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리 청소년 크루 양정웅, 이준계 인터뷰
갯벌영화제는 농산어촌의 미래세대들이 지역에서 즐겁게 성장 할 수 있는 ‘할 일’을 만드는 리모델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강화 4개 고교(강화고, 강화여고, 덕신고 ,강남미디어고) 청소년들이 기획하고 실행한 영화제입니다. 다음세대의 시각으로 강화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발견한 강화만의 매력을 담아 브랜딩을 했고 강화의 강추위와 갯벌을 담은 <실외 영화제 : 얼어 죽을 강화>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지역살이에 대해 또래 청년들을 초청해 고민을 이야기하는 <실내 영화제 : 젊은이 자네 농담하는 건가?>를 2일간 진행했습니다.
멘토리는 프로젝트를 통해 청소년들이 ‘익숙함’으로 인해 느끼지 못했던 지역의 매력을 다시금 느끼고, 스스로 ‘할 일’을 만드는 ‘긍정적인 경험’을 통해 지역에서의 삶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참여했던 50명의 청소년 중, 지난 1년간 탐험-정리-기획-실행의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두 명의 청소년 크루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강화에서 나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지역을 떠나리라 생각하던 청소년들이 학교 밖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느꼈던 어려움과 생각의 변화를 통해 지역에서 리얼월드러닝 환경을 만들 때 놓치지 않아야 하는 부분들을 고민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인터뷰 및 글. 멘토리 이사장 권기효
편집. 씨프로그램 러닝펀드 매니저 문숙희
안녕하세요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정웅 : 안녕하세요, 강화고등학교 3학년이고 학생회장 양정웅입니다. 갯벌 영화제에서는 <실내영화제 : 젊은이 자네 농담하는건가?>의 진행을 맡았습니다.
준계 : 안녕하세요, 강화고등학교 3학년 댄스부 부장 이준계입니다. 갯벌 영화제에서는 <실외영화제 : 얼어죽을 강화>를 준비했습니다.
어떻게 멘토리의 크루가 되었나요?
정웅 : 강화를 돌아다니면서, 대학생 형, 누나들과 함께 강화를 새롭게 바꾸고 싶은 사람을 선발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보통 문과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은 대부분 학교 내부에서 열리는 이벤트에요. 이름은 글로벌 포럼이지만, 학교에서 진행하거나 강연을 듣거나 토론 동아리 활동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죠. 학교 밖으로 나가 경험을 한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준계 : 그동안의 대외 활동들을 살펴보면, 이과생이 참여 할 수 있는 외부 활동은 많이 있었는데 강화에 사는 문과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외부 활동은 거의 없었어요. 생활기록부를 색다르게 채울 기회구나 싶었어요. 사실 찾아보면 분명 많을 텐데, 이런 정보가 저희에게는 잘 전달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욱더 멘토리의 활동을 해야겠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문과 청소년들은 굉장히 관심이 많았겠네요? 멘토리는 열정 있는 청소년들을 찾는다고 표현했었는데, 실제로 경쟁률은 어땠나요? 혹시 선착순은 아니었는지.
정웅 : 저희 선발된 거에요. 우선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하고 싶은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했어요. 그렇게 담임 선생님, 학년 부장 선생님, 역사 선생님에게 확인을 받고 선발된 팀만 참여할 수 있었어요.
준계 : 경쟁률이 엄청 났어요. 강화를 새롭게 바꾸는 프로젝트와 관련지을 수 있는 주제를 막 찾아봤어요. 그랬더니 앞으로 영종대교가 개발되어서 인천공항-영종도-강화도가 이어지게 된다는 거예요.
정웅 : 이렇게 개발이 되면, 서울에서 오는 관광객이랑 해외에서 오는 외국인들이 관광지인 석모도를 가기가 더 쉬워지니까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상품 기획안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선발이 됐죠.
첫 활동을 했을 때 어땠어요? 기대와 같았나요?
