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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ul 11. 2020

2년 만의 한국 방문(1)

처음 아내와 아이랑 헤어질 때만 해도 혼자서 어떻게 2주를 버틸지 막막했다. 그런데, 정신없이 텀 페이퍼를 쓰고 기말시험을 준비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기말시험이 끝난 뒤, 우리 학과의 학위수여식이 열렸다. 영광스럽게 나도 이날 단상에 올라가게 되었다. 1년 차를 끝내고 나서 치른 퀄 시험의 세 과목 가운데 한 과목에서 운 좋게 1등을 해서 소정의 상금과 함께 상장을 받게 된 것이다. 한국에 간 아내는 사실 시상식 날짜에 맞춰 다시 아들과 미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물론, 아내와 아이가 시상식에 참석해서 그 자리에서 함께 축하해주었다면 너무나도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한국에 가는 것은 적어도 1년은 또 미뤄야 했다. 개인적으로 이번에는 꼭 한국에 들어가고 싶었기에,  아내를 설득해서 시상식은 나 혼자 참석하고 대신에 나도 이번에 한국에 가는 것으로 결정한 것이었다.


퀄 시험 과목 중 거시경제학에서 1등을 해서 받게 된 상장


학위수여식에서 상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줄 선물로 가득 채운 캐리어를 끌고 바로 공항으로 출발했다. 내가 한국까지 타고 갈 항공편은 2주 전 아내와 아이가 탔던 항공편과 똑같은 스케줄이었다. 원래는 다음날 새벽 일찍 집에서 나와 공항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토쥬맘은 이른 새벽시간에 공항버스를 타러 15분 정도 혼자서 걸어가는 것은 위험한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냥 하루 일찍 공항으로 가서 근처 호텔에서 잔 뒤, 새벽에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게 좋겠다는 아내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2주 전 공항 안에 있는 비싼 호텔을 예약했다가, 결국 돈만 날린 경험이 아직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 중 가장 저렴한 호텔로 예약했다. 공항에 도착한 뒤, 나는 다시 호텔 셔틀버스로 갈아탔다. 셔틀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니, 호텔이 나타났다. 공항 근처 호텔 치고는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막상 혼자서 호텔 방에 있으니 할게 아무것도 없었다. TV를 좀 보다가 호텔 근처 태국 음식점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호텔 로비의 바에서 가볍게 마티니를 한잔 마셨다. 혼자서 홀짝홀짝 술을 마시니, 지난 2년 동안의 유학생활의 주요 장면들이 하이라이트로 머릿속을 지나갔다. 박사과정 수업들을 무사히 끝마쳤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한 마음과 함께 지금까지 옆에서 도와준 가족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날 밤, 호텔 로비 바에서 마신 마티니


그렇게 할 일 없이 한참 동안 호텔 로비에서 빈둥빈둥거리다가 다시 방으로 올라와 잠을 청했다. 그런데, 마치 소풍 가기 전날 잠 못 드는 아이처럼, 내일이면 드디어 한국에 가서 아내와 아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는데, 얼마 안 있어 알람이 울렸다.


까짓 껏 잠 좀 못 자면 어때, 비행기 타고 가면서 자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침대에서 박차고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러 로비로 내려갔다.


아내와 아이가 비행기를 탔던 2주 전과는 달리 공항은 많이 한산했다. 출국 심사를 하는데, 여권을 확인하던 심사원이 한국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오라고 웃으면서 인사를 해줬다. 덕분에 기분 좋게 출국 심사를 끝내고, 탑승 게이트로 이동했다. 게이트 앞의 의자에 앉아서, 투명 유리 밖으로 보이는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아마 2주 전에 바로 이 자리에서, 아내와 아이도 비슷한 모습으로 비행기 탑승을 기다렸을 것이다.


이른 아침, 탑승구 앞에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의 모습


얼마 후 내가 탄 비행기는 출발했고, 몇 시간 뒤 환승 공항인 샌프란시스코에 무사히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은 국내선 터미널과 국제선 터미널이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보안검사를 다시 받을 필요 없이 논스톱으로 국제선 터미널로 걸어서 이동할 수 있어서 편했다.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는 유나이티드 항공이었는데, 이 노선이 워낙 인기 노선이다 보니 비행기는 완전 만석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나는 전날 못 잔 잠을 보충하기 위해 바로 취침 모드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제 조금만 있으면 한국에 도착한다는 셀렘 때문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까짓 껏 잠 좀 못 자면 어때, 한국 가서 자면 되지

로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미리 준비해 간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었다.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읽으니, 이제 몇 시간 후면 서울에 도착한다는 게 좀 더 리얼하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제대로 잠을 못 자서 눈이 빨개진 상태로, 인천공항에 오후 3시쯤 도착했다. 한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습하다는 것. 지난 2년 동안 워낙 건조한 곳에서 살았더니, 그새 몸이 건조한 환경에 적응이 되어버렸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는 동안 땀이 줄줄줄 흐른다. 위탁 수하물로 보낸 짐을 찾은 뒤, 인천공항의 도착층에 있는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일주일 동안 한국에서 쓸 유심칩을 대여했다. 그리고 바로 공항 리무진을 타고 미리 예약해둔 서울 도심의 호텔로 출발했다.


한편, 내가 인천공항에 도착해 서울로 이동하던 그때, 아내와 아이도 처갓집이 있는 D시에서 서울로 한창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때가 하필이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이어진 연휴여서 고속도로가 엄청 막혀 도착 예정 시간보다 늦게 서울에 도착할 것 같다는 연락이 아내로부터 왔다. 아무래도 아내와 아이보다 내가 먼저 호텔에 도착할 것 같았다.


내가 탄 공항버스는 한 시간여를 달려 광화문에 도착했다. 돌을 갓 지난 토쥬군을 안고 비자 인터뷰를 하러 미국 대사관에 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새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구나. 차창 밖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연휴 마지막 날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보였다.


공항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던, 광화문 광장에서 휴일 오후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이런저런 감상에 젖다 보니 어느새 버스가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배정받은 룸으로 들어와 미국에서 가져온 짐들을 대충 풀었다. 그러자 아내에게서 호텔 근처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드디어, 2주 만에 아내와 아이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혹시 토쥬군이 아빠를 낯설어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아들은 나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달려와서 나에게 안겼다. 토쥬군을 꼭 안아주던 그 순간,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오며 쌓인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2주 만에 아빠를 보고, 기분 좋아 방방 뛰고 있는 아들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함께 오셨는데, 그동안 토쥬군 돌봐주시느라 고생하신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잠시나마 쉬실 수 있게 작은 서프라이즈 선물로 두 분을 위한 방도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그렇게 2주 만의 가족 상봉을 마치고, 일단은 다시 호텔룸으로 들어왔다. 무엇보다도 장시간 비행으로 찌든 몰골을 샤워를 하면서 원상태로 복구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원래 계획은 저녁으로 우래옥에 가서 냉면과 불고기를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를 비롯해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장시간 버스를 타서 피곤하시고 나도 비행기에서 거의 못 잔 탓에 계획을 변경해서 그냥 호텔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먹기로 했다.


저녁을 먹으며, 가족들과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었다. 하지만 저녁을 먹는 내내, 나도 모르게 눈꺼풀이 감겨오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호텔룸으로 다시 들어오자마자 바로 침대에서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다. 내가 자는 동안, 아내와 아이는 장인어른과 장모님 방에서 밤늦게까지 재미있게 놀았다고 한다.


이렇게 서울에서의 첫째 날 일정이 끝났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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