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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옆에서 하얗게 벗겨진 몸으로 누워 자던 밤, 나는 그 묘한 잠 속에서 가엽게도 서성이는 꿈을 꾸었지. 인적이 드문 잿빛 길 위였나, 하얀 포말이 하나도 일지 않는 수면 그 아래였나, 홍매화가 잔뜩 핀 우아한 고궁이었나 기억은 잘 나지 않아. 아무래도 애지중지하던 사랑 하나를 잃어버린 모양이었지. 인상착의가 전혀 기억나지 않아 길 가던 사람을 붙잡고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 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놀이동산에서 엄마의 걸음을 놓쳐버린 헐거운 손바닥이 되어버렸지 뭐야. 고개를 조금 치켜들고, 그러니까 너무 안쓰러운 얼굴로 여기서 저기까지 빙빙 맴도는 일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그 속에서도 여러 밤이 지나기는 하던데, 그렇다고 내가 찾고 싶은 사랑이 눈앞에 짠, 하고 나타나지는 않더라고. 나는 혹여나 그 사랑 이곳에 다시 올까 싶어 밥을 먹으러 가지도, 잠을 자러 가지도, 유난히 밝은 달에 정신을 팔지도 않았거든.
이거 정말 큰일이다. 문득 이 사람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이는 거 있지? 그때부터였나. 입속에서 잔뜩 젖어 눅눅해진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하는 말이 반복해서 쏟아지기 시작했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꼭 우는 사람 같았지. 도대체 뭐가 그리도 미안했던 걸까. 내게 남은 모든 숨을 걸고 장담하는데, 그 꿈속의 나는 정확히 뭐가 미안한지도 모르고 있었을 거야. 단지 겁이 났을 뿐일 테니까. 겁이 날 땐 무조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사과해야 한다고 배웠던 어린 시절이 있었으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그것도 사랑씩이나 잃어버린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나는 그저 겁이 났기에 반사적으로 미안하다 말하는 꼬마 아이에 불과했던 거야. 사랑씩이나 잃어버린 건 정말이지 큰일인 거잖아. 나는 본디 사랑 외엔 아무것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생각하는 사람인데 말이지.
잠에서 깬 내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숨을 헐떡여. 본능적으로 들여다본 시곗바늘은 새벽 네 시 삼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어. 너는 여전히 나의 바로 옆에 누워 아기처럼 새근새근 잘도 자네. 잃고 싶지 않다고만 생각했었지, 자칫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아.
별안간 네가 너무 소중하다 느껴지는 바람에, 네 하얀 어깨에 내 손을 슬쩍 얹었어. 다행히도 너는 뒤척이지 않았지. 내일은 무얼 하며 놀까. 이렇게 소리 내어 묻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삼켜버렸어. 꽤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거든. 네 행복이라면 밥을 굶고 숨을 참아서라도 지켜주고 싶어. 그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오래도록 같이 있자.
너무 예쁘다. 어쩜 자는 모습이 이리도 예쁠까. 이제 나도 안심하고 다시 눈을 붙여볼게. 다시는 너를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꿈속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당연히 이곳에서도.
내일은 우리가 좋아하는 밤바다로 가자. 다행히 바람도 많이 불지 않을 거래. 둥근 달도 구름에 가리지 않을 모양인가 봐. 계속해서 좋은 꿈 꾸다 동이 트면 그때 만나. 눈이라도 마주치면 봄꽃처럼 안아줄게. 숨을 곳이 간절하다면 언제든 이 속을 게워 둘 테니 마음껏 웅크린 채 나를 두드려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