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소설집 『사라진 것들』 중 <첼로>, 앤드루 포터, 문학동네. 2024.
화자는 마흔둘이다. 화자의 아내 내털리는 마흔하나로 첼로리스트며 어릴 때 영재, 거장이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텍사스대학교 교수이며 얼마 전 현악 학과장이 됐다. 부부에겐 2살 에린(딸), 5살 핀(아들)이 있다. 단란했던 가족에게 파장이 온다. 내털리는 오른쪽 어깨가 아프더니 손이 살짝 떨리기 시작한다. 어지러움까지 동반돼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의사는 그녀에게 파킨슨병을 진단하려고 한다.
그녀는 현악 4중주를 위해 곡을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 상태를 받아들이기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 아내는 촉망받고 유능한 첼로 교수다. 아내가 첼로를 연주할 수 없다니 믿기지 않는다. 이제 아이들이 엄마의 첼로 연주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도 슬프다.
당사자인 아내는 어떨까. 본태성 진전(수전증)은 첼로를 연주하는 내털리에게 치명적이다. 의사는 '일상에서 받는 모든 유형의 신체적, 정서적 스트레스가 떨림을 촉발할 수 있다면서 첼로 연주를 계속하고 싶다면 일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경고했다.'(p.78) 현악사중주단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는 내털리에게 잠시 연주를 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그 자리는 내털리의 수제자였던 에릭이 대체된다. 몸이 아프니 자신의 입지가 좁아진다. 할 수 있는 게 줄어든다. 교수도 연주자도 엄마노릇도 할 수 있을까.. 이제 마흔한 살인데 병은 인생에 위기를 가져온다.
남편은 낙심하지 말자며 독려했고, 다시 독주나 투어 공연을 하면 된다고 위로하니까 아내는 "난 포크도 제대로 쥘 수가 없어."(p.87)라며 와인만 자꾸 마신다. 파킨슨병을 앓기에 나탈리는 너무 젊다. 둘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건강한 몸이 사라지고 아픈 몸이 왔을 때 우리는 예전처럼 살 수 없다.
나탈리는 강연에서 들었던 강연자의 말을 떠올린다. '진정한 자아라는 건 존재하지 않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많으며, 그래서 진정한 자아라는 개념은 매우 강력하다'.(p.69) '진정한 자아'와 '실제의 자아'를 생각한다. 첼로를 연주하는 사람이 첼로를 연주하지 못하게 됐을 때 자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사라지는 것일까. 내탈리는 종이 위에 몇 개의 단어를 적는다 '엄마, 완벽주의자, 대리인, 포기자, 불구자, 첼리스트, 유령'(p.88) 이런 단어로 내털리는 자신을 규정한다. 그러면서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까, 내 몸이 더는 내 것이 아닐 때 진정한 자아는 어떻게 되느냐고."(p.88)
스스로 옷을 입지 못하고 머리를 스스로 빗지 못해도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픈 자신도 받아들여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그 과정은 고통일 것이다. 강연자는 진정한 자아란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냥 자아만 있을 뿐이다. 내가 원하는 진정한 자아와 실제 자아 사이의 괴리, 그 간극이 존재해도 나는 나이다.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하다. 인간의 몸은 느닷없고, 나약하며 부서지기 싶다. 인간은 이토록 파괴되기 십상인 몸을 지녔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아플 수 있고, 다칠 수 있다. 그래도 자아는 존재하며 그 또한 진정한 자아이지 않을까 소설은 반문한다.
아내를 보며 화자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p.92) 는 것. 그럴 때 삶을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을 내려야한다.
하지만 그날 밤, 내털리는 그곳에 첼로를 가져가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 스튜디오로 걸어가 방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았다. 벽에 방음 처리가 되어 있지만 나는 아내가 음악을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방 한가운데에서 바닥에 와인 한 잔을 놓고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은 그 모습을 보고 알 수 있었다.(p.79)
스튜디오는 누나를 위해 남동생 트랜트가 지어준 연습실이다. 뒷마당에 한가운데에 세워둔 스튜디오는 밤에 보면 '빛나는 거대한 유리 상자'(p.79)처럼 보인다. 이곳에서 첼로를 연습하고 또 연습했을 내털리. 내털리는 괴롭고 당황하지만 분노는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몸 상태를 부정하는 것인지 받아들이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남편에게 자신은 이 상황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수재, 영재 소리를 들어왔고 현악 부문 학과장을 맡고 있고, 연주자로 교수로 '진정한 자아'를 한층 발휘할 때 이런 몸 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파킨슨이 진행되면 두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낙담한다. 아직 엄마로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말이다. '실제 자아'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그럼에도 내털리는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앞으로 닥칠 상황을 남편과 상의하길 원한다. 이 유리상자 같은 스튜디오에서 내털리는 자신의 삶을 다독인다.
하지만 그 밤에 내털리는 첼로 케이스를 열지 않았다. 첼로를 한쪽 구석에 세워둔 채 스튜디오 한가운데에 놓인 작은 의자에 앉아 아이팟과 연결된 오디오를 켰다. 이퀄라이저에 불이 들어왔고, 나는 내털리가 요전 날 밤처럼 와인병을 옆쪽 바닥에 내려놓은 채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는 모습을 보았다.(p.91)
내탈리는 다시 스튜디오로 향한다. 이번에는 첼로를 들고 간다. 연주하는 대신 오디오를 켠다. 자신의 음악을 듣고 있을까. 화려했고 찬사 받았던 지난 시절 자신이 연주했던 곡들. 앞으로 그런 연주를 할 수 없겠지만 그때를 회상하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비친다. 남편은 내털리에게 다가가며 이런 감촉을 느낀다. '맨발 아래 시원한 땅이, 등에는 부드러운 바람이 느껴졌다.'(p.93). 남편은 희망을 갖는다. '내가 손을 흔들거나 이름을 부르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내털리가 나를 볼지, 이번 한 번만이라도 문으로 다가와 나를 안으로 들여줄지.'(p.93) 아마도 내탈리는 남편을 봤다면 문을 열어줬을지 모른다. 그전에는 연습을 위해 남편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으니 들어오라고 손짓할지도. 둘은 새로운 삶을 살 것이다. 같이 음악을 듣고, 와인을 마시면서... 지금의 상황이 '또 하나의 자아'가 되도록 헤쳐나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