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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Aug 28. 2023

구멍 난 옷을 입습니다.

버리지 않습니다.

비가 갑작스럽게 쏟아지던늦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입고 갔던 얇은 면 셔츠가 흠뻑 젖어버렸다. 마침 가까운 곳에 무인양품 매장이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가장 저렴한 베이지 색 티셔츠를 한 장 사서 갈아입었다. 


다음날, 새로 산 베이지 색 티셔츠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했다. 어디에도 긁힌 적이 없기에 하자가 있는 제품이 분명했다. 나는 옷을 곱게 갰다. 보관했던 영수증을 챙겨서 옷을 교환하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내가 이 옷을 반품하면 이 옷은 버려질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새로운 옷을 주느라, 생산할 필요 없었던 옷이 만들어질 것이다. 누군가 쓸모를 무쓸모로 규정하면 생산의 톱니바퀴가 찰칵찰칵 돌아가고 무엇인가 소비되고 다시 언젠가는 버려지게 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웬만한 흠집이나 훼손은 굳이 바꾸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기가 조금 더 일찍 찾아왔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렇게 나는 구멍 난 옷을 입는다. 옷의 본질은 훼손되지 않았다. 버리지 않는다.




image source: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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