준계 : 막상 선발되고 보니까, 계획은 거창하게 짰는데 제가 뭘 할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계획 중에 저희가 할 수 있을 만한 일들은 하나도 없을 것 같았거든요. 마을을 조사하는 일이 시작 단계에 있었는데, 문헌 조사가 아니라 재미있는 방식으로 지역을 탐험하자고 하시는 게 사실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정웅 : 저는 처음에는 읍만 돌아다니는 줄 알았어요. 대부분 읍이 많이 발달되어있으니까. 근데 인터넷에 나오는 흔한 강화의 모습이 아니라 '숨겨진 강화의 매력'을 찾자고 하시고 탐험해야 할 마을로 처음 들어보는 마을을 뽑았을 때 '와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싶었어요. 저희가 막막하지 않게 처음에 미션지를 주셨었는데, '마을에 처음 도착해서 들은 소리를 담아와라' 같은 미션이 있었어요. 저는 개 짖는 소리를 담았죠. 1등 하려고요. 그때는 즐긴다기보다는 경쟁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초반에 1/3 친구들이 그만 뒀는데, 떠난 이유와 남은 이유에 대해 듣고 싶어요.
준계 : 주말을 뺏기는 게 제일 컸어요. 대학생들이랑 못 어울리거나 하는 친구들은 재미도 못 느꼈대요. 그런데, 저는 대학생 크루들이랑 함께 한다는 게 활동을 계속하는 제일 큰 이유였어요. 형, 누나들이랑 이렇게 가깝게 지내면서 하는 건 무엇을 해도 좋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팀으로 지역을 돌아다니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정웅 : 가볍게 생각하고 참여했다가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주말을 통째로 써야 하는 데에서 부담을 느끼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남은 이유를 생각해보면 저도 준계처럼 형, 누나들이랑 떠들고 이야기하고 이런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만약, 청소년 크루끼리만 활동을 했다면 애초에 신청을 안 했을 거에요. 멘토링처럼 대학생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이 기존에도 있지만, 대부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경직된 관계였어요. 근데 멘토리 크루에서 만나는 형, 누나들은 매주 친구 만나러 가는 느낌이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이 이렇게 주말마다 여유롭게 지역을 여행하는 일들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땠나요?
정웅 : 저는 오히려 고등학생이라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이 시기라서 더 재미있는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장님 불쑥 찾아가고, 모르는 집 가서 인터뷰하고, 마을회관에서 밥도 얻어먹고 이런 일들이 어른이었다면 불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이 활동을 위해서는 이런 일들이 필요했고 그래서 전 저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준계 : 맞아요, 저희는 히치 하이킹을 자주 했는데, 태워주시는 분들이 하신 말씀이 학생이라서 태워줬다고 말씀하셨어요. '강화에 사는 애들이니까' 이게 학생이니까 가능했던 일들 같아요.
부모님은 걱정이 없으셨나요?
정웅 : 저희 부모님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가 시험 기간이라 조금 걱정하셨어요. 근데 결과적으로 잘했다고 하셨어요. 이때 성적이 많이 올랐거든요. 사람이 정신없이 바빠지니까 오히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부모님도 강화에 뭐 그렇게 볼 게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강화 사람이 강화를 더 모르는 이유가 이런 무관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준계 : 저희 부모님은 쿨하게 응원해주셨어요. 저는 중간에 그만뒀을 때 성적이 떨어졌어요 ㅎㅎㅎ. 중간고사는 저도 성적이 올랐는데 진짜 딱 그만두고 기말고사는 망..
프로젝트를 하면서 여러운 점이 많았죠.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요?
정웅 : 지역 조사하는 일이요. 목사님과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는데,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생기는 갈등 그리고 점점 달라지는 마을 모습에 관해 이야기 해주셨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사할 게 많아졌고요.
준계 : 저희가 제일 처음 선택한 지역은 '하도리'라는 곳인데,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조사해도 직접 가봐도 막막했는데, 그래도 몇 번 해보니까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이더라고요. 그래도 어려울 때는 멘토리에서 주신 미션지가 도움이 됐어요. 예쁜 집 찾아보기, 이장님 찾아가기 이런 것들 하나하나 하다 보니까 할 일이 많았죠. 하도리 주민들과 인터뷰를 할수록 지역의 문제들이 보는데, 이를 해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재미도 없고 어려우니까요. 프로젝트 목적이 '할 일'을 만드는 것이라 저희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주제를 찾아봤지만, 답을 구하지 못했고 결국 다른 지역을 찾게 되었어요.
