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8월이다. 사랑이 나를 거저먹으려 들어도 좋을, 가진 마음 전부 한 사람만을 위한대도 아깝지 않을 달.
창밖으로는 밤 산책을 나온 강아지들이 풀냄새를 맡는다. 우리 집 고양이는 그걸 한심하다는 듯 가는 눈으로 내려다봐. 속으로는 엄청 부러워하고 있다는 게 다 티가 난다. 얘는 꼭 거짓말을 할 때면 수염을 나팔처럼 펼친다.
사랑하는 사람과 호수공원을 걸었다. 저게 연꽃이야. 그애의 어깨를 감싸 안고 초록에 함께 속해있는 게 좋았다. 선홍빛 꽃봉오리. 밤인 탓에 짙은 옥빛을 띠는 초록. 모든 게 좋았다. 땀은 줄지어 흐르지만 미간을 찌푸리지 않아도 되는 날씨. 어제 쏟은 비 덕에 여름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연을 날리다 끊어져 달아난대도 손을 흔들어줄 수 있겠어. 불평 한번 없이.
그애가 검지로 호숫가 여기저기를 가리키다, 겸손한 학생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어쩐지 조금 더워지는 듯했다. 괜히 없던 더위를 불러와서는.
저녁으로 먹은 파스타가 금세 소화되고 곧 배가 출출해졌다. 이제 그만 갈까. 나는 그애의 손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잡아당겼다. 원래 기다리거나 어르고 달래는 것 따위 딱 질색인데. 의견을 묻는 것도. 그런 거 평생 안 해도 되는 삶이었으면 했는데. 물론 그 이기심의 축이 그애를 향해 기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 해주고 싶어. 그래도 괜찮고 하나도 억울하지 않아.
돌아가는 길에는 더위에 풀이 죽은 버드나무를 봤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 그애가 신난 얼굴로 불쑥 말했다. 나는 조금 더 더워지는 듯했다. 너무 좋아. 이렇게 같이 걷는 거. 여름밤 너무 좋아. 나는 걷는 것도, 여름밤도, 땀 흘리는 것도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애의 기쁨이 여기까지 전해진 나머지, 나도 덩달아 이 산책이 참 멋지다고 생각하게 됐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애와 나는 한참을 복닥거리며 떠들어댔다. 우리는 같이 사니까.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사랑은 늘 새로워. 이윽고 먼저 잠든 그애가 새근새근 소리를 내고 있었다. 좋은 꿈이기를 바라. 단잠이기를. 하나도 안 무섭다, 하나도 안 무섭다. 누군가의 단잠을 빌어주는 것만큼 징한 사랑도 없다던데. 이 말을 의식하지 않고도 나는 그애의 단잠을 내 것보다도 더 바라고 있었다. 몹시 낯선 환희로 온몸이 가득 채워졌다. 매미 소리와 선풍기 소리, 협탁 위의 시계 초침 소리가 기다란 호스관을 통해 내 귀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새삼 놀랐다.
내가 이 사람을 체할 만큼이나 사랑하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