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거 내 얘기 아니야?

: 현실과 망상 그 사이에서

by 따콜


혹시 나 말하는 건가




| 쿨하지 못해 미안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매우 소심하고 예민한 사람이다. 겉으로는 '괜찮아', '그게 뭐라고', '신경 안 써' 같은 말을 달고 살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나 표정, 행동 하나에도 아주 쉽게 영향을 받는다. 심리학을 공부했으니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어서 편하겠다는 질문은, 유감스럽다. 심리학을 배운 덕분에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띄고, 더 많이 느껴지는 것들을 못 본 척하는데 에너지가 쓰인다(모든 느낌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언제부턴가 일로서가 아닌,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더 피곤해졌다.



친구들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내 말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을 때, 어떤 친구가 평소보다 짧아진 말투로 답을 하거나 응답 텀이 이전보다 더 길어질 때, 직장에서 마주치면 늘 밝게 웃으며 인사하던 직원이 어느 날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지나갔을 때,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 옆자리가 유독 오래 비어 있을 때. 머릿속에서 온갖 가설을 세우기 시작한다. 근거들이라곤 오직 내 경험만으로 엮인 내 기억과 내 감정들. '혹시 내가 친구에게 뭔가 실수한 게 있나?', '회사에 나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도는 건가?', '출근하는 내 모습이 좀 이상한가?', '어제 먹은 고기 냄새가 옷에 많이 배였나?' 분명한 건 처음에 그 상황을 오해하고 싶지 않아 시작했던 생각이었는데, 꼬리를 물고 이어진 생각은 오해가 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연기를 하면서도 그 관계는(그 관계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미묘하게 변하는 느낌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누군가 '무슨 일 있었어?', '요즘 일은 잘 되어가?'와 같은 가벼운 인사말을 전할 때도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그 질문은 왜 하는 걸까?', '내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나?' 하는 생각이 스치고, 그 사람의 잠깐의 망설임이나 애매한 반응도 예민하게 감지하려고 한다. 누군가 별 뜻 없이 던진 농담도, 대화 중 잠깐의 침묵도, 나 혼자 곱씹으면서 그 별 것 아닐 수 있는 상황들이 주는 영향의 무게를 몇십 배, 몇 백 배로 늘려버린다. 내가 정말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 다른 사람의 반응에 혼자 의미 부여하고 불안해하는, 그런 촌스러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사실, 바로 나다.








| 관계 사고


관계 사고(Ideas of Reference)는 자신과 무관한 사건이나 상황을 자신의 일과 연관 지어 해석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사람들의 웃는 소리가 들릴 때, 자신의 외모를 비웃는 것으로 느끼거나 카페에서 떠들던 커플이 갑자기 조용하게 대화를 할 때, '혹시 내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하고 의심하는 등의 일들이 있다. 이런 생각들이 심해지면 TV 속의 인물의 자신을 지목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거나 매주 카운터에 있는 헬스장 직원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신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망상'이라고 한다.



나는 관계 사고를 할 때가 많다(망상까지 이어진 적도 있을지도). 그래서, 오늘은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할 수 있는 이 생각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곱씹고 불안해하는 이 사람은, 과연 어떻게 감당하기로 했는지 궁금하다면 같이 이 글을 산책해 볼 것을 추천한다.








| 나는 관계 사고를 하고 있나?


먼저 우리가 관계 사고를 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음의 3가지 질문을 생각해보자.


1. 외부 사건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편인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 말, 표정에 대해 과도하게 몰입하고 해석을 하다 보면, 타인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우연히 내 쪽을 바라봤을 때, 단순한 시선 교환일 수 있지만 이를 나와 과도하게 연결 지어 '내 얼굴에 있는 주근깨를 보고 비웃고 있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확증편향적인 증거들과 결합되는 경우에는 자신의 신념을 더욱 굳혀 버려 외부의 논리적인 설명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


2. 피해 의식이 있는가.

피해 의식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거나 괴롭힌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것이 특징이다. 피해 의식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오해나 예민함을 넘어서야 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직원 두 명이 조용히 대화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내 험담을 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상사가 무심코 건넨 피드백에도 나를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피해의식은 일상에서 불안을 키우고, 신뢰 관계를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사고가 지속되는 경우에는 자신이 항상 공격받고 있다는 생각에 갇혀 방어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과 불필요한 긴장과 갈등을 유발해 관계 사고를 더 강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3. 불안이 잘 떨쳐지지 않는가.

