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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부존재가 이루는 한 쌍

이선진, 『밤의 반만이라도』를 읽고

by 고전파 Mar 20. 2025

 

이선진, 『밤의 반만이라도』표지이선진, 『밤의 반만이라도』표지




          젊은 한국 소설가들의 작품을 읽어나가는 작업도 어느덧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읽어나가는 와중에도 리스트는 갱신되고 있다. 그래서 당초 목표에서 1/3쯤 와 있다. 


          이선진은 그 리스트 중 몇 안 되는 남성 작가인데,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전혀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꽤 놀랐다. 분명 남성 작가인데 『밤의 반만이라도』에 수록된 8편의 단편 소설 모두 1인칭 여성 레즈비언을 화자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 작가가 1인칭 여성을 화자로 두고 소설을 쓰는 일도 많지 않은데, 레즈비언이라니. 게다가 단지 한 편이 아니라 8편 모두 그렇다는 점에서 다소 파격적으로 느껴졌다. 작가 스스로 고백하기를 자기 자신과 가장 먼 존재를 화자로 삼고 싶어서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렇지 않아서인지 남성작가-여성화자의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선진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와닿는 지점은 말장난이다. 짐작해보건대, 작가는 이러한 말장난을 좋아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게 아닐까. 소설들 속에 등장하는 말장난들은 많지만 기억에 남는 것들을 적어본다.


닉네임 ‘맛있으면 짖는 개’는 짖지도 않고 잘 말했다. 내가 사람 하나 만든 셈이었다.
 -「나니나기」, 50쪽.     
야심차게 낸 앨범을 처참하게 죽 쑨 뒤 연휘는 진짜 죽을 쒔다. 
-「나니나기」, 53쪽.     
야심차게 낸 앨범을 처참하게 죽 쑨 뒤 연휘는 진짜 죽을 쒔다. 
-「나니나기」, 53쪽.     
그렇게 우리는 별을 보러 가지 못한 대신 서로를 벽 보듯 했다.
-「보금의 자리」, 103쪽.     
더는 아무것도 죽일 게 없어서 나는 조용히 숨죽인다.
-「망종」, 135쪽.     
나는 언제나 잘나기보다는 잘 나고 싶었다. 무엇을? 하고 묻는다면 나 자신을.
-「작가의 말」, 323쪽.     
마음 씀씀이가 헤픈 아이들이 너를 봐줬기 때문이었다. 눈 뜨고 보기만 한 게 아니라 봐‘주었기’ 때문이었다.     
-「밤의 반만이라도」, 198쪽.          

  

          이러한 말장난은 장난답게 상황을 유쾌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그러나 불편한 상황에도 이 말장난들은 비켜서질 않는다.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지금 웃어야 하는 건가 울어야 하는 건가, 다소 헷갈리게 만든다. 그 애매모호한 분위기가 이선진의 소설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소설 속 화자들은 대체로 연인이나 가족들에게 대체로 어떤 생각을 품지만, 입 밖으론 끝내 내뱉지 않는다. (또는 못한다.) 이와 같은 장면은 자주 포착되는데, 이건 어쩌면 화자들이 가진 성정체성에 기인하는 근본적인 성향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내뱉지 못하는 건 주로 화자의 진심에 속한 말들이다. 대체로 자신과 연인의 관계에 대한 의심이다. (물론, 「보금의 자리」에서처럼 홧김에 진심을 내뱉기도 한다.)     

 

          연인은 일종의 구두 계약일 뿐 법적으로 확인받을 순 없다. 예외는 존재하지만, 그건 사실혼 같이 특수한 경우일 뿐이다. 이선진의 소설 속 설정처럼 동성 연인들의 경우라면, 일반적인 이성 연인들보다 더 난감한 감정선 위에서 관계가 성립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관계에 대한 의심과 의문이 한데 어우러질 때,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들의 존재 그 자체와 관계의 존재를 ‘부존재’로 확인한다.     


          「망종」에서 한아는 할머니의 애인 우매 씨의 집 앞에서 ‘거기 계셔요?’라고 묻고 우매 씨는 ‘여기 사람 안 살아!’ 외친다. (121쪽.)     

          「무관한 겨울」에서도 이와 유사한 질의응답이 이어진다. 영문은 가벽을 두드리고, 인영은 그 소리를 듣고 ‘여기 없다.’라고 말한다. ‘없음을 말하면서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158쪽.) 또한 병원의 화장실에서도 영문은 옆 칸의 인영에게 거기 있냐고 묻고, 인영은 ‘여기 없다’고 답한다. (174쪽.)      


           인영의 말처럼 없음을 말하면서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역설. 이건 앞서 언급한 이선진 특유의 말장난의 계보에 포함될 수도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 다른 지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단순한 ‘존재와 부존재의 대립’이 아니라 ‘존재-부존재가 이루는 한 쌍’이라고 말해볼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났을 때 조금 더 힘을 얻는다.     


그저 살아 있음에서 살아 없음의 상태로,      
-「생사람들」, 271쪽.     


          ‘살아 없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살아 있다.’는 말의 한 쌍으로써는 존재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말을 만들어내면서까지 존재와 부존재를 끈질기게 한 쌍으로 묶는다. 이러한 흔적이 드러나는 이 소설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밤의 반만이라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 미수 씨가 너, 다운이를 낳게 된 경위다. 미수 씨는 전맹 시각 장애인인데, 자신의 임신 테스트기의 결과조차 볼 수 없다. 그래서 공원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를 상대로 테스트기의 줄이 몇 개인지를 묻는데, 아이는 한 개라고 답한다. 미수 씨는 자신의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이는 왜인지 거짓을 말한 것이었고, 미수 씨는 다운을 낳았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아이의 존재. 한 줄의 존재는 사실 한 줄의 부존재였고, 두 줄의 부존재는 두 줄의 존재였던 것이다. 이처럼 존재와 부존재는 대립하는 게 아니라 하나로 엮여져 있다. 요컨대, 이 소설에서도 드러나듯이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물고 이어지는 것처럼.          










          이 소설에선 독특하면서도 재밌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름조차 특이한 경우도 있는데, 우매 씨, 주옥 씨, 미소, 소미 쌍둥이는 유별난 이름만큼이나 성격도 유별나 쉽게 각인된다. 또한 작가는 소설을 일종의 유기체로 만드는데 탁월하다. 「보금의 자리」에서 화자가 유령에게 한 방은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사실 유령은 투시를 할 수 있어서 그 방의 내부를 다 보았다는 것. 그리고 그 방 안에는 유령이 화자에게 주고 싶었지만 줄 수 없었던 토분이 들어 있던 것. 이러한 세심한 설정은 서사 속에 녹아들어 소설을 하나의 유기체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군데 군데 ‘별의 순간’ 같은 부분들을 포착할 수 있지만, 8편의 화자 성격들이 대체로 유사하다. 읽는 내내 긴 연작소설이나 하나의 장편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보금의 자리」나 「밤의 반만이라도」는 굉장히 인상적인 소설이었고, 작가의 다음 작품을 또 볼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될만큼 좋았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집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남긴다. 내가 비밀에 대해 가졌던 생각과 유사해 인상 깊었다.  



 이건 비밀인데, 그 당시 나는 몹시 들키고 싶었다. 뭘 들키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저 들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충만했다. 어쩌면 그날도 너에게 내 마음을 들켰는지도 몰랐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금을 침범한 네 손끝이 내게 닿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첫눈에 반하는 것의 필요조건이 누군가를 처음 본 순간이 아니라, 눈을 감아도 누군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밤의 반만이라도」,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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