듯함을 느끼는 상황은 분명 다른 거니까 등등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동안에도 대파와 버터가 준 뿌듯함은 내내 낯설었다.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다. 이런 종류의 뿌듯함에 대해선 말이다. 그래도 분명한 건 정말 ‘뿌듯하다’는 거다. 뭔지 모를 그 뿌듯함은 찌개를 끓일 때마다 볶음밥을 만들 때마다 따라온다. 나는 냉동실에서 대파와 버터를 꺼내며 이상한 뿌듯함을 느끼며 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