정웅 : 맞아요. 그래서 내륙보다는 바다 근처를 찾게 되었고 동검도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동검도는 어땠나요? 가본 적이 있었나요?
정웅&준계 : 처음 들어봤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죠.
준계 : 그래서 첫날부터 버스를 잘못 내렸어요. 분명 네이버 지도가 내리라고 한 곳에서 내렸는데 아무것도 없는 거에요. 보다 못한 버스 기사님이 어디 가냐고 물어보시더니 다른 정류장으로 데려다주셨어요.
정웅 : 하도리에서 헤매서인지 저는 이제는 진짜 콘텐츠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엄청 강했어요.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엄청 심각하게 인터뷰를 했고, 거기서 만나게 된 사진작가님과 인터뷰를 통해서 동검도가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준계 : 그 뒤로 다시 동검도에 가기 전까지 조사를 엄청나게 했어요. 제일 먼저 인스타그램에 동검도를 검색했는데, 엄청 예쁜 사진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다!' 싶었죠. 그런데 동검도에 진짜 많이 갔지만, 정작 저희는 그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역시 SNS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다르구나 했어요. 사람들이 이런 기대를 하고 올 텐데 크게 실망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아직 확인 못한 건 동검도 일출이 그렇게 멋지다는데 한 번도 못 봤어요. 그게 유일한 기대였는데.
정웅 : 아마 크루 중에 그거 확인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다들 10시쯤 일어났으니까(웃음)
동검도에서 콘텐츠를 찾은 과정을 들려주세요.
정웅: 우선 주변에 계신 분들께 여쭤봤어요. 아버지께서 동검도에 작은 극장이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우선 가보자 했어요.
준계 : 처음 가봤을 때는 '와 이런 공간이 있네! 우리가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아쉽다.' 정도였어요. 그래도 콘텐츠를 만들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구석구석을 살펴봤더니 동검도에 예술인들이 많이 산다는 이야기가 벽에 붙어있더라고요.
정웅 : 그리고 나서 찾아보니까 진짜 예술 관련된 장소,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프로젝트의 컨셉을 '예술과 섬'으로 정했어요. 미술관도 가고 예술가도 만나보는 느낌으로
콘텐츠를 찾는 여정에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준계 : 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막간을 이용해 지구과학 수행평가를 하기도 했는데요. 평소라면 대충 했을 텐데, 마침 다른 크루들과 함께 지역과 지형에 대해 조사 하면서 자연스럽게 과제를 할 수 있었고 진짜 재미있게 했어요. 특히 왜 길이 이렇게 생기게 되었는지, 어떻게 갯벌 한복판에 저 큰 돌이 있는 것인지 등등 가만히 들여다보니 재미있는 질문들이 마구 떠오르더라고요.
정웅 : 사실 그전에는 강화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볼 만한 기회가 없었어요. 주로 학교-학원-집을 오갔고 더 가봐야 카페 정도였죠.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동검도를 다니다 보니까 '아 강화가 생각보다 재미있는 곳이네'를 느꼈어요.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고등학생이 되면서 강화를 떠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들었어요. 또래가 할 일들이 강화도에 없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주셨는데, 방탈출이나 룸카페 같은 청소년들의 공간이 강화에 생기면 계속 머물 마음이 들까요?
준계 : 근데 강화에 그게 있어도 아마 안 갈 거예요. 익숙하니까요. 맨날 보던 것만 보니까 나가고 싶어진 게 아닐까 해요. 요즘은 강화에 큰 아파트단지도 들어서고 개발이 엄청나게 진행 중이거든요. 제가 사는 동네만 하더라도 어릴 때는 논과 밭이 더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온통 빌라나 주택이 들어섰고 산도 다 깎아버리고 그러다 보니 뭔가 내가 알고 있던 강화가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져요. 강화는 그냥 강화였으면 좋겠어요. 편하기는 한데 뭔가 강화다움을 잃는 것 같아요. 저도 떠날 거라는 마음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이런 문제를 제기하거나 고민은 하지 못했어요. 근데 아쉽기는 해요.
