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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Jun 08. 2022

나는 기생충이다

흑역사 구간을 통과하는 중입니다.

“석헌아, 집에 있어? 어제 수박 샀는데 좀 갖다 주려고.”


나는 기생충이다. 45년째 부모님께 기생하며 산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은 아들, 딸 낳고 잘 살며 지내는 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세울만한 것도 아무것도 없다. 결혼도 안 했고 직장도 없는 노총각 신세다. 부모님에게 자랑 거리 하나 제공하지 못하는 못난 장남이 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보다 모든 면에서 나은 남동생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남동생은 은 10년 전 결혼해 지금은 아들, 딸과 함께 충남 홍성에서 잘 살고 있다. 남동생이 장남의 자리를 대신해서 많은 일들을 잘해준다. 장남의 빈자리를 동생이 다 짊어지고 있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동생에게도 미안한 형인 셈이다. 


1년 6개월 전 부모님 집에서 나와 독립했다. 부모님의 안쓰러운 눈빛으로부터 도망쳤다. 지금은 5평 오피스텔에서 혼자 서식한다. 부모님 집에서 오피스텔까지 거리는 걸어서 10분 거리다. 멀리 가서 살려했는데 서울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곁에 있으라 하셔서 부모님 집 근처에 방을 얻어서 나왔다.


완전한 독립이라 할 수 없다. 모든 것에서 온전한 독립이라야 완전한 독립이라 할 수 있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일주일에 1번은 부모님 집에 들러 반찬을 얻어먹는 신세기 때문이다. 그것도 공짜로 얻어먹는다. 몸만 비대하고 용돈도 챙겨 드리지 못하는 아들이 바로 나다. 


영화 <기생충>에는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명대사가 나오는데 난 계획이 없다. 계획이라고 부모님께 입버릇처럼 말한 것이 출간이었다. 올해는 꼭 글을 써서 책을 내겠다고 했는데 그런 내게 엄마는 출간은 아무나 하냐고 하셨다. 놀 때 버스 운전 자격증이라도 하나 더 따라고 하셨다. 주택 관리사나 요양사도 권유하셨다. ‘놀 때 뭐라도’ 하라는 것이다. 


난 부모님 앞에서 말로만 ‘네’라고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5평 오피스텔에 앉거나 누워 책만 읽고 글쓰기만 반복했다. 책 읽고 글 쓰는 삶은 생활에 보탬이 되진 않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 한 가지 나아졌다면 글의 분량이 좀 는 것 정도가 있겠다. 지금 내 삶은 나중에 삶을 돌아봤을 때 어떤 구간에 해당할까? 혹시 흑역사 구간은 아닐까.
 
흑역사 하니까 박찬욱 감독이 떠오른다. 얼마 전 칸 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에게도 흑역사가 있었다. 1992년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데뷔했지만 영화는 폭망 했다. 어느 정도 망했느냐면 어떤 곳에서도 리뷰를 써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준익 감독의 증언에 따르면, 이후 <아나키스트>라는 영화를 박찬욱 감독에게 맡기려고 했는데 당시 제작자들이 “감독이 박찬욱이면 투자할 수 없고 감독만 바꾸면 투자하겠다”라고 반대해 다른 감독에게 기회가 넘어갔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5년 동안 영화를 찍지 못하다가 드디어 기회를 얻어 <3인조>라는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지난번 폭망이 무색하게 더욱 격렬히 망했다. 


<기생충>, <살인의 추억>, <괴물> 등으로 믿고 보는 감독 대열의 선 봉준호 감독에게도 흑역사가 있었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가 완전히 망해 상업적 비전은 없는 마니아 취향의 감독으로 분류됐다. 당시 봉준호 감독은 시나리오 공모전에 여러 차례 떨어진 류승완 감독에게 “난 재능이 없나 봐... 우리 제빵사나 할까?”라고 자주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때 그들을 위로했던 사람은 당시 앞날이 안 보이기로는 자웅을 겨루던 박찬욱 감독이었다. 
 

나도 그들처럼 흑역사 구간을 통과하는 중이라 생각한다. 그들처럼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중이다. 글쓰기는 아무나 하냐는 말은 들었지만 괜찮다. 재능이 있고 없고 보다 더 중요한 건 나 스스로 있다고 생각하는 그 믿음이 중요하니까. 


횡단보도 앞에서 만난 엄마는 ‘여자 친구랑 먹어’라며 고기 2팩을 내게 건네셨다. 나는 속으로는 받고 싶었지만 염치없어 환불하자고 말했다. 아직 엄마가 준 고기도 다 못 먹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환불을 마치고 횡단보도 앞에서 헤어지기 전에 엄마가 내게 흰 봉투 하나를 건네셨다.


  “자, 이거 받아.”
  “에이, 아니에요.”
  “여자 친구 만나는데 옷도 좀 사 입고. 깨끗하게.”


엄마는 휙 봉투 하나를 손에 쥐어주시고 뒤돌아서 가버리셨다. 난 엄마에게 더는 말을 붙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내가 한 일이라곤 고작 컴퓨터 앞에 앉아 타이핑을 하며 수박을 먹는 일이다. 


봉투에는 돈만 든 것이 아니었다. 인생이 흔들릴 때마다 그토록 목말랐던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평생 당신 방식대로 봉투에 담아서 주느라 내가 잘 몰랐던 그 사랑은 내내 나의 자각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진심을 볼 줄 모르는 바보였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이렇게 늦게 깨닫고도 한편 아이처럼 기분이 좋다. 엄마의 남은 일생에는 그저 내게 받기만 했으면 좋겠다. 


언제나 부모님의 자랑이 되고 싶었지만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매번 실수했고 많은 것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한참을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나이가 마흔이 넘었다. 마흔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하여 ‘불혹’이라 하는데 왜 나의 마흔은 계속 흔들리기만 하는 걸까? 아직도 삶에 대해 잘 모르고 공부가 부족해서 계속 넘어지길 반복 중이다. 


책 한 권 출간한다고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고 싶다. 출간은 내게 스스로에게 내준 숙제다. 나는 지금 밀린 숙제를 해나가는 중이다. 책이 내게 새로운 씨앗이 되길 희망하며 오늘도 나는 쓴다. 내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부모님께 이왕 늦은 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마음 담아서 오늘도 하루를 써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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