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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집알바생 Dec 02. 2016

HOT과 ICED 사이 그 어디쯤

두 번째 이야기

손님과 마주하는 공간. 먼 듯 가까운 듯 한 거리가 인상적이다.


탁! 타닥!

경쾌한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손님들. 그들은 공통적인 습관이 있다. 바로 두 눈을 찡그리며 내 뒤로 시선을 보내는 것. 난 잘 알고 있다. 저렇게 있는 힘껏 인상을 찌푸리며 보지 않아도 메뉴판에 글씨는 매우 잘 보인다는 사실을. 하지만 왠지 모르게 메뉴판을 쳐다볼 때면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다는 표시인 것일까. 아니면 내 뒤에 햇살을 머금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있어, 그것을 감상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시키는 건 아메리카노. 아니면 라떼.

하지만 또 하나의 선택이 남았다. 바로 HOT/ICED, 뜨거운 거랑 차가운 거, 아니 따뜻한 거랑 시원한 거 중에 말이다. 한 번은 이런 주문을 받았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잠깐 정적이 흘렀고, 나는 그 손님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쳐다봤다. 사실 이런 주문 실수 에피소드는  SNS에 웃긴 자료로 떠도는 것을 읽은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내가 겪을 줄이야. 도대체 그분은 어떤 온도를 원하는거람. 미지근한 것은 아닐 테고...

다행히 주문한 손님 옆에 있던 친구 분의 놀림으로 그렇게 이상한 주문을 하신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평소에 그분은 계절과 관계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밖에 안 먹는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나도 추웠던 바람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 수 없었다고. 하지만 습관적으로 아메리카노 앞에 '아이스'를 붙였다고. 맞아. 그럴 수 있지. 아마 다들 자기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그러고 있을 테니까.


올해 같이 무더운 여름에도  간간히 따뜻한 아메리카노 주문이 들어왔다. 샷 뽑고 뜨거운 물 위에다 부으면 끝나는 가장 간단한 제조 과정이 참 마음에 들기도 하지만, 사실 커피 맛을 아는 사람은 따뜻한 커피만 마신다고 한다. 유럽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메뉴를 찾기 힘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커피를 더욱 잘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 속이 찬 편이라 따뜻한 커피를 선호한다. 날이 더워도 아이스를 마시면 입 속만 시원하고 뱃 속은 탈이 날 것 같다. 이렇게 까다로운 몸뚱이 때문에 뜨거운 것도 잘 못 마시는데 일단 시키고, 식혀서 마신다. 차근차근 올라오는 커피 향이 코 안으로 들어오면 바로 마시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그러다 입천장이 데이면 며칠을 고생할 것도 잘 알고 있다. 답은 기다림 뿐.

어느 날 이런 나의 고민을 단박에 해결해 줄 주문을 받았다.


아메리카노 핫에 얼음 두어 개만 넣어주세요.



찾았다! 나에게 딱 맞는 그 온도.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찬물을 섞으면 좀 밍밍하게 덩어리 지는 느낌이고,

식혀서 먹으면 간간히 불 폭탄이 터지는 느낌이라 별로였는데...

단지 얼음 몇 개로 컵 안에 담긴 것들이 잘 어우러져서 손에 손잡고 화합하는 느낌이랄까.

이 나만 아는 평화로운 미지근함에 혼자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카페에서 알바하길 잘했어'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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