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의 세 번째 키워드 [다음 세대 : Who's Next?] 시리즈에 이어 흥미로운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다양한 콘텐츠에 담는 작업을 이어갑니다. 이번 주에는 거꾸로캠퍼스 학생 유정이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그리고 거꾸로캠퍼스까지 다양한 배움의 방법을 거치며 만난 교육자에 대한 생각을 쓴 글을 싣습니다. 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성장을 이끄는 교육자의 네 가지 특징은 무엇일까요?
저는 학교를 좋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공부보다는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거든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일에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참여했고, 멋진 배움의 방법을 시도하는 다양한 학교 안팎의 교육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좋은 배움의 경험과 생각이 쌓인 지금은 “가능한 한 모든 학생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로 교육자를 보는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교육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깊이 빠져들기엔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성적을 내야 하는 현실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고 있는 학교를 찾아 거꾸로캠퍼스에 왔습니다. 수업 외에도 이곳의 시스템과 교사의 모습을 통해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이 학교로 결정한 많은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지나 거꾸로캠퍼스에 오기까지 만난 수많은 교육자 중 학생의 성장을 이끄는 교육자는 꼭 직업이 교사로 정의되지 않더라도 공통된 네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생은 원하는 내용을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것들이 빠르게 등장하고 사라지는 세상에서, 나에게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는 경로와 사용법을 아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유용할 테니까요. 거꾸로캠퍼스에서는 교실 안팎에서, 성공과 실패의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든지 배움이 일어납니다.
배움이 있는 어디든 교실이 되는 알파랩*에서는 다양한 상황을 마주합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에서 진행하는 V랩에서는 ‘무서운 꿈을 떠올려 작품 만들어오기’,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던 일상적인 사물들을 관찰하고 연상되는 감정과 표정을 표현하기’와 같은 수업을 통해 다양한 상황에서 영감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경험합니다.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의 D랩에서는 학생이 직접 기사를 선택하고 분석합니다. 기사의 의도와 특정 의도의 배경이 된 사회적 맥락을 알아냅니다. 경험을 통해 배움을 얻는 과정을 자주 거치다 보면 실패, 당연한 일상, 가까운 콘텐츠에서도 호기심을 갖고 내 관심과 연결해 배울 지점을 찾는 태도는 습관이 됩니다. 배우는 법이 자기 것이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 옆에서 학생이 스스로 배우게 두고, 부족한 점에는 생각을 보완해주는 교육자가 곁에 꼭 필요합니다.
*알파랩은 거꾸로캠퍼스 혜화랩에서 배울 수 있는 일반 교육과정에서 기본적인 역량 교육을 이수한 학생이 특화된 환경에서 교과학습영역 밖의 전문적 스킬을 익히는 곳입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에서는 V랩(visualization), 서울창업허브에서는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의 D랩(data Science), 메이커 스페이스 Campus D에서는 메이커 기반의 M랩(Making), 헤이그라운드 2호점에서는 소셜벤처 기반의 I랩(Impact Business)이 있습니다. 알파랩에서의 배움이 궁금하다면 이 글을 읽어보세요.
잘 짜인 수업도 교실에 있는 모두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실패도 배움이 될 수 있도록 학생을 배움의 중심에 두고 삶에서 배울 거리를 꺼내보는 건 어떨까요?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사회시간의 청소년 노동법이나 작문시간의 자기소개서 쓰기 같은 실용적인 내용 위주로만 삶과 배움이 연결됐다면, 거꾸로캠퍼스에서는 교과나 수업내용과 상관없이 모든 배움이 학생이 배우고자 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삶과 연결됩니다.
한 학기를 두 개의 모듈로 나누어 모듈마다 학생들의 관심사에 따라 공부하고 싶은 주제를 정해 발표합니다. 모듈 주제는 모든 과목의 배움의 내용을 아우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원하는 주제와 교과목이 얼마나 잘 연결되는지가 중요합니다. 투표를 통해 많은 학생의 표를 받은 주제를 채택합니다. 학생이 모든 수업을 디자인하는 시작점입니다. 물론 모듈 주제와 과목을 더욱 연관성 있게 만들고 생각의 방향키가 될 틀을 짜는 건 선생님의 몫입니다. 주제를 중심으로 배운다는 것은 과목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해서 과학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거나 국어시간에 역사적 사건을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땐 통합 수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교사가 디자인한 수업을 완성하는 건 다시 학생의 몫입니다. 배움의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수업시간에 다루는 주제로 친구와 떠들면서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마인드맵에 의견과 지식을 나누어 모으며 시각화하기도 합니다. 학생이 낸 아이디어가 촘촘히 디자인된 수업의 형태로 돌아와 내용을 채워 나갈 때 내 삶과 배움이 가까이 연결되어있다고 느낍니다.