관계 사고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불안감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을 때, '혹시 나를 비웃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과거의 부끄러웠던 기억이나 부정적인 경험들과 연결되면서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이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 보지만 걱정이 더 커지면서 수면의 질이 나빠지고, 집중력이 저하되며, 심한 경우에는 우울과 같은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 왜 관계 사고를 겪을까?


괴로운 걸 알지만, 이런 생각으로는 대체 왜 이어지는 걸까.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하지만, 중요한 원인들로 아래 4가지 정도를 살펴보면 좋겠다.



1. 생물학적 요인

신경학적 관점에서는, 편도체(감정과 위협을 처리하는 뇌 영역)가 과도하게 활성화된 사람들이 외부의 자극을 위협적인 신호로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 전두엽(상황을 논리적으로 평가하는 능력) 기능이 저하되면 관계 사고가 강화될 수도 있다. 유전적인 소인도 있기에, 정신 질환의 가족력이 있다면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



2. 불안, 낮은 자존감

종종 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외부 환경에서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신호들을 민감하게 탐지하는 경향이 있다. 불안은 진화론적인 설명으로는 위험 회피를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지만, 과도한 경계심으로 작동하게 되면 관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타인의 행동이나 말을 들을 때 자신의 좋지 않은 모습과 연결 지어 비난처럼 느낀다. 평소 나의 단점들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의 미묘한 행동들을 나의 단점을 지적하고 평가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러한 불안이나 낮은 자존감을 방어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서 관계 사고는 더 악화될 수 있다.



3. 관계 갈등과 소외 경험

대인관계에서 자주 소외감을 느낀 적이 있었던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상황을 해석할 때 영향을 미쳐, 상대방의 무심한 말이나 사소한 변화에도 '나를 배제하려는 건 아닐까', '내가 또 무시당하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친구들 사이에서 거절당한 기억이 있는 내게는, 단체 카톡방에서 내 말에 답이 없는 그 순간, 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또 소외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게 될 수밖에.



4. 자기중심적 사고

웬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관계 사고와 관련이 있냐는 의문이 들 수 있겠지만,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관계 사고에서 매우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개인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자신이 중심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단순히 주변 환경의 일부로 보기보다는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과거에 자신이 타인의 주목을 받거나 평가받는 경험이 강했던 사람들에게는 더 두드러질 수 있다. 타인의 행동이 자기 자신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 일상적인 생각들과의 차이


주변과 자신을 연결 짓는 모든 생각들이 다 관계 사고일까? 예상했다시피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주변 사건이나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자신과 연관 지어 생각한다. 게다가 주변의 경험을 자신과 연관 짓는 것은 공감이나 의사소통에서 매우 중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친구와 연락을 마무리하는 상황에서, 평소라면 마지막 답을 이모티콘으로 하던 친구가 오늘따라 짧은 답을 하거나 읽지 않을 때, 혹은 이모티콘을 전혀 쓰지 않는 무뚝뚝한 답을 할 때는 "내가 뭔가 잘못했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흔하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을 해석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진실이든, 오해이든 대부분은 일시적이며, 객관적인 설명이나 대화를 통해 쉽게 해소될 수 있다. 친구에게 "오늘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을 때, "오늘 바빴어, 미안해."라고 답변이 오면 의심은 사라진다. 이러한 반응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영역에 속한다.



반면에 관계 사고는 타인의 행동이나 말이 단순한 오해의 수준을 넘어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친구가 답을 늦게 보낸 이유를 들었어도, '흥, 분명히 나를 싫어해서 그런 거야'라고 생각하거나, 상사의 무표정한 얼굴을 별다른 근거 없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불안하고 괴로워한다. 이러한 신념을 통해 그들에게 방어적이고 경계적인 행동으로 화답함으로써 확증편향에 사로잡힌다. 아무리 명확한 설명과 증거 자료들을 제공하더라도 쉽게 사라지지 않으면, 망상으로도 이어지기 쉽다. 즉, 일시적이고 쉽게 해소될 수 있는 생각들을 넘어 나의 생각, 감정, 관계에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초래할 때는 관계 사고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To be continue.


작가의 쪽지: '지금 내 얘기 아니야?'는 관계 사고를 경험한 작가의 이야기에서 시작했는데, 이론적인 설명을 추가하다 보니 내용이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지금 내 얘기 아니야?' 2편은 2/27 (목) 7시에 이어질 예정입니다. 2편에서는 <이미 관계 사고를 겪고 있다면>, <관계 사고가 정말 사실이라면> 등 관계 사고에 대한 심화 내용이 이어질 예정이니 기대도 해 주시고 한 화에 모든 내용을 성실하게 담지 못한 점, 너른 양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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