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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Jul 05. 2022

질문이 잘못됐습니다만

강퇴가 맞을까 포용이 맞을까

영어 단톡방 방장 데이에게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데이 : 오류, 뭐 하나만 물어보려고, 우리 영어 수다방에 아직 대화에 한 번도 참여 안 한 Soy라고 있는데, 내보내야 될 것 같아서. 어떻게 생각해? 

오류 : 내보내도 되고 안 내보내도 되고.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안 내보는 게 나음.

데이 : 왜 그렇게 생각해?

오류 : 읽고는 있으니까. 보통은 관심이 없으면 아예 읽지도 않을 텐데, Soy는 그래도 읽기는 하니까. 만약 안 읽으면 내보내라고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안 내보내는 게 낫다고 얘기한 거야. 단지 무슨 이유가 있어서 참여를 못하는 거겠지. 일이 바쁘거나, 낯을 가리거나, 흥미를 끌만한 소재가 아니거나 등등.

데이 : 아,,,,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오류 : 질문이 잘 못 됐네. 질문을 바꿔봐. 내보낼까 말까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참여하게 할까로.


질문도 틀릴 수 있다. 질문도 잘못될 수 있다. 틀린 질문을 하면 틀린 답을 얻게 된다. 잘못된 질문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만약 Soy를 내보내면 Soy와는 영원히 이별하게 된다.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반대로 Soy를 내보내지 않으면 Soy라는 한 명의 사람은 존재한다. 존재하니 언제든 참여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질문을 바꾸면 답도 바뀐까. Soy를 어떻게 하면 대화에 참여시킬 수 있을까로 질문을 바꾸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 다양한 방법이 떠오르게 된다. Soy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내 볼까를 생각할 수 있고, 참여 독려 선물을 건넬 수도 있으며, Soy의 관심을 끌만한 재미난 이벤트도 떠올려 볼 수 있다. 


과거 나 또한 데이와 같은 고민을 했던 시기가 있다. 900명이 넘는 단톡방 참여자들이 활발하게 대화를 이어나가길 바랬는데 예상과는 달리 참여율은 저조했다. 900명 중 참여하는 사람은 1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생각대로 특단의 조치가 취했다. 바로 강퇴 조항을 만들었다. 한 달간 참여하지 않으면 강퇴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결과는 강퇴 조항 신설 전보다 더 참여율이 떨어졌다. 결과를 보고서야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아차렸다. 난 참여를 유도한 것이 아니라 참여를 강제했다. 참여를 강제한 강퇴는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다.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깨달은 건 강퇴 정책이 아니라 햇볕 정책을 써야 한다는 후회뿐이었다. 


생각의 오류를 경험한 뒤 질문을 바꿨다. 어떻게 하면 참여를 더 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러자 방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삼행시 짓기, 참여 후기, 독서 서평, 퀴즈 이벤트 등을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재밌는 이벤트 아이디어는 끊임없이 떠올랐고 덕분에 생각하는 시간도 즐거웠다. 결과는 어땠을까? 


좋았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얼떨결에 선물을 받은 참여자들은 사소한 선물에도 기뻐했다. 또 선물을 받은 사람이 다시 선물을 주는 이상한 현상까지 생겼다. 즐거움의 선순환 효과를 이렇게 경험했다. 


하지만 즐거운 이벤트 효과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대신 많은 것을 얻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필요로 커뮤니티에 들어온다.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모두 다른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조용한 단톡방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수다스러운 단톡방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정보가 많은 단톡방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정보가 적더라도 익숙한 곳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변화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변화를 싫어한다.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아직 커뮤니티 참석률이 저조하다면 그건 운영자의 문제가 아니다. 아직 때다 커뮤니티가 무르익지 않아서 일지 모른다. 무르 익기까지 시간이 더 흘러야 한다. 혹은 참여자가 참여할 준비가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실망하지 말고 그대로 계속 운영해나가면 된다. 


데이가 했던 질문은 닫힌 질문이었다. A가 맞냐, B가 맞냐로 결정되는 닫힌 질문은 닫힌 결과를 초래한다. 닫힌 질문보단 열린 질문을 해야 제대로 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단톡방을 3년간 운영하면서 확실하게 배운 한 가지가 있다. 그 한 가지는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걸 깨달은 뒤론 내 생각을 백 퍼센트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참여율이 좋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커뮤니티가 존재할까? 존재할 수 없다가 내 생각이다. 어떤 커뮤니티에 들어간다 한 들 백 퍼센트 만족하는 커뮤니티는 없다. 항상 부족한 부분이 보일 것이다. 사람들이 떠돌이처럼 이리저리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는 이유다. 결국 돌아다니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내 입맛에 딱 맞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문제는 커뮤니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사람 사이에 그냥 편해지고 좋아지는 관계는 없듯 커뮤니티 또한 마찬가지다. 나의 편안함은 누군가가 얼마큼 애쓰고 감수한 불편의 대가다. 일방적인 한쪽의 돌봄으로 안락과 안전이 유지된다면 결코 좋은 관계로 발전하기 어렵다. 봄비와 수선화의 관계처럼 그것이 ‘그냥’이 되려면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참음도 필요하고, 주고도 내색하지 않는 넉넉함도 필요하며, 고마움을 잊지 않은 마음 씀도 필요하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 있다.
-헤겔-



철학자 헤겔의 말대로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 달려 있다. 그러니 마음 문을 닫는 닫힌 질문 말고 열린 마음과 열린 질문을 해보는 건 어떨까?


남이 먼저 알아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남을 알아주기, 받기만 하지 말고 먼저 주기, 마음속에 담아둔 고마움을 말로 표현해 보기, 먼저 인사해보자. 먼저 얘기 꺼내기 방법은 많다. 커뮤니티는 참여로 만들어진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커뮤니티도 마음을 연다. 내가 먼저 참여해야 애정도 생긴다. 부족한 부분을 볼 것이 아니라 내가 채울 수 있는 부분을 봐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상호 관계라는 것이 생길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함께 만드는 커뮤니티. 너무 근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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