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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Jul 14. 2022

지루함을 못 견디는 남자

생각의 안개에 갇혔던 시절

새로움만 쫓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지루함을 느끼면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 변화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좀 더 빨리 나를 변화시켜줄 새로운 환경을 쫓았다. 생각이 안개에 갇혀 있던 때였다.   


독서 모임만 하더라도 여러 곳을 돌았다. 시작은 초등학교 친구가 있던 삼천포였고 트레바리, 아그레아블을 거치고 중간에 출간 작가와 함께하는 독서 모임에도 참석했다. 다수의 모임을 경험한 뒤 지금은 한 곳에 정착했다.    


어떤 모임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항상 2프로 부족함을 느꼈다. 부족한 갈증을 이유로 새로운 모임을 기웃거렸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을 비슷한 이유로 혹은 주기적으로 모임을 옮겨 다녔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다. 새로운 모임에서 마주칠 때면 반가웠고 또 새로운 모임 정보를 얻었다. 같은 성향의 사람들과 온라인에서 그렇게 자주 마주쳤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이유는 같았다. 변화가 없다는 이유. 나도 그들도 계속 같은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결국 시간 낭비였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갈증은 모임의 부족함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이었다. 난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 내 갈증을 채워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스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서 말이다. 적극적인 학생이 좋은 수업을 만들듯 모임도 마찬가지였다. 적극적인 참여와 소통이 갈증 해결의 도구임을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뒤돌아보니 결국 어느 곳에서 정을 붙이지 못하는 내가 보였다.


혹시 당신이 문제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고수의 일침)



문제는 모임이 아니었다. 문제는 바로 나였다. 문제는 내 마음의 태도였음을 깨닫지 못하고 환경 탓만 했던 것이다. 문제가 내가 아닌 외부로 돌렸기에 계속 핑계 뒤로 숨고 있었다. 온갖 것이 마음에 안 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고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고 어딘가 내가 만족할 수 환경이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돌아다니다 보니 백 퍼센트 만족하는 환경이란 어디에도 없음을 몸소 경험했다.   


늦었지만 이제는 안다. 새로운 것은 계속 만들어진다는 것을. 새로운 것만 쫓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란 것을. 결국엔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바뀌지 않는한 아까운 시간만 버리게 된다는 것을. 새로움 대신 한 곳에 안착하고 적극적인 참여와 소통으로 내 갈증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냥 편해지고 그냥 좋아지는 관계는 없다. 만약 내가 편안함을 느낀다면 그건 누군가가 얼마만큼 감수한 불편의 대가다. 일방적인 한쪽의 돌봄만으론 결고 좋은 관계, 좋은 모임은 유지되지 않는다. '그냥' 편한 상태가 되려면 어떤 경우엔 참아야 하고, 주고도 내색하지 않는 넉넉함도 필요하며, 고마움을 잊지 않는 마음 씀도 필요하다. 그렇게 시간을 차츰 쏟으면서 거리를 좁혀가다 보면 확실한 끈 같은 것이 생긴다.


변화란 대부분 지루한 시간을 버텨낸 뒤에야 찾아온다는  깨달았다. 물은 99도에서 끓어오르지 않는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물은 도약 직전 99도까지 지루함을 혼자 견딘다. 마지막 1도를 버티지 못하면 끓지 못한다. 성장, 배움, 발전, 변화도 마찬가지다.


혹시 과거 나처럼 매번 새로운 모임만 쫓아다니며 변화가 찾아오지 않는다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자문해보길 권한다.


계속 자세를 바꾸다간  자세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 이젠 웬만하면 바꾸지 않는다. 새로움을 더이상 쫓지 않는다. 하던  계속한다. 지루함과 사랑에 빠지자 내게도 변화찾아왔다. 마음의 태도를 바꾸자  눈을 가리던 안개는 걷히고 밝고 맑은 눈을 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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