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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Jun 24. 2022

작고 초라해지는 내가 될 때 하는 일 한 가지

흐린 날씨엔 마음에 우산을 펴자

글쓰기는 용기와 좌절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일이다. 매일 글을  때마다 용기와 좌절 마음속에서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용기가 이기는 날은 비교적 수월하게 글을 쓸 수 있다. 손이 알아서 움직인다. 일사천리로 글이 쌓인다. 필요한 글들이 실타래 풀리듯 술술 나온다. 인용할 명언이나 문장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자연스러운 연결에 신이 난다. 가끔 나에게 재능이 있나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글 한 편 발행하고 혼자 뿌듯해하고 즐거워한다. 오늘도 해냈다며 혼자 신난다. 오전에 글 한 편 완성되는 날이면 날아갈 것 같다. 하루가 두 배로 길어진 느낌도 얻는다.


반대로 좌절이 이기는 날엔 괴롭다.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한다. 머리는 쓸거리를 찾는데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손이 무겁고 몸도 무겁다. 점점 무기력해지고 내 안의 귀차니즘이 고개를 든다. 날씨는 또 왜 이럴까. 쓰지 말까? 하루 안 쓴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하루만 재낄까. 책상에 앉아 이 책, 저 책을 기웃거려도 도통 책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이러다 앞으로 아무것도 못쓰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만들어진다. 오전에 못쓰면 오후에는 써지겠지 하지만 안 써지긴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은 점점 증폭된다. 누군가 나타나 이런 상황에서 건져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쓰는 이에게 용기와 좌절은 주기적으로 반복됨을 알아차렸다. 용기와 좌절은 날씨 같았다. 매일 날씨가 변하듯 쓰기를 대하는 내 마음도 맑음과 흐림을 반복했다. 맑은 날만 계속되지도 않았고 흐린 날만 계속되지도 않았다. 맑음이 계속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흐림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흐림에서 빨리 빠져나올 방법이 필요했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이 비를 막아주듯 마음의 흐림을 막아주는 도구가 필요함을 느꼈다.


오늘은 좌절이 줄다리기에서 이긴 날이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마음이 흐렸다. 일어나서 지금까지 한 일이라곤 괴로워한 것뿐이다. 책상에 앉았다 바닥에 앉았다 밖에 나갔다 인터넷 창을 열었다 닫았다를 수십 번 반복했다. 빈 화면을 멍하니 응시했다. 손을 움직여야 쓸 수 있는데 눈만 움직였다. 


그러다 마우스로 내 블로그 열었다. 블로그에 썼던 지난 글을 눈으로 따라 읽기 시작했다. 나는 2개의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네이버 블로그는 2015년에 만들었고 티스토리 블로그는 2019년에 만들었다. 네이버 블로그에는 1,084개의 글이 쌓여 있고 티스토리는 200개의 글이 쌓여 있다. 네이버 블로그엔 살아온 다양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좋았던 것들 위주로 기록하다 보니 폴더들이 하염없이 늘었다. 예전 기록한 글이 과거로 날 안내한다.


3가지 감정이 동시에 찾아온다. 한심스럽다가, 울컥하다가, 놀라기를 반복한다. 티스토리에 작년 9월에 쓴 어떤 글에 한참을 머물렀다. ‘신이시여, 정녕 제가 이런 글을 썼단 말입니까.’ 읽으며 감탄했다. 내가 썼지만 내가 쓴 글 같지 않았다. 글에서 어떤 감정이 전달됐다. 어떻게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냐며 읽으면서도 나를 의심했다. 매번 글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도돌이표를 찍는 줄 알았는데 가끔은 느낌표 같은 글도 썼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다. 그 글 밑에는 5개의 댓글도 있었다. 댓글 하나하나가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별 것 아닌 5개 댓글이 비를 막아주는 우산처럼 느껴졌다. 


어떤 기록은 미래의 내게 보낸 편지가 되기도 한다. 기록이란 단어는 ‘기록할 기’와 ‘기록할 록’ 자로 이루어져 있다. 사전에 찾아보면 기록은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또는 그런 글”이라고 나와 있다. 기록은 과거의 내가 했지만 ‘후일’의 내가 읽으면 응원, 희망 그리고 위안을 얻는다. 지금 이 순간 기록의 힘을, 기록의 중요성을, 기록의 감정을 과거의 기록에서 찾았다. 그때 나는 알았을까. 그 순간이 단 한 번뿐이라는 걸, 같은 순간은 절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 미래의 힘든 나에게 부쳐야 한다는 걸.


덕분에 다시 쓸 힘을 얻었다. 과거에 쌓은 기록을 통해 확실하게 알았다. 다시 쓸 힘이 생겼다. 기록에는 어떤 힘이 있다.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기록은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잊지 않게 해 준다는 것이다. 과거 내가 남긴 기록은 삶이 건넨 사소한 기쁨들을 알아챌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사실 말이다. 마음의 우산을 하나 발견했다. 우산을 종종 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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