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남매의 맏이로, 내 또래라면 웬만해선 명함 내밀기 힘든 K-장녀로 태어났다. 그러니 어렸을 때는 커다란 안방에서 다섯 명이 나란히 누워 잠을 잤고, 여름이면 엄마 아빠까지 7명이 거실에서 대자리에 누워 잠을 잤다. 중학생 때는 이모와 한 방에서 한 이불을 함께 썼고, 고등학생 때는 기숙사에서 4명이 방을 썼는데 2층 침대 두 개가 놓여 있는 방이었다. (우리 학교의 방 배정 시스템은 조금 특이했는데 영어과, 스페인어과, 중국어과, 일본어과 학생 한 명씩을 같은 방에 배정했다. 그래서 갓 입학했을 당시의 룸메들과는 자기 전에 "굿 나잇" "부에노스 노체스" "완 안" "오야스미"하며 각 나라말로 인사하기도 했다ㅋ) 기숙사 생활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룸메는 대부분 내 친구 S였지만, S가 고향에 내려가 있는 방학이나 S가 파리로 교환학생을 가 있을 때는 다른 학과 학생들과도, 중국인 유학생과도 한 방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에 휴학을 하고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지만, 나는 여전히 남동생 둘과 한 집에 살았고, 남동생 한 명이 더 상경하자 우리는 지금의 집으로 와서 네 명이 함께 살고 있다.
이것이 내 동거의 역사다.
그러니 여수에서의 2주 살기는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여수 2주 살기'에서 나는 '여수'라는 여행지보다 '(혼자) 살기'에 방점을 둔 채로 떠나왔다. 드디어 해방이다!
숙소에 오자마자 신이 나서 짜요짜요와 엑설런트를 샀다. 이제 냉동실을 열 때마다 동생들이 먹었을까 봐 전전긍긍할 일은 없다. 엑설런트는 좋아하는 순서대로 노란색을 혼자 다 먹은 다음 파란색을 먹어야지! 이게 바로 어른의 특권, 혼자 살기의 특권 아닐까?
나는 종종 내돈내산으로 장을 보고도 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비굴한 메시지를 남기곤 했었다.
굳이 말로 하지 않고 메시지를 적어두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남동생들과 한 집에 산다는 것은 거의 셰어 하우스에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간을 공유할 뿐 소통은 필요할 때만 간결하게. 그것이 K-남매가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말수 없는 조용한 집구석이라 하더라도 동거인의 유무는 큰 차이다. 남동생 1호는(*구분을 위해 나이순으로 1호, 2호, 3호라고 번호를 매기겠다.) 아침마다 노래와 랩을 했다. 군대를 다녀와서는 조금 철이 들었는지 그 빈도수가 현저히 낮아졌지만, 그전까지는 매일 그 녀석의 노래로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노래는 좀 나은 편이다. 랩을 하면 특유의 스웩(?) 넘치는 동작들을 곁들이며 (진짜 킹받...) 랩 고문을 당해야 했다! 남동생 2호는 샤워 마니아다. 샤워 1시간은 기본, 여기에 노래는 옵션이다. 이 녀석 역시 화장실을 코인 노래방으로 생각하는지 샤워를 하며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댄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3호가 1,2호와 같이 산다는 점이다. 남동생은 3호는 임용고시 준비생으로 24시간 귀마개를 끼고 산다. 여러분은 이 아슬아슬한 동거가 얼마나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지 짐작이나 될까?
그러니 여수는 나의 탈출구요, 구원자였다. 그렇다. 여수는 나에게 예수와도 같았다!
여수에서 나는 마음만 먹으면 하루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듣지 않은 채로 살 수 있었다.
또 한 친구는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논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여수까지 와서 그렇게 살 순 없지 않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불현듯 어떤 에세이에서 읽은 것이 생각났다. 또렷이 기억나진 않지만, 골자는 혼자 살면 게을러지기 십상이니 관찰 예능을 찍는다 생각하고 시간을 보내면 조금은 보람찬 하루를 만들 수 있다는 거였다.
그렇게 나는 <나 혼자 산다> 찍기(?)에 돌입했다.
<나 혼자 산다>는 몇 안 되는 내가 챙겨보는 예능이다.
