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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태국 도망기 14

위로 필요해요.

by Chiang khong Jun 12. 2016

6/11/토


홀로 있다.


8일 남자친구는 미얀마로 떠났다.
수요일 새벽 7시에 붉은색 썽태우에 실려 치앙마이 아케이드로 갔다.
9일 밤 양곤 360밧짜리 도미토리에서 걸려온 스카이프 전화 후로는 무소식이다.


무소식이 희소식.

믿고 있지만 하루 종일 스카이프와 페이스북을 켜놓고 기다린다.
그의 페이스북 접속은 2일로 넘어갔고
나는 숫자 2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보고 또 보고만 있다.

이틀 동안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할 정도로 미얀마의 인터넷 사정은 좋지 아니한가.
10일은 내내 택시-버스로 양곤-바고-인레로 이동만 한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인레호수면 인터넷 사정이 좋을 리 없지.


일본인 남자친구는 연락에 인색하다.
한국인 여자인 나는 연락에 목숨을 건다.
그는 그런 나에게 가끔 한숨을 쉰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핑글 핑글 돌았다.
무리한 다이어트에 잇몸도 빨갛게 부었다.
그래도 먹고살아야지 하며 힘을 내서
잘 가는 팟타이 집을 찾아 나섰다.


새벽 5시에 잠들어 9시 30분에야 일어난 탓에

몸이 자꾸만 흔들린다.

단골 팟타이 식당은 문을 닫아서
한참 만에야 탄닌 시장 팟타이 가게에서 45밧 새우 팟타이를 먹었다.
조금 살 것 같다.


시장에서 수박, 패션 플루츠, 멜론, 토마토, 상추, 각종 어린잎채소며 당근과 호박씨를
있는 양껏 골라 봉투에 넣었는데 62밧.
2000원.
한국의 야채와 과일도 이만큼 싸졌으면.


어제 밤새도록 무서워서 잠을 못 잤다.
해서 태국 종교 용품점에서 팔각형 중국식 부적 거울도 하나 샀다.

머리맡에 두고 자야지.

문구점에서 작은 노트도 한 권 사고
물 2리터 하나 사 돌아오니

에너지 고갈.


한숨 푹 잤다.
3시간여 자니까 몸이 조금 풀린다.

남자친구 얼굴도 그리고
동물 캐릭터도 그리고
이것저것 그리고 또 그리고.

아침에 사 온 야채를 씹어 먹는데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옆 건물에는 고양이가 10마리나 산다.
내 테라스에서 보이는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고양이도 두세 마리 있어 귀엽다.

시장에서 사 온 돼지 갈비를 입으로 뜯어 저 멀리 던졌다.
역시나 본 척도 안 한다.
산비둘기와 머리에 아파치 모양의 털을 곤두세운 작은 새들이 종종 거리며 지붕을 뛰어다닌다.
호박씨를 던져 주었다.

후루룩.
멀리 달아난다.


되는 일이 없구나.


외롭다.
남자친구가 떠나고 난 후 4일 동안 아무하고도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물건을 살 때나 맨션 주인과 눈인사를 할 때 빼고는.

사무친다.
침묵이 온몸에 사무친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

그저 그런 지겨운 대화라도 나누고 싶다.


엄마한테 미안하다.
나는 무뚝뚝한 딸이었다.
일이 끝나면 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라디오를 듣거나 인터넷을 틀었다.


엄마는 방문을 열고 고개를 쑥 들이 밀고는
그런 나를 말없이 구경하거나 이것저것 참견했다.

귀찮다고 했다.
하루 종일 사람들한테 시달려서 정말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

혼자 있는 지금은.


너무나 고요하다.
가끔씩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옆집에서 태국 여자들이 낄낄 거리는 소리
무언가가 옮겨지며 내는 작은 소리
그 소리들에 위안을 받는다.


누군가가 아무 의미 없이 내는 소리가 한줄기 위로가 된다.


벌레가 들어와 바닥에 스치며 지잉지잉 내는 소리조차도
위로가 된다.


멀리서 울려오는 오토바이 소리
작은 풀벌레 소리

낡은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 조차도

모든 게 위로가 된다.


하지만 날카롭게 들려오는 고양이 소리는 왠지 무섭다.


매일 테라스에 나가면 노란 눈 두 개가 바라보고 있다.
까만 고양이 눈인데 노랗게 불을 켜놓은 것만 같다.

먹을 걸 좀 넉넉히 줘야겠다.
참치라도 사 나를까나.


어제 밤에는 친구를 괴롭혔다.

피곤한 친구에게 계속해서  페이스 북으로 대화를 걸었다.
누군가와 이어져 있고 싶었다.

새를 키울까 거북이를 키울까 했다.

지금은 아까 얼떨결에 들어온 작은 딱정벌레를 키운다.

나가지 말아다오.


텔레비전을 틀면 인도 방송이 나온다.

광고만 지겹게 틀어댄다.

전기세가 무섭지만 (1 유닛당 10밧)
텔레비전 또한 크나큰 위로다.


엄마가 왜 텔레비전을 켜놓고 자면 그나마 잘만 하다고 하는지 알겠다.

이렇게 외로울 수가.

새벽 12시 16분의 이 고요함이
몸으로 절절히 배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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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뚝 탑승 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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