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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Jul 27. 2022

여름밤과 체할 만큼의 사랑

산책


  8월이다. 사랑이 나를 거저먹으려 들어도 좋을, 가진 마음 전부  사람만을 위한대도 아깝지 않을 .


  창밖으로는  산책을 나온 강아지들이 풀냄새를 맡는다. 우리  고양이는 그걸 한심하다는  가는 눈으로 내려다봐. 속으로는 엄청 부러워하고 있다는   티가 난다. 얘는  거짓말을  때면 수염을 나팔처럼 펼친다.


  사랑하는 사람과 호수공원을 걸었다. 저게 연꽃이야. 그애의 어깨를 감싸 안고 초록에 함께 속해있는  좋았다. 선홍빛 꽃봉오리. 밤인 탓에 짙은 옥빛을 띠는 초록. 모든  좋았다. 땀은 줄지어 흐르지만 미간을 찌푸리지 않아도 되는 날씨. 어제 쏟은  덕에 여름이  발짝 뒤로 물러섰다. 연을 날리다 끊어져 달아난대도 손을 흔들어줄  있겠어. 불평 한번 없이.

  그애가 검지로 호숫가 여기저기를 가리키다, 겸손한 학생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어쩐지 조금 더워지는 듯했다. 괜히 없던 더위를 불러와서는.


  저녁으로 먹은 파스타가 금세 소화되고  배가 출출해졌다. 이제 그만 갈까. 나는 그애의 손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잡아당겼다. 원래 기다리거나 어르고 달래는  따위  질색인데. 의견을 묻는 것도. 그런  평생  해도 되는 삶이었으면 했는데. 물론  이기심의 축이 그애를 향해 기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해주고 싶어. 그래도 괜찮고 하나도 억울하지 않아.

  돌아가는 길에는 더위에 풀이 죽은 버드나무를 봤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 그애가 신난 얼굴로 불쑥 말했다. 나는 조금  더워지는 듯했다. 너무 좋아. 이렇게 같이 걷는 . 여름밤 너무 좋아. 나는 걷는 것도, 여름밤도,  흘리는 것도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애의 기쁨이 여기까지 전해진 나머지, 나도 덩달아  산책이  멋지다고 생각하게 됐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애와 나는 한참을 복닥거리며 떠들어댔다. 우리는 같이 사니까.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사랑은  새로워. 이윽고 먼저 잠든 그애가 새근새근 소리를 내고 있었다. 좋은 꿈이기를 바라. 단잠이기를. 하나도  무섭다, 하나도  무섭다. 누군가의 단잠을 빌어주는 것만큼 징한 사랑도 없다던데.  말을 의식하지 않고도 나는 그애의 단잠을  것보다도  바라고 있었다. 몹시 낯선 환희로 온몸이 가득 채워졌다. 매미 소리와 선풍기 소리, 협탁 위의 시계 초침 소리가 기다란 호스관을 통해  귀로 들어오는  같았다. 그리고는 새삼 놀랐다.


  내가  사람을 체할 만큼이나 사랑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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