정웅 : 어중간하게 도시를 따라 하려고 하는 게 영 별로예요. 예전에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나 자연생태 이런 느낌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다이소 들어오고, 스타벅스 들어오면서 강화라는 이미지가 사라지는 것 같아요. 서울만큼 편리해지는 것도 아니면서 강화다움을 잃어가고 있는 게 이제 보이니까 아쉬워요. 서울에 있는 게 강화에 없다는 게 떠나는 이유기도 하지만 어중간하게 생긴다고 남는 이유가 되지는 않거든요.
이제 탐험의 종착지인 영화제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어떻게 영화제를 기획하게 됐나요?
준계 : 사실 "이런 데서 영화 한 편 보면좋겠다" 가볍게 한 마디 던졌는데, 실제로 영화제가 될 줄 몰랐어요. 제가 한 말이 실제로 진행된다고 하니까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긴 했어요. 저는 기획 과정에서 2박 3일 캠프가 진짜 좋았어요. 그동안 같은 팀끼리만 친했다면, 이 시간을 통해서 전체랑 친해질 수 있었어요. 이때 '아 이 사람들 하고는 뭐든 해보고 싶다' 생각했죠. 3일동안 4시간 자고 밤새워 놀았어요.
정웅 : 회의는 거의 안 했고 온천 가고, 보드게임하고, 볼링치고, 고기굽고 진짜 재밌었어요. 이렇게 친해지니까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어요. 하지만, 친해진 건 좋았는데 여전히 저희가 영화제를 안 겪어봐서 불안했어요. 그래서 현재 상황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크루를 추가로 모집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죠. 많은 갈등이 생겼거든요. 새로 온 크루들은 동검도에 대한 이해도가 저희랑 너무 차이 난다는 게 문제였어요. 이 과정을 통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프로젝트에 대해 쌓아온 이해 수준과 관계의 친밀도가 비슷한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또 하나 어려웠던 점을 말하면, 프로젝트 실행 경험이 없는 게 큰 문제였어요. 아이디어만 내면 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일이 필요한 거예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죠.
준계같은 경우에는 최종 실행을 앞두고 그만두게 됐잖아요.
준계 : 그때는 '왜 우리 아이디어는 계속 까이기만 하는 걸까'하는 생각에 많이 지쳤어요. 멘토리에 아이디어를 얘기하면, 뭔가를 알아본 뒤에 안된다고 하시는데 왜 안 되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예를 들면 폐교를 빌려서 영화제를 열거나, 힐링 캠프를 만드는 아이디어가 우리는 분명 가능하리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장소섭외나 예산 같은 부분을 저희가 직접 했다고 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 거예요. 정웅이 말대로 막연하게 누군가가 준비 해줄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굵직한 의사결정은 리더끼리 먼저 하고 기본적인 구조를 정하고 구체적인 할 일에 대한 목록을 결정한 뒤에 새로운 크루들을 뽑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은 적응도 못 하지, 아이디어는 우리만 내고 있지, 그것마저도 안된다고만 하지, 이런 상황이 반복돼서 힘들었어요. 그래서 다음 프로젝트를 하게 된다면, 저는 나가려는 아이들 멘탈 케어 하는 역할을 맡으면 어떨까 해요(웃음)
사실 멘토리는 틀을 만들면, 틀 안에 갇혀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 못할까 봐 조심했던 부분도 있어요. 멘토리는 여러분들이 학교 축제도 기획하고 하니까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축제랑은 달랐나요?
정웅 : 영화제가 끝나고 제가 이제 축제를 기획하게 되었는데요, 영화제를 하지 않았으면 진짜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제를 하면서 경험한 기획과정을 적용해서 축제를 준비했거든요. 일을 분배하고 필요한 사람을 뽑고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이전에는 찬조팀은 몇 명을 모집할까 정도만 생각해서 나머지는 학생부 선생님들에게 넘겨 드리면, 학교에서 뽑았거든요. 이전부터 해오던 방식 그대로 해오는 게 당연했는데, 올해는 처음부터 제가 만들 수 있었어요. 그래서 구조와 프로세스를 먼저 설정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현 할 수 있다는 것을 검증했다고 생각해요. 우리 학교 같은 경우에는 이런 기획이나 실행은 학생회 정도 하지 않으면 절대 못 해볼 경험이어서 더 많은 친구가 멘토리를 통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험난했던 기획 과정을 거쳐 실제로 영화제 실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처음해보는 과정이라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정웅 : 시작 전에는 엄청나게 걱정했는데 막상 시작되니까 즐거웠어요. 제 역할 중 하나가 어촌 계장님과 이장님께 공간을 빌리고 카페 사장님과 일정을 조정하는 등 마을 주민과 연락하고 조율하는 것이었는데요. 동네 어른들이다 보니 협조를 많이 해주셔서 새로운 인연도 생기고 좋았어요.
