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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Jan 15. 2019

아빠, 다음 생에는 자식 낳지 마세요

낳더라도 자식 이기는 부모가 되세요.

결국 그가 쓰러졌다. 마침내 그의 허리는 제 기능을 잃었다. 28년간 버텨온 그의 한계는 보란 듯이 터지고 말았다. 


스포 당한 영화의 결말처럼 어쩌면 우리 가족은 이미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늘 로프를 타고 아파트 정상은 올라갔어도 두 발로 걸어 산 정상 한 번 오르지 못한 그는 결국 주저앉아버렸다.


건축현장. 웬만한 청년도 버티기 힘들다는 그곳에서 50이 넘도록 이어진 노동. 무거운 걸 들고 오르고 내림의 반복, 곪을 대로 곪은 그의 허리는 결국 주저앉아버렸다. 동시에 허리와 이어진 다리 신경은 죽어갔고 최악의 경우인 하반신 마비를 통고받았다.


진실아, 아빠 왼쪽 다리가 안 움직인다."


평소에 장난이 많던 부녀 사이에 침묵이 맴돈다.

어떤 말이 그를 위로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를 위로할 수 없었다.


“엄살은. 수술하면 다시 나을 거야.”


아무렇지 않게 대꾸할 뿐이다. 그저 별 일 아니라는 것처럼 대하는 게 최선의 대처이다.




무엇이 그의 허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가장이란 이름으로 가족을 위해 28년, 이 악물고 버텨온 그의 인생의 무게가 그를 주저앉게 만든 것 일까?


그는 제대로 누워서 잘 수 없다. 새우처럼 옆으로 누워 자야 한다.

이마저도 그는 불편함을 호소한다. 이제 그는 잠조차도 맘대로 잘 수 없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남들보다 빨리 하루를 시작한 그는 이제 오후 5시마다 찾아오는 진통 주사로 하루를 마감한다.


마약성 진통제. 정말 아플 때 한 번 누르라고 했지만 아빠는 하루동안 3번을 눌렀다.


사실, 병원이 이번 처음은 아니다. 5년 전, 응급차에 실려서 온 그의 모습을 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괜찮아. 별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그와 달리, 의사의 표정은 별 게 아니었다.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한쪽 발부터 마비가 올 거라고 당부했지만 아빠는 아직 생계의 끈을 놓을 수 없었고, 몇 주의 물리치료를 받고 다시 로프를 잡았다.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아빠가 너한테 평소에 전화 잘 안 하는 거 알지? 그런데도 아빠가 너한테 전화하면 긴급한 일이 벌어진 거 일수도 있으니 웬만하면 꼭 전화받아라.”


그 순간 그 이후로 핸드폰 액정에 뜨는 ‘아빠’란 이름은 반가움보다 덜컥 내려앉는 두려움이었다. 부재중이라도 떠있는 날엔, 아빠가 받을 때까지 전화를 했고 별 일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내 일을 할 수 있었다.


지금 그는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고 허리 지지대를 차고 보행기에 의지하며 걷는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지만, 앞으로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우리 가족에겐 언제 어디서 아빠가 다시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걱정 속에 살고 있다.


수술 후 첫 보행. 자세가 삐뚫다.
자칭 패셔니스트. 그는 병원에서도 절대 비니를 벗지 않았다.


아빠는 그림을 잘 그렸다. 특히 만화 캐릭터를 잘 그렸다. 그는 가끔 나에게 말했다. 자신의 꿈은 만화가였다고.


지금 아빠는 말한다. 자신의 꿈은 우리 가족이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거라고.


언제부터인가 그의 꿈에 ‘그’는 없고 ‘가족’이 존재한다. 아빠란 이런 걸까? 가장이란 이런 걸까?

그는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에도 앞으로의 생계를 걱정한다. 다음 달부터 뭐 먹고살아야 하나, 뭐를 하며 살아야 하나.


‘만화가 김성규’가 아닌 ‘가장 김성규’로서의 삶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자신의 허리가 망가질 걸 알면서도 일터로 나가는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올 때 집이 낯설다는 그의 마음을 왜 모른 척했을까?


수많은 질문 속, 나는 딸로서 점점 할 말을 잃어간다. 설령 그 모든 것이 그의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그 선택을 하게 만든 이유에 분명 내가 있었음을. 나의 대학원 진학과 결혼이 큰 부분을 차지했음을 알고 있기에.


그런 딸에게 아빠는 말한다.


“네가 있기에 아빠가 존재한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나는 기도한다. 아빠, 이제 저를 이겨주세요. 저의 가족을 이겨주세요. 저희는 기꺼이 져드릴 마음이 있답니다. 이제 그대의 인생을 사세요. 환자만 가득한 병원이 아니라, 먼지만 가득한 건축현장도 아니라 펜과 종이, 그리고 오직 그대만이 가득한 곳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세요.


그리고 아빠에게 말한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결혼하지 말고 애도 낳지 말고 그냥 아빠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봐.”


아빠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


“다음 생에도 다시 부녀로 만나자. 아빠가 그땐 안 아프고 엄청 폼나는 일하면서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줄게.”


그렇다. 그는 이렇게 바보다. 죽을 때까지 나는 아빠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

그냥 나는 그런 그를 평생 동안 미안해하며 사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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