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불편한 이유

자기노출 통제, 낙인 회피, 자존감

by 따콜


휴가 때 아버지 병원에 가느라 고생 많아요





| 불편한 관심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과 특별한 소통이 없는 나에게 언제나 환한 얼굴로 말을 걸어주는 상사가 한 분 있다. 오랜 시간 성실하게 근무하여 현재 회사 임원의 한 자리를 맡고 있는 그분은, 혼자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나를 보면 꼭 한마디라도 건넨다. 그것이 장난이든, 응원이든, 칭찬이든 늘 먼저 다가와 주는 분이다. 어쩌면 아무도 제대로 모르는(어쩌면 알 이유도 없는) 나의 직역과 직무에 대해 언제나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며, '오래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고 이제는 돈 많이 벌어야 한다'며 격려해 주신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보다 더 기여하고 싶게 하는 참 상사이자, 선배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휴가 신청서를 작성해 결재를 받으러 가는데, 언제나처럼 '감사합니다'라는 정중한 인사를 내민 뒤 그 자리를 나오겠다고 머릿 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순간, '아버지 병원에 가시느냐'라는 예상 밖의 질문이 나왔다. 순간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의외의 질문이었던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은 개인적인 일이, 무엇보다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은 속사정을 이 분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사실을 굳이 드러내며 질문하는 이 상황이 매우 불편했다. 그분의 평소 친절한 모습이 아니었다면, 나는 불편함을 넘어 적대감까지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개인적인 질문을 하는 게 어딨냐며.



대충 그렇다며 대답하고 방에 돌아온 나는, 생각에 잠겼다. 왜 그분의 배려가 불편하게 느껴졌을까. 상대는 배려라고 한 이야기들이 나는 왜 불편하고 부담스러울까. 다음에 또 비슷한 질문을 하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여러 생각 끝에 멈춘 한 생각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배려를 받아야 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의도와 마음은 감사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배려를 받을수록 나를 더 숨기는 방법을 찾았다. 타인의 관심이 내게로 향하면, 나는 마치 '잘 살지 못하는 사람', '문제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늘 따뜻한 태도와 친절함을 보여주던, 그 덕분에 소외감을 덜 느낄 수 있었던 고마운 분에게 불편함을 느끼니 참 복잡하게 다가왔다. 나는 이 관심이 싫은 걸까. 아니면, 내가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인걸까.








| 관심이 부담이 되는 이유


1. 자기노출에 대한 통제 욕구


심리학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노출(self-disclosure)'에 대한 통제 욕구 때문이라고들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니,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어느 정도까지 공개할지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직장 동료에게 '저 요즘 몸이 안 좋아요'라고 말할 때는 내가 선택한 자기노출이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건강 문제를 누군가 회식 자리에서 "요즘 위가 불편하시다면서요?"라고 언급되면, 당황스럽다. 그 이유는,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보가 퍼졌기 때문이다. 즉, 타인이 내가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정보를 알고 있을 때, 마치 내가 '의도치 않게 노출된 것'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건강을 직장에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다. 사적인 정보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노출되었을 때, '자기 통제력'을 잃은 느낌이 들어 불편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 어떤 부분까지 공유하는 것은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나도 다른 사람의 '노출 주도권'을 빼앗은 적은 없는지, 한 번 돌아보게 된다.




2. 낙인(Stigma) 회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을 '배려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규정당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특히, 나처럼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독립적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마치 '내가 스스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처럼 느껴질 수 있다.



예전에, 수련 면접 시간에 맞추기 위해 급하게 뛰어가다 앞으로 꽈당 넘어진 적이 있었다. 무척 수치스러웠는지, 주변 사람들의 웃는 소리, 말소리가 극도로 예민하게 들렸다. 그 때,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괜찮아요?'라고 물었는데, 피멍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무릎을 상상하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아, 괜찮아요!'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상대는 도와주려는 마음이었지만, 나는 '고작 넘어진 걸로 나 약해지지 않아요. 이 정도는 쿨하게 넘어갈 수 있는 어른이에요!'라는 마음을 알리고 싶어 반사적인 씩씩함이 나와버린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누구나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의 사적인 문제(가족, 건강, 정신적 어려움 등)가 나의 일과 연결되는 건 원하지 않는다. 나를 걱정해야 하는 대상으로 느끼면, 내 전문성이나 능력이 가려질까봐 두려워서, 내 부족한 상황을 더 숨기고 싶어진다. 나는 여전히 강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3. 자존감(self-esteem)


배려는 보통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누군가 나를 챙겨주고, 나의 상황을 신경 써준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자존감, 즉 나는 가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적당하거나 높은 사람들은 타인의 배려를 '당연한 교류'라고 받아들인다. 상대가 나를 챙기는 것이 내가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니까. 그렇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의 배려를 '시혜적인 행동'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혼자서도 괜찮아야 하는데, 저 사람이 날 배려하는 걸 보면, 내가 불완전한가? 라며, 내 부족함이 부각되는 것 같아 불편해진다.








| 타인의 배려를 받아들이는 방법


사실은, 타인의 관심이나 배려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도 어렵고, 완전히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은 거 같다. 배려를 받는 것이 내가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고, 문제 있는 사람이라서도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만 적당히 대답하면 충분하다. 그 관심에 보답한다고, 굳이 모든 속사정을 털어놓지 않아도 된다. 배려를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이지만, 배려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경험을 통해, 내가 타인에게 성급하게 배려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배려는,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편안해야 완성된다. 다른 사람의 걱정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을 하고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저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공유하는 것도 어쩌면 배려가 아닐까. 그리고 상대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굳이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 것도 배려인 것 같다. 정말 도와주고 싶다면, '힘든 일 있을 때 말해' 정도로도 충분하다. 내가 좋은 의도로 하려는 행동이라도, 상대가 불편하다면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는 것이 좋겠다. 배려라고 '언제나 좋은 것'이 아니라, 배려는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다음에는, 누군가를 배려하고 싶을 때,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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