준계 : 저희보다 궂은일을 대학생 크루들이 정말 많이 했어요. 저희가 고2인 데다 강화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보니까 조명이나 필요한 도구를 구하거나 장소를 견학하는 일 등은 대학생 크루들이 해야 했고 그 과정을 다시 저희에게 공유해 주셨어요. 그런데 한 번에 의사결정이 되지 않아서 다시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게 미안했어요. 사실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 비해서 실행하는 과정은 말 그대로 '일'이고 재미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적극적이고 고생하는 사람만 계속 고생했어요. 저도 마음이 많이 상하기도 했고 이런 과정을 처음 하다 보니까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영화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을 때 어땠어요?
준계 : 저는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둔 게 너무 속상했어요.
정웅 : 당장 그 다음 주가 시험이라서 부담스러움과 시험공부 하느라 지쳐있어서 불안함이 있었어요. 하지만 막상 당일은 정말 재미있고 두근거렸어요. 그리고 야외에서 진짜 얼어 죽을 만큼 추운 선착장에서 준비하는데, 밖에서 먹는 짬뽕이 그렇게 맛있는 거예요. 국물까지 다 먹고, 그런 경험도 너무 좋았어요. 진짜 인생 짬뽕.
영화제 당일 진행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요?
정웅 : 그동안 아이디어만 내던 일들을,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했다는 게 굉장히 좋았고요. 무엇보다 진짜 내가 결과를 만들었다는 게 뿌듯했어요. 그리고 최고였던 순간은 실내 영화제가 너무 좋았어요. 괜찮아마을의 '다행이네요'라는 다큐멘터리는 저작권 때문에 예고편만 봤는데 이번에 전체 내용을 보면서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이었어요.
그리고 이어진 홍동우 대표님과 이어진 대담은 정말 최고였어요. 저희가 그 대화를 하기 위해서 괜찮아마을에 대해서 정말 많이 조사했고 1시간 분량의 대화를 이어가려고 혼자 연습도 엄청 많이 했거든요. 정말 매 순간 내가 이런 걸 해냈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진짜 누가 말한 것 처럼 어제까지 보던 강화랑 오늘 보는 강화랑 느낌이 달랐어요. 더 애틋하고, 뭔가 뿌듯한 느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주 주말을 사용하면서 강화를 탐험하고, 영화제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얻은 것은 무엇인가요?
준계 : 저는 제 인생에서 의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는 거에요. 새로운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하고 노는 걸 정말 좋아해요. 강화에서만 있다 보면 친구들 외에는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흔하지 않아요. 근데 이렇게 코드가 맞는 사람들,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또래가 생겼다는 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득이에요.
정웅 : 제 진로 관련해서. 그동안은 스포츠 에이전트라고만 생각했어요. 강화에서 이런 진로와 관련해서는 인터넷으로밖에 찾지 못하니까 막연하게 이게 돼야지 했어요. 그래서 스포츠 관련 일들만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강화를 돌아다니고 영화제를 기획하는 과정을 실제로 겪어보니까 꼭 스포츠 관련 직종이 아니라도 내가 좋아하는 게 있구나를 알게 되었어요. 확실히 이렇게 뭐든 해보는 게 진짜 중요 한 것 같아요. 그리고 멘토리라는 단체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꼈어요. 청소년들이랑 이런 일들을 해보는 것이 직업이 될 수도 있구나, 나도 해보고 싶다.
멘토리의 크루로 활동하면서 지역 청소년들이 자신의 지역에 대한 관점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는 멘토리의 목표를 몸으로 경험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모든 과정을 마친 뒤 강화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해본다면?
준계 : 강화에서도 이런걸 할 수 있구나.
