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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angful Feb 20. 2017

너의 하루엔 내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고양이의 일상을 방해한 뒤 바치는 사과 편지

집사가 올리는 어떤 반성문


깨끗하지 않은 손으로 고양이 눈곱을 떼어줬다.

몇 시간 후 우리 집 고양이는 한쪽 눈이 조금 부어 잘 뜨지 못했다.


냉장고에 꽤 오래 방치됐던 안약을 넣어줬다.

눈치 빠른 니니는 안약병을 보자마자 도망가려 했고 억지로 붙잡고 눈을 벌려 약을 넣어줬다.


종종 있던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불 꺼진 방에서 곤히 잠든 니니의 몸이 참 작아 보였다.


거의 매일 외출 후 돌아와 안기는 걸 싫어하는 니니를 잡고 안아

"예쁘니깐 안아주지. 보고 싶었으니깐 좀 안아보자"라고 말했다.

발버둥 치는 니니 때문에 내 팔다리에 흉터가 잔뜩이다.


내가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것을 보는 동안

반려동물은 내가 보여주는 것을 세상의 전부로 배워간다.


니니가 늘 집에 있고 늘 예쁘고 귀여운 고양이로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가치와 정체성을 찾겠다고 매일 고민하면서 정작 니니의 고유함을 집중해서 바라보지 않았다.


나는 니니에게 내 감정을 멋대로 풀어버리거나 장난과 애정을 핑계로 괴롭혔다.

니니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매우 이기적이었다.


우리 집 고양이가 나 때문에 못하게 된 것들, 불편했던 것들, 해줄 수 있는데 안해준 것들이 몇 개 생각이 나서 적어본다.



옷장 위에 올라가 쉬지 못하는 니니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는 옷장 위는 니니가 유일하게 내 손에서 벗어나 맘 편히 숨어있을 수 있는 아지트였다. 먼지가 많은데 깨끗하게 치우기 힘들기도 하고 올려둔 짐이 늘어나서 니니는 이제 옷장 위에 올라갈 수 없다.

지금은 종종 냉장고 위에 올라가려는 시도를 일삼다 엄마한테 혼이 난다.

좋은 캣타워를 사주고 싶다고 생각한 지 몇 년 째다. 먼저 옷 장위부터 정리해야겠다.



편히 잠 자기 힘든 니니

잠이 든 모든 생명체는 사랑스럽다. 고양이는 눈이 부시면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자는데 귀여워서 일부러 형광등을 꺼주지 않았다. 잘 때는 왠지 털이 더 보드라워 보인다. 손대고 싶다. 니니가 싫어하는 쓰다듬기 공격을 기습적으로 감행한다. 자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찰칵찰칵 몇 십장 찍다 보면 잠귀 밝은 니니는 일어나 자리를 피한다.

꿈에 이상형으로 그렸던 남자 연예인이 나오면 잠에서 깨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쩌면 니니도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고 있었겠지. 온전한 니니의 시간만큼은 모른 척해야겠다.



박스 안에 갇힌 니니

고양이는 어떤 장애물도 민첩한 몸과 야무진 손을 사용해서 피해 간다. 이불속에 가둬도 머리를 요리저리 쑤셔 넣으며 금세 탈출하고, 머리에 박스를 씌워도 냥펀치를 휘두르며 나를 공격한다.

봉지나 쇼핑 봉투에 스스로 들어갈 때도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장난은 니니도 재밌어했던 것 같다.

서로 즐거운 장난이기 때문에 발톱을 세우지 않는다. 물어도 아프지 않다. 그런데 왜 내 팔에는 니니가 남긴 흉터가 가득할까.

고양이 혼자 가지고 노는 장난감들은 니니에게 잊혀 구석에 처박혀있다. 니니가 좋아하는 박스 놀이, 낚시놀이, 공놀이는 다 나와 함께 해야 하는 것들이다.

더 맞아주고 장난치며 놀아야겠다.



꾸중 듣는 니니

한동안 외출냥으로 자유롭게 생활하도록 했다. 아파트 1층이었기 때문에 베란다로 나가서 베란다로 들어오거나 신기하게도 현관으로 내보 내주면 다시 현관문 앞에서 문을 열어 달라고 고래고래 울었다. 고양이 친구가 생기고 나서는 외출 시도가 빈번해졌고 늦거나 심지어 외박을 하는 일이 생겼다.

차에 치일까, 고양이 무리와 싸울까 봐, 이상한 것을 먹을까 봐, 길을 잃고 집을 못 찾을까 봐 늘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래도 나가겠다고 문 앞에서 엉엉 울고, 밖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이 보기 좋아 결국 문을 열어줬다.

니니가 놀다 들어오면 항상 꼬질꼬질해진 몸을 대충 씻기고 폭풍 같은 잔소리를 했다. 니니는 신나게 놀다 잘 들어왔을 뿐인데 왜 혼이 나야했는지 영원히 모를 거다.



억지로 안겨 있는 니니

니니는 아기 때를 제외하고 안기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지만 하루에 한 번씩 꼭 안아본다.

안아서 눈을 가까이 마주치는 것도 좋고, 찰랑찰랑한 고양이 뱃살을 만지면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 스며든다. 반면 니니는 싫다고 울면서 발버둥 친다.

나는 니니를 만져 하루의 피로와 지저분한 감정들을 게워내려고 한다. 반대로 니니는 느닷없이 나에게 붙잡혀 자신의 하루를 방해받는다. 

인형이 아닌 내 가족이다. 고단한 나의 하루처럼 니니의 하루를 인정해줘야겠다.



휴식 방해하기

침대 밑에서 쉬고 있을 때 굳이 가서 사진을 찍는다. 귀찮아서 침대 밑 청소 깨끗하게 안 해준 게 마음에 걸린다.



팔베개해주기

아기 때는 종종 팔이나 다리를 베고 잤는데 자는 애를 내가 하도 만졌더니 이젠 내 옆에 살짝 떨어져서 잔다.



옷 입히기

굳이 싫다는 인형 옷 억지로 입히고 카메라를 들이대 보지만 벗으려고 난리를 쳐 잘 나올 리가 없다.



아침에 동물농장에서 본 에피소드 내용이

십 년을 넘게 산 반려견이 주인의 사소한 행동을 보고 버림받았다고 오해를 해 가출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것이 내 위주였던 너와 나와의 시간들.


내가 너에게 어쩌면 절대적인 존재여서 미안하다.

에둘러 표현하지 말아야겠다.


곧 봄이 오면 더 예쁜 꽃나무를 보여주고 싶다.


What greater gift than the love of a cat?
고양이의 사랑보다 더 큰 선물이 있을까?
- Charles Dicke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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