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그리고 동료와 함께한다는 것
-숭례 문학당의 매일 글쓰기 모임을 마무리 하면서 쓴 회고록 입니다 -
싱가포르가 락다운이 된 첫 달, 모든 회사가 재택 근무에 돌입하고, 식당이 문을 닫았으며, 사실상 할 수 있는 것은 마트에서 장보기와 집 근처에서 운동을 하는 것 정도였다. 유명 유투브 운동 채널들을 돌리며 땀을 흘리는 것도 2주쯤 되니 지겨웠다. 너무 지루하고 외로워서 한국의 친구들에게 자꾸 전화를 걸었다. 이제 한창 사회 생활하느라 바쁜 친구들이 전화를 못 받는 순간도 많았고,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현타가 왔다.
권태와 지루함에 몸부림 치다가 문득 깨달았다. 지금의 상황에 꼭 알맞은 일이 있다는 것. 바로 글쓰기였다. 그동안 기록해온 단상과 일기 들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엉덩이 딱 붙이고 글을 쓰기에는 지금 만큼 좋은 시기가 없었다. 마침 평소 좋아하던 사과집님의 글쓰기 모임 후기를 보고 무릎을 쳤다. 나 혼자서는 꾸준히 못할 것이 뻔하니, 함께 할 수 있는 동료가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아쉽게도 해당 모임은 추가 충원이 없어서 열심히 검색을 해봤지만, 첨삭이 있는 모임은 너무 비쌌고, 공고가 올라오기 무섭게 마감되는 모임도 많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모임이 '숭례 문학당 매일 글쓰기 반' 이었다. 절반은 선정된 주제로, 나머지는 자유 주제로 써야 했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마감과 나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는데, 월 5만원 이라면 나쁘지 않은 가격이니까. 그렇게 모임을 시작한 첫 날, 네이버 까페에 글을 올리고 깨달았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포스팅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요를 받고 싶어하는 사용자의 심리도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마음을 터놓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고, 그에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글은 조금 달랐다. 하루 종일 소재를 고민하다 새벽 2시가 넘어서 올린 글, 친한 친구에게도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글쓰기 동료들이 나를 응원한다고, 글이 너무 좋다고, 몰입해서 읽었다며 댓글을 달아주면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자기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기의 사진을 채팅방에 공유하고, 내심 칭찬을 기다리는 고슴도치 엄마 아빠처럼 말이다. 매일 아침이면 네이버 메인 화면을 켜서 댓글 알림을 확인 했다. 초록색 화면 오른쪽 상단에 떠오른 작고 빨간 동그라미를 보면, 마치 짝사랑하는 아이에게 카톡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댓글의 노예가 된 나는 하루에도 열 댓번씩 새로 달린 댓글이 없나 확인하곤 했다.
상처, 부끄러움, 열등감이 담긴 지극히 감정적인 글도 많았다. 보여줄 자신이 없었지만,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그런 것들이었다. 나의 20대. 불완전하고 나를 사랑하지 않고 인정하지 못했던 나, 완벽주의에 대한 고백까지. 어두운 감정과 섬세한 감성이 무겁게 느껴졌을 수도 있는데, 한 달의 글쓰기 동안 넉넉한 응원을 받았다. 고심해서 좋은 말들로만 피드백을 주셨고, 글의 구성이나 소재 선정 등 글쓴이의 의도까지 생각하는 섬세한 말들을 건넸다.
박민규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느 시대든. 독자라는 개념을 자꾸 대중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을 필요도 없고 실은 경제 능력과도 무관하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작가보다 더 특별한 존재들이다.
5월 내내 마치 작가가 된 기분이었다. 내 글을 바로 읽어주는 사람이 있고, 짧은 글이어도 독자이자 동료의 응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무지 감사했다. 생각이 엉켜서 정리되지 않을 때, 불필요한 문장들을 산더미처럼 앞에 두고 가지치기 할 때, 고친 글이 마음에 안들어서 자괴감을 느낄 때. 지난 댓글들을 다시 보고 또 보았다. 그 힘으로 써나갔다. 좋은 말들은 지루한 다시쓰기의 밤을 날 수 있는 연료가 되어주었다. 글은 혼자 쓰는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안다.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듯, 내 글이 자라는 데에도 그 만큼의 독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내 글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뗐는데, 마음은 이 글이 가져다 줄 먼 미래의 결과를 향해서 달려간다. 내가 애벌레처럼 곱씹고 붙들었던 글들 처럼, 내 글도 어서 단단하고 매끄러워져서 사람들을 위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턱없이 높은 기준에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되고 글쓰기를 일처럼 여기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속도로 글을 써나가고 성장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숨 돌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의 글 속에서 서울의 봄을 느꼈고, 배우자에게 닿는 애정어린 시선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덤이었다. 덕분에 어린 나의 글쓰기가 야망에 질식되지 않게 조금 걸음을 늦추고, 한 결 가벼운 마음으로 쓸 수 있었다.
독자가 흔하지 않은 시대에서, 한 달동안 그들의 관심과 둥근 말들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으로 느껴진다. 열정이 앞서느라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게 미리 좋은 말들로 마음을 든든히 채운 것같다. 긴 여행을 앞두고, 갓 지은 밥과 속을 덥히는 된장국으로 기운을 내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글을 쓰면서 실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와도 괜찮을 것이다. 다시 이 말들로 돌아와 허기를 채울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