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준거이론
| 자기 인식의 그림자
과거부터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구분하려는 연구는 흔히 '사고 능력' 특히, '자아 인식'과 같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보는 능력은 인간의 발전에 수많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마크 R. 리어리는 그의 저서 [나는 왜 내가 힘들까]에서 이러한 '자아 인식'의 위험한 영향에 대해 밝혔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능력',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능력'은 오히려 자아를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리어리의 의견에 공감하며 책을 읽었고, 자아 인식의 그림자 중의 하나가 <죄책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결국에는 자기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들어 사건의 원인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책임을 묻는 과정을 촉발한다. 일례로, 한 부모의 아이가 교통사고를 겪었다고 가정해 보자.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부모는 '왜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비난할 가능성이 크다. 안타깝게도 보다 자기 인식 능력이 뛰어난 인간일수록 자신을 끊임없이 분석하는 과정에서 보다 강렬한 <죄책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즉, 과도한 자아 인식은 <죄책감>을 증폭시키고, 불안이나 우울이라는 감정을 키워 자아를 스스로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 죄책감이 생기는 이유
자아를 인식하는 것이 어떻게 <죄책감>을 유발할까. 심리학자 히긴스는, 인간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과 심리적 불일치(흔히들 괴리)에서 오는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자기준거이론Self-Discrepancy Theory을 제안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실제의 모습이 얼마나 일치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고 하며, 자아 유형을 3가지로 나누었다.
1. 실제적 자아Actual self - 현재 인식하고 있는 나
2. 이상적 자아Ideal Self - 되고 싶은 나
3. 당위적 자아Ought self - 되어야 한다고 믿는 나
그러니까 죄책감은 '실제 자아'와 '당위적 자아' 간의 괴리가 있을 때 발생하는데, 즉 '나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라고 믿는 도덕적 기준과, '내가 실제로 한 행동'이 충돌할 때, 그것을 인식함으로써 스스로는 비난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항상 친절해야 해',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어야 해' 등의 수많은 도덕적 기준을 내면화하여,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절대적인 신념들은 현실적으로 충족되기 어렵다는 걸 간과한 채, 자신을 몰아세우고 꾸짖으며 당위적 자아의 믿음에 책임을 지도록 한다. 게다가 사실은, 우리가 신념처럼 여기는 규범이나 도덕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상황이나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뿐만 아니라, 같은 개인에게도 모두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불변하는 진리'를 어겼을 때 <죄책감>으로 자아를 처벌하려 한다.
| 죄책감에 사로잡힐 때
그렇다면 <죄책감>은 부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또 그렇지만도 않다. <죄책감>은 자기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친 영향을 돌아보게 하여, 화해를 시도하거나 추후의 행동을 수정함으로써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죄책감>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이다. 이 감정을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만큼이나 인간을 성장시키는 감정도 없을 것이다. <죄책감>을 건강하게 다루는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겠지만, 딱 3가지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면 좋겠다. 혹시나 이에 대해 나누고 싶은 독자들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주셔도 좋다.
1. 내가 설정한 기준이 너무 엄격하지 않은가?
(X) 나는 항상 친절해야 하는데
(O) 나는 친절하지만, 때로는 나를 먼저 돌보고 싶을 때도 있어
2. 주변 사람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나를 위한 선택인가?
(X)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데
(O) 다른 사람을 돕는 걸 좋아하지만, 나의 행복도 중요해
3. 내 상황이 다른 사람이라면, 나는 어떻게 위로할까?
(X) 그때 난 왜 그렇게 행동했지? 전부 내 탓이야
(O) 내 친구가 실수를 했더라도, 이렇게 몰아세웠을까? 나는 친구에게 뭐라고 말해줄까?
나 역시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불현듯 스치는 크고 작은 실수들, 또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로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깊은 후회로 몰아넣고는 한다. '내가 좀 더 배려했더라면',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그랬다면 상황이 달라지지도 않았을까?' 이러한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며 자기 체벌을 한다. 하지만 <죄책감>은 내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증거만이라기보다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자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키고 싶은 의지의 증거이다. 늦었더라도 <죄책감>을 느끼면서 타인의 감정을 헤아려보고, 나의 행동을 돌아보며 다음에는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었다.
혹여 이 글을 산책하는 누군가, '나의 잘못'에 사로잡혀 있다면 부디 스스로를 지나치게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죄책감>은 우리가 인간인 이상은 끊이지 않고 따라올 것이다. 그때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했던 경험처럼, 우리 자신에게도 사랑과 용서를 베풀어 주었으면 좋겠다. 더 나은 나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 참고문헌
1. Leary, M. R. (2021). 나는 왜 내가 힘들까. (주)시공사
2. Higgins, E. T. (1987). Self-discrepancy: A theory relating self and affect. Psychological Review, 94(3), 319-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