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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Feb 25. 2024

[짧은 영화리뷰] 쥐스틴 트리에 <추락의 해부>

샛별BOOK연구소


<추락의 해부>( Anatomy of a Fall, 2024)

정보: 드라마, 스릴러/ 프랑스/ 152분/ 2024.01. 31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쥐스틴 트리에

출연: 산드라 휠러,  스완 아르라우드,  밀로 마차도 그라너.

*스포일러 주의



8점 - 육체적, 사회적, 심리적 추락이 동시에 일어날 때. 무엇을 잡고 버틸 것인가의 문제. 


  우선 <추락의 해부>는 제96회 아카데미 5개 부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곧 2024년 3월 10일에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을 예정이다. 어떤 부분에 상을 받을지 기대된다. 또, 제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2019년 제72회는 <기생충>이 받았다.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니 기대를 듬뿍 안고 영화를 봤다. 


  남편의 추락사는 남은 아내 산드라(산드라 휠러)와 아들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너)의 정신적, 사회적 추락으로 이어진다. 남편의 사망에 언론과 법정은 아내를 의심하고, 심지어 아들마저도 엄마를 괴물이지 않을까 의심한다. 그렇다면 아내가 남편을 죽였을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 남편의 죽음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남편은 타살일까 자살일까. 엔딩이 올라가기까지 누가 범인인지 관객들도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정신 차리면 알게 된다. 믿을 수 있는 건 카메라뿐이다. 카메라는 '진실'만을 말할 의무가 있고, 관객은 그렇게 믿는다. 카메라가 보여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녀를 범인으로 몰 수 없다. 그건 카메라에 대한 믿음이다. 추정을 갖고 그녀를 범인으로 몰기엔 위험하다. 이 영화의 법정 시퀀스는 카뮈의 <이방인>이 떠올랐고, 법정에 공개된 남편과 아내의 녹음된 소리가 흘러나올 땐 <결혼 이야기>가 연상됐다. 


  부부란 무엇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화목해도 그 관계는 알 수 없다. 어쩜, 괴물과 괴물의 만남이 나올 때도 있다. 그 괴물 같은 부부만의 세계가 법정에서 모두 까발려질 때, 산드라의 모든 것은 추락한다. 남편의 추락사를 해부하면 할수록 죽음 사인이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 산드라의 육체와 정신, '부부관계'는 낱낱이 해부될 뿐이다. 해부하고 남은 건 찢긴 감정 덩어리. 해부된 감정들은 다시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미 남편은 죽고, 혼자 남은 아내는 이 모든 것을 감당한다. 남들이 해부하는 '부부의 세계'를 봐야 하는 산드라. 그리고 엄마, 아빠의 관계를 점점 알게 되는 아들. 여러 증언과 기록들이 '부부관계'를 찢고 해체하고 자르고 벌리고 난도질한다. 조각조각 해체되는 시간들을 묵묵히 지켜봐야 하는 모자. 그러나 부부 사이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는 것. 그걸 파헤치려는 검사처럼 카메라는 끝까지 밀고 들어간다. 



  법정에서 드러나는 산드라는 객관적으로 나쁜 아내로 나온다. 양성애자, 남편의 글을 조금 인용, 아들은 거의 남편이 돌보고, 아내는 남편과 말다툼하다 와인잔을 던지고, 남편의 뺨을 때리고, 외도를 하고... 남편도 글을 쓰고 싶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홈스쿨을 맡아서 하며 집을 수리하고 지쳐있다. 남편이 보기엔 산드라만 승승장구하는 거 같고, 자신은 추락하는 거 같았을까. 싸우는 소리를 녹음하는 남편. 그리고 그다음 날 남편의 추락. 


  법정에서 엄마를 보는 아들의 시선. 앞을 보지 못하는 아들은 법정에서 쏟아지는 언어로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아들의 최후 진술. 있는 힘을 다해 아빠가 했던 말들을 판사 앞에서 기억해 낸다. 그러나 아들의 말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이기적인 행동일까, 정말 아빠가 했던 말일까. 



  검사는 검사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변호사는 산드라를 변호사 입장에서 변호한다. 과연 검사와 변호사의 말을 듣고 판결을 해야 하는 판사와 배심원들. 그들의 판결은 최선인가.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판결하려고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진실은 남은 아내와 죽은 남편만이 알뿐. 


  이 영화는 다시 보고 한 장면씩, 한 장면씩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차분히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층층이 쌓인 은유와 암시, 상징이 수두룩해 혼란스럽지만...  프랑스의 사법제도, 산드라가 판결을 받기까지의 여정. 엄마가 아들을 걱정하는 모습, 이를 소리로만 들어야 하는 아들의 내면 등 여러 요소를 압축된 영화다.   


  남편을 잃어 슬픈 아내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아들의 슬픔과 법정 싸움을 대비하는 산드라의 모습이 스크린을 꽉 채운다. 어쩜, 남편의 죽음이 다소 홀가분하다는 표정도 언뜻 보이고. 남편이 죽었어도 애도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을 산드라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었을까. 아니,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평점 ★★★★ 8점) 




쥐스틴 트리에 감독 필모그래피


<시빌> 2019


<빅토리아> 2016


<에이지 오브 패닉> 2013



<투 쉽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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