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을 지속하는 힘 : 다음세대
To. 다음세대를 만나는 어른들에게
지난 3년간 C Program은 5500명의 청소년을 만났습니다. 그 중 3명의 친구들을 이 자리에 초대했습니다. 새로운 배움이 담길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라는 질문으로 2017년 4개의 학교와 진행했던 배움의 공간을 함께 한 홍성민님, 청소년이 청소년의 문제를 연구하는 180일간의 여정, 고등학자를 함께 한 강도연님, ‘거꾸로캠퍼스’를 함께 한 이승빈님입니다. 프로젝트가 다음세대에게는 어떤 경험이었을지, 그리고 다음세대를 만나는 어른들에게 전하는 조언을 이 자리에서 나누고자 합니다. 학교라는 틀을 넘나들고 바꾸는 경험, 새로운 선택지를 선택했던 경험, 그리고 사회로 나서며 되짚어보니 알게 되는 ‘새로운 역량’에 대해 묻고 이 자리의 다음세대의 목소리로 그 답을 들어보겠습니다.
청소년 프로젝트는 학교를 떼어 놓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룰, 공간적 한계 등 내가 극복해야하는 학교의 틀도 있겠지만, 학교 안에 있기 때문에 얻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학교라는 틀에서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경험은 어땠나요? 학교 안에서 프로젝트를 했던 성민님부터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홍성민 : 우선 이 배움의 공간이라는 것을 접하기 이전에는 제가 전교 부회장, 회장을 역임하면서 학생들을 이끌어가면서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굉장히 딱딱하고 변하기 힘든 곳이다 보니까 말 그대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잡히는 기분이었어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없어지고, 친구들 사이에 공감도 없어지고요. 그러니 제가 생각하는 모든 활동이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았어요.
그러던 중에 이 배움의 공간 프로젝트 공모를 보고 학생 부장 선생님께 딱 한 마디 했어요. 공간만 바뀌면 친구들과 공감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 결과로 3학년 교실을 바꾸면서 뒤편에 1/5도 안 되는 공간에 긴 벤치형으로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어요. 공간 하나가 새로 만들어졌을 뿐인데, 여기서 친구들이 서로의 고민을 나누기도하고, 공부도 같이하니 반의 모든 친구들의 고민을 알게 되고 서로 피드백할 수 있었죠. 보통 고민 상담이라는 게 정말 친한 친구이거나 담임 선생님이 아니면 얘기하기 힘들잖아요. 어떤 프로젝트를 시도할 때도 이런 분위기가 영향을 미쳐요. 결국 친구들이 학교의 문화를 만들어가는거죠. 학생들이 모든 문화를 주도하고, 말 그대로 학생이 주인의식을 가진 그런 학교 문화 말이죠.
강도연 : 제가 경험했던 고등학자라는 프로젝트는 학교 밖 프로젝트라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확연히 많았어요. 게다가 고등학자는 거의 반년이나 했던 긴 프로젝트였죠. 그 동안 학교 안팎에서 괴리감 같은 게 많이 있었어요. 저는 학교 안에서는 혼나는 게 익숙했는데 밖에서 고등학자 활동을 하면서는 어느새 제가 칭찬을 받는 게 익숙한 학생이 되어가더라고요.
근데 활동기간이 길고, 고등학교 2학년때라 공부와 같이 병행하면서 시간이 안 맞는 경우가 많았어요. 정말 좋고 한 번도 겪지 못한 경험이었는데, 이 프로젝트 때문에 저를 포함해 같이 했던 친구들의 성적이 떨어지고 부모님과의 갈등이 생기기도 했어요. 8월에 프로젝트가 끝나고 10월 쯤, 친구들에게 고등학자 프로젝트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친구들이 말도 꺼내지 말라고 해요. '내가 그거 때문에 성적 떨어진 게 얼만데, 그만 말하자.'라고 학교 안에서 쉬쉬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어요. 그런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저도 '잘못 선택했던 프로젝트였나.'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1월에 프로젝트를 설계하셨던 분과 이야기를 다시 나누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 때 제가 프로젝트를 통해서 변해 왔던게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원래 저는 무대공포증이 너무 심해서 두통이나 구역질이 생기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지금 이렇게 잘 말하고 있잖아요. 지금까지의 이 변화가 제게는 너무 커요. 이런 프로젝트를 만들어주시고 저희 학교 안에 끌어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이승빈 : 저는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를 경험했었어요. 거꾸로 캠퍼스로 오기 전에는 거꾸로 교실을 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었거든요. 학교라는 틀을 생각해 봤을 때 학교가 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아무래도 친구들과 주기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 준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했던 프로젝트는 방과 후에 친구들끼리 모여서 거꾸로 교실에서 배웠던 내용을 문제집으로 만들어서 같이 공부하는 거였어요. e-book도 만들고, 영상도 찍었죠. 막상 시작하니 친구들 반응도 좋고 저도 성적이 오르는 것 같아서 꽤 괜찮은 거예요. 그래서 다른 학교 애들하고도 같이 해보기로 하고 친구들의 중학교 친구들에게 다 전화해서 전국에 있는 외고, 자사고, 일반계 고등학교 다 포함해서 같이 교재를 만들었어요. 처음엔 생명과학으로 시작해 윤리와 사상, 물리 등등 더 많은 문제집을 만들었죠.