미래 교육학자 마크 프렌스키*는 지난달 열린 ‘미래를 여는 시간 교육혁신 포럼’에서 ‘더 나은 개인을 기르는 것이 과거 교육의 목적이었다면 앞으로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전 학교의 체인지메이커 활동에서 나와 세상의 접점을 인지하는데서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다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프로젝트의 흐름을 중요시하는 거꾸로캠퍼스에서는 근거를 들어 문제를 정의하고 체계적인 솔루션을 도출해내어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속한 팀은 이번 모듈에 다양한 플라스틱 쓰레기 중에서도 플라스틱 포장재가 가장 빨리 사용되고 많이 버려진다는 점에 착안해 ‘지구를 위해 플라스틱 포장재를 줄여야 한다.’라는 문제를 도출해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그다음 플라스틱 포장재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사용되고 많이 버려지는 플라스틱인 ‘식재료(과일과 채소) 플라스틱 포장재’를 줄이기 위해 환경보전이라는 가치에 공감하고 있어 우리와 프로젝트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는 생협인 한살림을 찾았습니다. 한살림의 과일과 채소가 재배된 시점부터 소비자 조합원에게 구매되지까지의 유통과정을 조사하고, 한살림의 사업이 진행되는 방식은 어떤지 알아보며 식재료 플라스틱 포장재를 줄이기 위해 지구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한살림’과 함께할 수 있는, 플라스틱 포장재를 줄이기 위한 장터를 기획했습니다. 다음 모듈에는 실제로 실행될 수 있도록 제안할 계획입니다.
세상과 가까운 질문을 던지는 일은 처음부터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학생 자신과 세상의 접점을 알고, 행동하도록 돕기 위해서 선생님은 학생 각각에게 맞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관심 있어할 만한 뉴스나 사례를 놓고 생각을 나누며 더 넓은 세상의 모습을 제시하는 거죠.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향한 꾸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학생에게 영향력 있는 이야기는 두 관심의 교차점에서 나오니까요.
*마크 프렌스키 교수는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과 ‘디지털 이민자(DIGITAL IMMIGRANT)’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안하고 그 실현을 위해 활동하는 교육자로, 책 <미래의 교육을 설계하다>의 저자입니다. 이 책을 주제로 한 책첵토크에서의 대화가 궁금하다면 이 글을 읽어보세요.
두 고등학교를 거치며 다양한 교육자를 경험했습니다. 그중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교육자는 무언가 달랐습니다. 오기, 부담, 감사 등 때마다 다른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성장과 직결되는 이유는 ‘감사’입니다. 거꾸로캠퍼스에서도 자주 감사를 느낍니다.
입학하고 첫 번째 모듈에 맡았던 프로젝트가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상해하고 있을 때 편히 하소연을 터놓을 때, 힘든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 만으로 잘하고 있는 거라며 응원받을 때, 제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 거라며 켄 로빈슨의 테드 강연을 공유받았을 때, 거꾸로캠퍼스의 학생대표가 되고 처음 전교생 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협력은 잘되는지, 도움이 필요한 일은 없는지 함께 살펴볼 때 더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꼭 대단한 호의가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교사의 사소한 배려와 관심이 감사하니까요. 성장의 동기가 배움 앞에서 적극적인 학생을 만들기에 진심이 전해진다면 변화는 시작됩니다.
앞서 이야기한 학생과 배움을 함께하는 교육자의 네 가지의 특징이 정답은 아니지만, 좋은 교육자는 학생이 꾸준히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그 시작을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곁에서 성장의 욕구를 싹 틔운 학생은 필요한 지식에 접근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삶과 배움을 연결하며, 세상과의 접점을 찾습니다. 시간이 지나 학교를 벗어나더라도 꾸준히 성장해나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는 것이죠. 더 나은 교육을 위한 방법이 쏟아지고 있고 고민은 더 많아지지만, 교사가 언제까지 학생과 함께 할 수 없기에 학생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능력은 변함없이 필요합니다. 이런 배움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자의 역할을 함께 고민해주세요.
글. 거꾸로캠퍼스 학생 나유정(눙)
편집. C Program 러닝랩 매니저 황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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