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통장입금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카드 결제는 너무 즉각적이다.
‘결제 완료’ 딱 누른 그 순간부터 후회의 강을 건넌 기억,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무통장입금을 선택한다. 일단 주문은 넣되, 입금은 보류. 그럼 조금이라도 더 고민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이 물건이 진짜 나한테 필요할까? 아니면 그냥 가격이 착해서?
아니면, 남들은 다 있으니까 나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무통장입금을 누르는 그 순간, 묘한 안도감이 밀려온다. 결제를 안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가벼워진다. 물론 그 물건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내 안의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사실 정말 필요한 물건이었다면, 카드든 뭐든 진작에 결제하고도 남았을 거다. 며칠, 혹은 몇 주를 장바구니에서 숙성된 물건을 드디어 꺼내 입금하면, 그 순간만큼은 마치 밀린 업무를 다 끝낸 것처럼 후련하다.
이 과정을 겪으면 더 똑똑하고 신중한 소비자가 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착각이어도 좋다. 어쨌든 나는 오늘도 무통장입금을 했고 그중 절반 이상은 결국 입금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선결제, 후고민’이라는 나만의 소비 철학 아래 살아간다.
가끔은 카드 결제를 망설이지 않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은 고민 없이 결제하고 하루라도 더 빨리 택배를 받는다. 나는 여전히 ‘정말 필요한 걸까?’라는 질문을 품은 채 며칠이고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그러다가 나는 어느새 또 다른 장바구니를 만든다.
가끔은 물론 결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땐 “이건 진짜 잘 샀다!”며 혼자 스스로를 토닥인다. 신중하게 고르고 벼르고 또 벼른 끝에 얻은 물건이니, 후회도 없다. 그만큼 나에게는 평화로운 소비의 전제가 ‘충분한 망설임’이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내 불안과 싸우는 방법이었다. 물건은 결제하면 오는 게 당연하지만, 그걸 통해 내가 얻고 싶은 건 제품보다는 ‘심리적 평화’였다.
다만, 이 평화를 얻기 위해선 수십 번의 상세페이지 정독과 수백 개의 리뷰 순례가 필요하다. 이건 집요함과 정성의 예술이다. 누가 후회를 돈 주고 사고 싶겠는가.
오늘도 나는 저번 주부터 벼르던 예쁜 신발 하나를 또 무통장입금으로 밀어놨다. 필요해서인지, 꽃샘추위처럼 변덕스러운 내 마음 때문인지 아직도 헷갈린다.
그래서.. 대체 산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