하면서 재밌었던 건, 학교의 종류나 학력이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게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학교 안의 정규 수업시간으로 프로젝트를 한 팀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e-book을 만들어냈어요. 하지만 주말이나 야자시간에 시간을 내서 모이는 팀은 문제를 만들기도 전에 그만두더라고요. 그래서 학교에서 친구들이 같이 정기적으로 싸우더라도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줄 수 있는 건 분명히 큰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청소년들과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는 학교를 잘 이용하는 전략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프로젝트의 성패가 달려있는 중요한 부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시는 분들이라면 문제해결능력, 협업능력이 중요하다는 21세기 역량에 대한 고민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프로젝트를 설계하면서도 그런 내용을 매우 신경 써넣기도 합니다. 세 분은 이제 사회를 막 나서거나 대학에 1-2년 다니고 있는데, 프로젝트 이후 사회의 경계에 서서 뒤돌아봤을 때 진짜 중요한 역량이 무엇인 것 같나요?
홍성민 : 저는 역량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진 않아요. 사실 제가 11년 동안 운동 선수를 하다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어요. 제가 운동을 할 때는 역량에 대한 지표가 시합의 결과로 굉장히 분명해요. 작은 단위의 시합에서 1,2등 하면서 '나는 이 집단 안에서는 내 역량은 최고야.' 라고 믿었어요. 그러다 전국 대회를 나가보니 저보다 월등한 학생들을 보면서 크게 좌절했어요. 그래서 이 역량말고 공부를 시작해보자하고 진로를 바꿨죠. 그래서 많은 활동을 해보면서 여기서 중요한 역량이 무엇일까하고 찾아봤어요.
처음 발견한 건 내가 무엇을 관심 있어 하고, 좋아하는지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지금 저희 세대에는 매우 결여 되어 있다는 거였어요. 모든 활동에서 내가 어떤 것을 잘 할 수 있는지 나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역량이라는 건 그룹이 만들어지고 활동하면서 저절로 키워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지금 대학교에 와서도 많은 분야에서 그룹 활동을 하고 있고 다 다른 역할을 하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저는 다양한 역량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 될 것이고, 한 가지의 역량만을 키운 사람보단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게 어떤 역량을 요구하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는 '그러는 질문해주신 분은 저에 대해 얼마나 이 빠른 시간 안에 저를 잘 이해할 수 있기에 그런 질문을 던지시고 요구하십니까?' 라는 걸 항상 속으로 품고 있어요. 저희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저희가 키워서 보여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강도연 : 일단 저희 세대의 친구들이 자존감이 많이 낮아요. 자기가 잘하고 있는데도 아닌 것 처럼 느끼고 시무룩해있죠.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기가 어떤 것을 잘하는지 알고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잘하는 게 없는 줄 알았어요. 딱히 못한다기보단 막 잘하는 것 같지 않아서 진로를 고민할 때도 무난하게 경영학과 가자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1,2학년 사이에 꿈을 찾게 됐어요. 그 계기를 되짚어보면 고등학교보다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중학교 때 제가 미디어를 만지고 편집하기 시작하면 정말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주위 친구들이 몰입하는 저를 칭찬해줬었지만 그때 저는 기회인 줄도, 잘하는 줄도 몰랐죠.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쉬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돌아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맞춰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초등학생 때는 자기의 재능을 찾는 시간이라고 생각을 해요. 다양하게, 얕게라도 여러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죠. 중학교 때는 널리고 널린게 시간이예요. 제 이야기를 하자면 시간이 많다는 걸 모르고 하염없이 보내버렸어요. 그러다 이제 고등학교와서 꿈을 찾았죠. 역량을 키우고 싶지만 이젠 공부를 해야하니 취미로 남겨두둬야 했어요. 취미로 두면 제대로 역량을 키우질 못해요. 이 부분이 너무 힘들었어요. 시간이 많았던 중학교 때를 후회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무엇보다 자기 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중학교 때 많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고등학교에와서 공부가 중요할 때 공부를 하면서 내 역량을 취미로 남겨 둘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승빈 : 첫 번째로 거꾸로 교실을 포함해 교육 프로그램들이 저한테 전달하는 메시지는 하나인 것 같아요. '네가 지금과 같은 상황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냐?' 