정웅 : 우리 동네에 이야기가 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마을 마을마다 전설이 있고 스토리가 있었는데, 평소라면 절대 관심을 두지 않았을 테지만 다른 크루들이랑 즐겁게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과정을 겪으니까 강화에 대해서 더 알게 된 것 같고 애정도 생겼어요. 그리고 사람들하고 인터뷰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강화가 참 정이 많다는 것도 느꼈어요. 배고프다고 밥도 해주시고, 차도 태워주시고.
준계 : 맞아요. 한번은 바닷가를 계속 돌아다니다가 너무 배가 고픈 거예요. 그래서 마을 쪽으로 가 봤는데 거기도 식당이 없고 그러다 교회 근처를 지났는데, 마침 식사 시간이었어요. 들어가서 같이 식사 할 수 있는지 여쭤봤더니 엄청나게 반겨주셨죠. 그때 만난 인연이 영화제 때도 오셨고요.
정웅 : 교통이 진짜 어려웠는데, 매번 택시를 탈 수도 없고 그래서 처음에는 걸었는데 체력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조사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관광지라 그런지 차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그래서 구조 반, 부탁 반으로 태워 달라고 손을 들었는데 진짜 태워 주시는 거예요. 학교 선생님도 만나고, 아는 분도 만나고, 우리만한 아이들을 가진 관광객도 만나고 그렇게 도움을 받으면서 동검도 여행을 했죠. 이 프로젝트는 붙임성이 없으면 못 할 것 같아요.
멘토리의 크루로서 앞으로 어떤 일들이 추가되어야 강화의 청소년들이 강화에서 살아갈 수 있는데 도움이 될까요?
정웅 :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아주 늦게 멘토리를 만났고 활동을 해보니까 강화도 재미있는 동네구나 정도는 알게 되었는데 영화제가 늘어나고 활동이 늘어난다 해도 후배들이 과연 여기서 사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을 경험해 볼 수 있다면 서울을 경험하고 돌아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때 멘토리가 중요한 게, 그렇게 돌아왔을 때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면 그때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데, 지금 당장 고등학생 정도 된 청소년들이 이렇게 딱 한 번의 기회로는 절대 남을 수 없을 거예요.
준계 : 저도 같아요. 다른 지역은 모르겠는데 강화는 아무래도 서울과 가깝다 보니 꼭 여기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요. 도시를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서인지 지금은 어떤 안이 떠오르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정웅 : 영화제를 하면서 정말 학교나 시험이나 이런 일들에 대한 걱정 없이 오롯이 영화제만 준비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강화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는 것,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다는 것, 강화를 새롭게 볼 수 있다는 것. 이 세 가지가 1년이라는 시간을 쏟아붓고도 힘들고 괴로웠다기보다 다시 돌아가도 재미 있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갖게 해줬어요.
준계 : 저희가 이 이야기를 백 번도 넘게 했어요. 진짜 하고 싶은 프로젝트인데 집중할 수 없어서 너무 속상했어요. 정말 잘하고 싶었거든요. 강화에서 남는다는 것까지는 당장에 어렵겠지만, 이런 기회가 많아지는 건 꼭 필요해요. 저처럼 중간에 그만두거나 했을 때 다시 해볼 기회가 없다는 건 너무 슬펐어요. 한 번의 기회가 아니라 언제든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더 많은 주제가 생겨도 좋을 것 같고요.
정웅&준계 : 정답은 없을 테니 더 나은 방법은 앞으로 계속 고민해 봐야죠. 이제 내년에는 대학생 크루가 되어서 이 부분은 고민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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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랩 펠로우십(Learning Lab Fellowship)이란
씨프로그램은 지난 2년간 러닝랩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필요한 배움에 대한 여러 시도를 지켜봐 왔습니다. 동시에 의미 있는 실험이 지속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원과 환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 수많은 만남과 고민 끝에 2019년 11월 러닝랩 펠로우십을 시작했습니다. 러닝랩 펠로우십은 다음 세대에게 필요한 배움의 환경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실행하는 팀을 대상으로 지금 필요한 작업을 이행하기 위한 유연한 자원을 제공하며,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합니다.
멘토리는 농산어촌 청소년에게 리얼월드러닝의 기회가 열려있음을 믿고 이를 지속하기 위한 환경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러닝랩 펠로우십을 통해 농산어촌에서는 어떤 리얼월드러닝이 가능할지 그 시도의 기록을 매달 한편씩 시리즈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