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면, 다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뭐가 이렇게 아플까.

by 따콜



|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OTT를 뒤적거리다 우연히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게 되었다. 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품고 생을 마친 브람스를 닮은, 두 주인공(김민재, 채송아)의 서사에 빠져든 나는, 16부작 드라마를 3일 만에 정주행 했다. 드라마 속 재영과 송아는 브람스처럼 친구의 연인을 바라만 보고 있었고, 클래식을 하며 간절히 원했던 꿈 앞에서 각자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송아는 클래식 음악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대학 졸업 후, 모두의 만류에도 뒤늦게 바이올린 전공자가 되기 위해 도전하지만, 그녀보다 더 오랜 시간 연습을 이어 온 동기들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좁혀지지 않는 실력 차이를 클래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버텨보지만,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좌절한다. 또, 송아와 재영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재영의 마음에 오래 자리 잡고 있던 첫사랑의 그림자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재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송아는 질투심에 사로잡히고 만다. 송아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애를 써도 그 시간들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결국 바이올린을 되팔고, 재영을 놓아준다. 좋아하는 것을 좇다가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 있었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버리고는. 드라마 속 송아가 사랑하던 것들을 놓는 장면들을 보며 나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했던 내 마음을 내려놓았던 순간이 겹쳐 보여서였을까. 눈물이 흘렀다.








| 인턴 전문가 도전기 1


나는 심리학을 좋아했다. 학부 시절에, 하루 종일 전공 서적을 읽는 것에 몰입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는 것이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밌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할 때는, 내가 앞으로 펼쳐나갈 꿈을 상상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수련을 목표로 하고, 남들이 알아줄 만한 좋은 병원에서 수련을 받기 위해 상경했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냉랭했다. 약 5개월 동안, 월 5개 정도의 지원서를 닥치는 대로 넣었는데 서류 광탈은 물론, 필기시험장에서 답안을 영어로 손쉽게 적어 내려 가는 사람들, 전공 이론을 마치 본인이 만든 것처럼 막힘없이 설명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점점 작아졌다. 어쩌다 면접 단계까지 가게 되는 날에는, 사투리가 심해서 채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이 수련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표현해 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1~2명을 채용하는 모집공고에 100명이 넘는 지원자들이 오는데 어떻게 간절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수련을 위한 절박함을 최선을 다해 표현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었고, 능력이나 실력보다 내가 살아온 환경이 부정당하는 기분에 억울하기도 했다. 어느 한 병원 면접에서는, 잔뜩 긴장한 나에게 "환자들 기에 눌릴 것 같아요"라며 단호하고도 무심한 평가를 내렸다. '임상가로 이미 활동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보는 시선이면, 정확한 거야. 내가 바뀌어야지.'라며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당황한 마음이 먼저 내 얼굴을 붉혀버렸다.



면접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다음 면접 때 내가 고쳐야 할 것들'이라는 목록으로 핸드폰 메모장에 써 내려갔다. 하지만 냉랭한 면접관들의 평가와 '넌 자격 미달이야'라는 표정들이 머리에 맴돌았고, 지하철에서 꾹 참은 울음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터뜨렸다. 그래도 도전했으면 끝을 봐야지. 마음을 다잡고 한 병원에서 필기시험을 열심히 치렀고, 최종 3인에 발탁되어 최종 면접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정말 고지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합격이라는 소식에 허무함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어 그 날부로 난, 지쳐버리고 말았다. 결국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내 최선이야. 그래, 사람이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 인턴 전문가 도전기 2


고향에 돌아와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수련 공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내가 원했던 게 맞는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길인지. 내 주제에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냅다 덤벼든 건 아니었는지. 주제를 모르고 도전한 대가는 치러야 했기에 자조적인 생각들이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뒀다. 좋아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이 이렇게도 힘들 수가 있다니. 어쩌면 애초에 내가 이 직업과 맞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래, 나 공감 잘 못하잖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야. 그렇게 점점 나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마음이 편했다. 그래, 이래서 자기 전공을 살려서 가는 사람들이 몇 없다고 하잖아, 조용하고 무난하게, 꾸준히 돈 벌면서 살아가는 게 내 체질이겠지. 비교에 시달리다가 정신을 잃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한 게 낫잖아.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그런데, 그렇게 재밌게 배웠던 지식들은 그냥 좀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 정도로 묻어둬야만 하는 걸까? 조금씩 아쉬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한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수련? 별 거 아니야. 나도 했는데, 너는 당연히 하지. 재수하는 사람들 많아." 내겐 '이미 가진 자'인 그 선배는 무조건 된다는 과대망상과 함께, 집중해서 공부하면 좋은 내용들과 각 병원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또, 나의 전후사정을 알고 있던 직장 상사는 내가 배우 박정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듣고는, 그가 운영했던 서점인 <책과 밤낮>에서(2021년 폐업하고 출판사 [무제]를 운영 중이라고 한다.), 배우 박정민의 책(쓸 만한 인간)과 그의 친필 사인을 받아다 주며, 나의 꿈을 응원해 주었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를 받다 보니 문득, 이루지 못할 꿈을 향해 달리던 나의 모습이 잘못된 건 아니었구나. 다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도전을 해도 늦지 않은 거구나. 라며 긍정 회로가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 도전하였고, 쉽지는 않았지만 나만의 속도로 정답을 써 내려가고, 예전보다는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면접을 보았다. 그렇게 한 병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원하던 자격증을 얻을 수 있었다.










|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상처받은 우리에게


혹시 여러분 중에, 정말 원하는 것들을 내려놓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그게 사랑이었든지, 꿈이었든지, 그때 당신이 그것들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것들을 얻는 과정이 당신을 아주 아프게 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수록 더 긴장하고, 더 집착하게 되고, 그러다 그 간절한 마음 때문에 오히려 그것들을 놓치고야 만다. 그렇기에 아무리 애를 써도 손에 넣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올 때는, 한 걸음 물러설 용기를 내보면 어떨까.



드라마는 결국 재영이 다시 송아에게 돌아오면서 끝이 나는데, 이번의 송아는 더 이상 재영의 첫사랑의 존재에 흔들리지 않는, 한층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다가 멈추게 되면, 크게 넘어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렇게까지 애썼던 걸 포기하면,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건 아닐까. 주변 사람들에게 실패자로 보이면 어떡하지. 이것도 포기한 내가 나중에 다시 일어설 수는 있을까. 머릿속이 온갖 걱정들로 가득 찬다. 하지만 정말로 크게 넘어지는 순간은 멈출 때가 아니라, 무리하게 달려갈 때이다. 송아가 바이올린과 재영을 내려놓을 때, 그녀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한 사람이 되는 첫걸음이었다. 나도 수련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내가 가는 길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고, 나만의 속도로 걸어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



송아는 마지막에, 좋아하는 것을 좇아 달려가던 시간만큼은 불행이나 상처를 잊을 정도로 행복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전문가로 현장에서 일하는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도전하던 그때의 나는 누구보다 힘들었지만,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있었다. 실패와 비교를 하는 동안에도 나아갈 곳이 있어 행복했다.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뛰어난 실력과 성취 같은 것들로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있었던 것 아닐까. 그래서 순수하게 즐기던 마음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때로는 원하는 것을 쥐고 있을 때보다, 내려놓을 때라야 그것의 가치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을 좇던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다. 모든 도전과 실패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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