라는 질문을 던지고 제가 대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오히려 '오늘 저녁에 밥 뭐 먹지?' '집은 어떻게 구하지?' '통장 개설 어떻게 하지?'같은 질문들이었어요. 다른사람이 제 인생을 책임지고 있던 부분을 스스로 책임지기 시작할 때 등장하죠. 대단하거나 거창한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한 부분을 직접 해나가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부모님께서 나를 이렇게까지 케어하고 있었구나.'라는 걸 최근 조금씩 깨닫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공부만 계속 했고 다른 건 하나도 신경쓰지 않았어요. 다른 건 그냥 다 되어 있었고요. 부모님이 맨날 밥해주시고, 맨날 태워다 주시고요. 부모님께 의존하던 것이 없어지고 진짜 세상을 부딛히다보니 그리 쉬운게 아니더라고요. 그럼에도 고등학교 때 하던 대로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예를 들어, 흔히 들어왔던 21세기 역량들, 문제해결능력, 프로젝트에만 온 종일 집중했어요. 그랬더니 삶이 지속되지 않는 거에요. 일주일도 못갔어요. 겪고 나니 '저글링을 하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싶더라고요.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 부모님이랑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이런 아주 기초적인 것도 신경을 써야 가능하구나. 내가 일단 살아야지, 그래야지 뭔가 내가 재미있는 것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거죠. 생활하다 보면 제가 저글링해야하는 공들이 하나씩 주어져요. 팀 프로젝트 하다 보면, 다양한 나라에서 오는 학생들과 같이 팀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문화차이를 극복하는 공부터 언어의 장벽을 넘는 공도 생겨요. 이런 공들을 만지고 던져보면서 스스로를 더 많이 배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서툴러요. 하루 24시간이라는 주어진 제약 속에서 어떤 공을 더 높이 던지고 어떤 공을 새롭게 만져 볼지 알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사실은. 자신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놓고 '어떻게 하면 최대한 즐길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을 때 저글링하는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네, 여러분 저글링 잘 하고 계신가요? 공 하나 던지기도 지금 벅찬데, 여러 종류의 많은 공을 한꺼번에 던져야하지는 않나요? 이 이야기는 다음세대만의 고민이라기보단 듣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세션의 제목 그대로 다음세대를 만나는 어른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홍성민 : 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분들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활동을 할 때 저도 조급하고 예민해서 내내 비판적으로 봤어요. 1학년 때부터 활동을 많이 했는데 항상 길어야 일주일 정도로 단발적인 행사들이 많았어요. 행사를 시작했는데 이미 행사의 끝에 마침표가 보이더라고요. '이게 과연 학생을 위해서 하는 활동이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행사를 주최하는 입장에서는 단발적인 행사가 효과를 조금 더 눈에 띄게, 빠르게 볼 수 있으니 좋은 방법일 수 있죠. 활동을 하는 학생 입장으로서는 이 프로젝트는 공부이외에 처음으로 하는 다른 시도예요. 인생에서 진로, 가치관, 모든 게 형성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단발적인 행사로 끝나면 내 인생에서도 결국 잊혀져요. 그런데 장기적으로 하면 활동이 익숙해지면서 몸이 기억해요. 그 과정에서 나에게 조금 더 좋은 것을 이 활동에서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의 여유도 갖게 되죠. 제 경우에는 그래서 학교의 문화도 정착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을 위한 활동을 한다면 장기적으로 방법을 알려줘야지, 결과만을 바라보는 건 좋지 않다고 봐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왔을 때 학교라는 공간만큼 폐쇄적인 공간이 없어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와서 교문에 발 한 번 안 디뎠더라구요. 이제 저는 이 학교에 대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학교 안에서 행사를 주최하시는 분들은 과연 알고 하셨는지 의문이 들어요. 활동이 지속적으로, 조금 더 긍정적으로 큰 효과를 만들고 싶다면 지역 사회와 긴밀한 연관이 있어야 졸업하고도 계속 활동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그랬다면, 저는 아직까지도 학교를 위해서 활동하고 있을 것이고, 제가 했던 배움의 공간 프로젝트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볼 수 도 있었을거예요. 아쉬워요. 배움의 공간을 만들었지만 저는 지금 무대 위에서 제가 했던 활동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을 뿐 관련된 활동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요. 제 후배들은 조금 더 많은 기회를 접했으면 좋겠습니다.
