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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Aug 12. 2019

나물 반찬, 너만 상하는 게 아니야

섞고 비비는 비빔밥처럼 우리네 삶도 그렇게 어우러지는 거였어

감정은 때때로 별 거 아닌 일에 터지고 만다. 그만큼 참고 참았다는 거니깐. 그날도 어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단지 내가 평소보다 좀 늦게 일어났고 눈이 왔다는 정도였다.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나로선 늦어도 오전 6시 반엔 집을 나서야 안전하게 회사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심지어 눈까지 왔으니 지옥철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마음만 급해서 씻는 둥 마는 둥 화장도 포기한 채 나가려는 나를 엄마가 붙잡는다.


“밥 한 수저 뜨고 가. 나물 반찬 했어. 얼른 비벼 먹고 가.”

“안돼. 늦었어. 나 지금 나가야 돼. 갈게.”

“금방 비벼. 한 수저 뜨고 가.”

“아냐 엄마 먹어. 나 못 먹는다니깐? 갈게.”


뒤에서 잘 다녀오라는 엄마의 말에 대답하는 둥 마는 둥 집 문이 닫힌다. 아뿔싸, 바람 탓에 세게 닫혔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버스에 타자마자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려던 손은 순간 밀려드는 사람들에 떠밀려 결국 손잡이로 향한다. 그리고 그렇게 감정은 어긋났다.



드디어 엄마가 도착하고 평소처럼 엄마를 맞이한다.  엄마의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 배어 있다. 그리고 분명히 아침과는 다른 공기가 엄마를 둘러싸고 있다. 평소처럼 엄마가 씻을 동안 매우 늦은 저녁을 준비한다. 몇 분 후, 안방에서 엄마가 씻고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밥 먹어.”

대답이 없다.

“엄마 밥 차렸어. 밥 먹자.”


엄마는 결국 마지못해 식탁에 앉는다. 아침에 엄마가 만든 나물 반찬들을 그릇에 옮겨 담는다. 냉장고에 넣어놔서 온기는 없지만 아직도 나물들의 달큼하고 고소한 향이 코끝을 찌른다. 엄마는 천천히 수저를 들어 올린다. 그제야 나도 엄마를 따라 수저를 든다.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보여?"

역시나 대답이 없다. 분명 무슨 일이 있다.

"무슨 일 있어?"

“그냥 다들 엄마한테 무관심한 거 같아.”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순간 나물 반찬으로 가던 젓가락이 방향을 잃었다.


“응? 뭐 서운한 일이라도 있어?”

“엄마 요즘 몸 상태가 좀 안 좋아. 뭐 다들 각자 자기 일하느라 바쁜 건 알지만. 그냥 좀 그렇다고.”


엄마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이 밥을 먹는다. 밥을 씹는 소리만이 식탁을 메울 뿐 별다른 말을 선뜻 건네지 못한다. 어디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하다. 무엇이 엄마를 그렇게 서운하게 만들었을까. 나물 반찬보다 먼저 상해버린 엄마의 마음에서 상한 냄새가 났다. 왜 이걸 여태까지 못 맡았을까.


아침에 서둘러 나가느라 엄마의 아침밥과 마음을 거른 게 문제였을까. 내가 아니면 가족 중 누가 엄마를 서운하게 한 걸까. 아니면 우리 가족 전부인 걸까.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다시 대화를 이어 갈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이럴 땐 그냥 자연스럽게, 무조건 자연스러운 게 최고다. 나까지 시무룩해져 버리면 답이 없다.


"엄마, 나물 반찬도 맛있는데 같이 비벼 먹을까?"

엄마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큰 대접을 하나 꺼낸다. 그리고 엄마와 나의 밥을 담고 그 위로 맛있게 무친 나물들을 하나하나 올려놓는다.

“고추장 좀 많이 넣어라. 매콤하게.”


평소에 매운 걸 못 먹는 나지만 오늘만큼은 엄마의 말처럼 매콤하게 고추장을 듬뿍 넣는다. 쓱쓱 비비고 직접 짠 참기름을 한 번 두르니 고소한 향이 코끝을 건드린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정신없이 맛있게 비벼지고 있는 비빔밥에 향한 채로 말을 꺼낸다.


"엄마, 서운한 거 있으면 담아두지 말고 말해줘. 엄마도 우리 가족인데."

"뭐 서운한 건 아니고. 그냥 요즘 늦게 끝나서 밥을 잘 못 먹어서 기운이 없어서 그래."

"밥은 밥이고 엄만 엄마고. 알았지? 우리한테 꼭 말해. 설마 아빠야? 아빠가 속 썩여? 오늘 가족회의 한 번 해?"

괜히 오버하면서 한껏 으름장을 놓는다.

"너나 잘하셔."

이제야 엄마가 살짝 웃는다.


쓱쓱 비비고 참기름을 한 번 두르니 고소한 향이 코끝을 건드린다. 다시 엄마와 내가 고소해지는 순간처럼. 깨를 한 바퀴 휙 두른다. 고소한 향이 배가 된다. 마주 앉아 부딪히는 수저 소리가 경쾌하다. 톡 깨뜨린 계란 노른자가 얼음 같던 엄마의 마음을 살포시 덮어주듯이 밥알을 하나하나 감싼다.


“맛있다, 엄마.”

"그치? 나물 이거 다 엄마가 한 거야."

'엄마랑 같이 먹어서 더 맛있다.’라는 말은 살짝 낯 간지러우니 비빔밥과 함께 삼켜버린다.

"그러네. 엄마가 바빠서 그렇지 요리할 땐 잘한다니깐."

쓱쓱 계속 비벼가며 먹는다. 이제는 형체를 잘 알아볼 수 없이 뒤섞인 나물들이지만 입 안에 들어가니 엄마가 아침에 무슨 나물들을 무쳤는지 안 보고도 알겠다.



엄마는 분명 가족들에게 서운했다. 분명 마음이 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가족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 마치 지금 먹고 있는 비빔밥처럼 밥을 한데 모아 머리를 맞대고 비비듯이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비빔밥은 우리네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이 한데 섞여 살을 비비고 살아가며 갈등이 생겨도 결국 한데 어우러져 사는 우리네 모습과 이 비빔밥은 너무나도 닮았다.

나물의 종류는 각각 다르지만 결국 한데 모이면 최고의 맛과 향을 내는 비빔밥은 우리 가족과 너무나도 닮았다. 아빠와 엄마, 나 그리고 동생. 이 네 명은 생김새도 성격도 취향도 모두 제각각이다. 그런 네 명이 만나 한데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은 마치 비빔밥에 갖가지 나물들을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휙 둘러 섞고 비비는 지극히 한국적인 비빔밥 같다.


그래서 나는 비빔밥이 더 맛있다. 내게 비빔밥은 남은 반찬을 탈탈 털어 먹는, 상하기 전의 반찬을 처리하는 그런 마지막 떨이 같은 음식이 아니다. 엄마가 불 앞에서 몇 시간을 볶은 갖은 나물들과 고소한 참기름과 깨 그리고 매콤한 고추장이 한데 어우러진 섬세하고도 정성 가득한 요리다.

우리는 오늘도 살을 맞대고 서로의 사랑과 걱정을 비벼 먹는다. 때론 고추장처럼 매콤하게, 때론 참기름처럼 고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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