<나 혼자 산다>만큼 말 많고 탈 많은 예능도 없지만, 주말에 킬링 타임용으로 이만한 예능도 찾기 힘들다. 가끔은 정말 원석 같은 게스트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최근에 본 중 가장 흥미로웠던 에피소드는 배우 이유진이 나온 편이다. (2023년 3월 3일 방송분)
이유진은 낡은 반지하 집을 몰딩과 바닥 하나하나 다 뜯어고쳐 살고 있었는데, 내부만 봤을 때는 보증금 500에 월세 35인 집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본인이 사는 공간이 허름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그는 정말 똑 부러진 사람처럼 보였다. 이불 하나 흐트러진 꼴을 못 보고, 휴지나 티슈도 하나하나 케이스에 담고, 수건도 호텔식으로 접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와는 정반대에 가까운 성격... 이날은 비좁은 마당을 아기자기한 테라스로 꾸미는 에피소드가 소개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진짜 이 편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여느 자취생과 다름없이 그 역시 본가 찬스를 이용해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준 짜장, 달걀, 과일 등의 각종 식량과 물티슈 같은 생필품들을 야무지게 챙겨 온다. 그런데 터질 듯 물건이 담긴 그의 봉투는 집 바로 코앞에서 진짜 터져버린다. 순도 100%인 그의 표정에서 나는 일종의 비장미*까지 느낄 수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핸드폰 후면이 깨진 것을 발견한 그는 와인 병나발을 부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 혼자 산다>를 본 중 최고의 엔딩이었다. 글로 옮기니 감동이 반으로 줄어들어 아쉽다ㅠㅠ)
*비장미: 미적 범주의 하나. 자연을 인식하는 ‘나’의 실현 의지가 현실적 여건 때문에 좌절될 때 미의식이 나타난다. 슬픈 느낌을 준다.
혼자 병나발을 부는 그의 모습, 어찌나 처량해 보이던지... 그 가엾은 밤을 달래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의 그 며칠 안 되는 <나 혼자 산다> 체험판에서도 현타 오는 순간이 많았다.
역시 친구 말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데, 뭘 하려고 하면 사달이 나나 보다.
일례로, 나 혼자만의 여행이니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삼각대를 사서 서울에서 여수까지 낑낑 들고 갔었다. 그런데 나사 하나를 못 조여서 한 시간 동안 삼각대와 씨름을 했다. 손톱도 부러지고 어디 도움을 요청할 데도 없는 없고... 이런 것 하나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헛똑똑이로 산 지난 세월을 반성하며 눈물이 날 뻔했는데, 갑자기 에피파니*의 순간이 찾아왔다.
*에피파니: 갑작스럽고 현저한 깨달음 혹은 자각
어차피 해결하지 못할 일, 우울해한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나. 없던 일 셈 치면 되는 거다.
(친구의 말을 되새기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에피파니를 보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만은 그 주문이 통했는지 정말로 이 일을 없던 것으로 쳐버려서, 정작 이모가 여수에 왔을 때는 아예 까먹고 도움을 구하지 못했다. 결국 서울로 돌아갈 때가 다 되어서야 겨우 조립했다는 슬픈 이야기...
그리고 또 하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다. 여수에서 딱 한 번 직접 요리해 먹었는데, 말이 요리지 사실 콩불 밀키트를 사서 조리해 먹었다. (언젠가 엄마가 전화 와서는 '너 리틀 포레스트 하러 간 거 아니었냐고, 요리 좀 하고 있냐고' 물어봤지만 죄송합니다. 이것이 처음이자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썰어야 하는데 칼이 거의 파리바게트 케이크 칼 수준이었다. '호스트도 너무 했지, 무슨 칼을 플라스틱 칼을 갖다 놨어...' 하며 고기를 거의 손으로 찢어놨는데 다음날 설거지를 하려고 보니 그것은 플라스틱 칼이 아니라 칼집을 씌워둔 것이었다. ^^ 칼집 안에 있던 진짜 칼은 어찌나 반짝반짝 빛이 나던지... 하하.
그래도 칼로 썬 듯 예쁘게 찢었다(고 해)
하... 정말, 나, 혼자 살고, 아무도 내가 뻘짓한 거 못 봤는데, 이불킥하기 있냐... 그동안 아무리 일만 했기로서니 이렇게 생활력 제로여도 되는 거냐... 아니야... 살면서 한 번쯤 누구나 이런 실수 하잖..하던가요?
이 글을 보는 친구들이 나와 손절하지는 않을지 심히 염려되는 순간이다.
결론: 남동생 1호, 2호, 3호와 오순도순 잘 살겠습니다. 오늘은 군대에서 철들고 온 줄 알았던 남동생 1호가 하루 종일 되지도 않는 이경영 성대모사를 하며 저를 괴롭혔지만 품고 가겠습니다. 동거계속 진행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