강도연 : 제가 드리는 조언은 크게 세 개입니다. 첫 번째로는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프로젝트를 벌이는 처음 마음은 아마 청소년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변화를 주어야 조금 더 희망이 될지 깊이 고민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점점 갈수록 시간에 쫒겨요. 특히 장기 프로젝트일수록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일거예요. 자금도 많이 투자되었을 것이고, 몇 십명의 아이들을 끌고 이까지 왔는데 더 커 보이거나, 멋져 보여야하는게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프로젝트를 당하는 대상자인 저는 '내가 이 프로젝트에 끌려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불쑥 들어요. 그러니 맨 처음에 가지셨던 청소년을 위한다는 마음가짐을 계속 가져주세요.
두 번째로는 프로젝트 대상자인 청소년과 설계자 간에 소통이 잘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요새 인기가 많은 1인 미디어 방송은 지상파 방송과 다르게 액션에 시청자가 반응하고 댓글로 이야기하하면서 희열을 느낀다고 하죠. 저희도 프로젝트를 계속 하다 보면 요구하고 싶은 것이 생겨요. 이런 점을 물어봐주고 개선이 되면 프로젝트에 쏟는 관심부터 달라져요. '내 말을 들어주고 있구나. 이 프로젝트가 나와 함께 가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까요.
마지막으로, 프로젝트 설계자와 프로젝트 대상자와 의사소통이 잘 되었다면, 이제 프로젝트 대상자끼리의 의사소통이 정말 중요해요. 고등학자 프로젝트는 27명의 청소년이 5개의 팀으로 나뉘어져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어요. 맨 처음에 오리엔테이션장에서 테이블을 놓고 알아서 팀을 꾸리라고 하셔서 앉는 자리대로 팀이 완성되었어요. 사실 맨처음엔 서로 잘 알지 못해요. 그러다 보니 그 중에 덜 어색한 친구와 같이 앉아 있었는데, 나중에 생각하면 진짜 그 순간의 저를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저랑 정말 안 맞는 친구들, 가치관이 다른 친구들, 그냥 성격이 못된 애도 너무 많았거든요. 선택권은 있었지만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미리 프로젝트 전에 대상자들끼리 모여서 서로 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서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프로젝트가 정말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빈 : 그럼 저도 세가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프로젝트의 완성도랑 학생의 성장은 절대로 비례하지 않는다는 부분을 말씀 드리고 싶어요. 앞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말씀 해주셨는데 저는 실패할 때 훨씬 더 많이 배웠던 거 같아요. 성공하게 되면 그 달콤함에 취해서 그냥 넘어가게 되는 반면 실패하게 되면 계속 기분이 안 좋고, 계속 곱씹어 보게 되더라고요. 침대에 누워서도 '아, 왜 이렇게 됐지? 대학 갈 수 있을까?'하면서요. 실패를 계속 생각하면서 제가 뭘 배웠는지 좀 더 깨닫게 되었어요.
두 번째로는 학습자를 공감해줬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공감이라는 단어가 그냥 '아, 더 잘 이해해줘라.' 라기 보다는 학습자가 어떤 환경에 처했는지 시스템적으로 봐줬으면 해요. 단편적인 예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처음 선생님과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건 프로젝트가 좋거나 사랑해서, 프로젝트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대학가고 싶어서 한 거였어요. 선생님도 그 부분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 부분을 어떻게 보면 미끼로 삼은 거죠. 저는 그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고요. 미끼를 물고나서야 프로젝트의 재미에 빠져서 이런 다른 길을 걷고 있고 지금 이 무대에 있을 수 있게 됐죠. 공감이라는 게 학습 대상자들이 뭐가 제일 힘든지, 왜 저 시스템이 있는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먼저 쭉 살펴보고, 학습자가 제일 원하는 게 뭔지, 학습자를 설득할 미끼를 만들고 내 능력을 가지고 어떻게 21세기 핵심역량을 가진 사람을 만들지 고민하는 것 부터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세 번째는 이도 저도 모르겠다 싶으면 그냥 판만 만들고 빠져주시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프로젝트를 좀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 간섭 하게 되고, 내가 좀 더 도와주고 싶어지면 학습하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공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아까 앞에서, 정말 성격이 더러운 애도 있었고, 쟤는 왜 저러는지 모르겠고 이런 고통의 순간 순간들에 저는 정말 가장 많이 성장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때 제 3자가 대신 개입을 하게 되는 순간 그 고통을 겪고 느끼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려요. 그래서 잘 모를 때는 그냥 두시면 알아서 잘 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들어보면, 실험을 지속하는 힘은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매일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들 스스로 이 실험을 지속하고 이끌어가는 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오늘 다시 확인합니다. 다음세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도, 다음 세대를 만나는 여러분들도 항상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