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아무개 프로는 한국 오픈 마지막 날 2위에 한 타 차로 앞서며 18번 홀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섰다. 이 홀만 잘 마무리하면 데뷔 첫 우승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갑자기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두근거리고 뱃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 홀의 플레이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또 그가
실패한다면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와 같은 갖가지 생각에 집중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이윽고 연습 라운드 때 이 홀에서 오른쪽으로 오비(out of bounds)를 낸 적이 있다는 사실이 머리에 떠오르는 순간, 티를 꽂는 그의 손이 갑자기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백스윙을 하는 동안 불현듯 자신이 평소보다 손을 높게 들고 있다는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 속으로 공을 쳐야 할지 아니면 말아야 할지 여러 차례 갈등하다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힘껏 드라이버를 휘둘렀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초보 시절에도 거의 나오지 않았던 일명 ‘돼지 꼬랑지 샷’(정확한 골프 용어로 Duck Hook)을 치고 만 것이다. 결국 그는 그 홀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기록했고,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생애 첫 우승도 그렇게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
이상의 이야기는 일부 과장된 면이 있긴 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골퍼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 경험해보거나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골프는 타 스포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기 시간이 길뿐만 아니라, 플레이를 하는 경기장이 넓고 자연환경의 영향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아 선수들이 심리적 동요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스포츠다. 이런 특성 때문에 골프를 흔히 멘탈(mental) 스포츠라 부르기도 한다. 마지막 홀에서 김 아무개 프로가 보인 모습은 이전 홀들의 플레이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투어에서 우승을 다툴 만큼 뛰어난 프로골퍼가 마치 평범한 아마추어 골퍼로 갑자기 돌아가 버린 듯했다.
마지막 티샷을 앞둔 그 순간 그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김 아무개 프로의 경우처럼 불안이라는 부정적 감정으로 인해 평소 하지 않던 최악의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현상을 초킹(choking)이라고 부른다. 초킹이란 말 그대로 극도의 긴장감과 불안으로 마치 목이 꽉 막혀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상황을 말한다. 우승을 앞둔 숨 막히는 상황에서 오는 압박감으로 인해 그의 머릿속은 온갖 부정적인 생각(불안)으로 가득 차 버렸고, 그 부정적인 생각들이 그동안 숱한 연습을 통해 익혀 두었던 자연스러운
스윙 동작을 방해하며 그를 초보시절로 되돌려 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불안은 왜 생기는 것일까? 불안은 공포, 혐오 등 인간이 느끼는 부정적인 정서 상태 중 하나로 땀, 맥박, 심장의 두근거림 등 흔히 각성(arousal)이라고 부르는 신체의 흥분상태와 매우 관련이 깊다. 뿐만 아니라 불안은 인간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에 따라서 발생하기도 한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이를 각각 신체적 불안(somatic anxiety)과 인지적 불안(cognitive anxiety)으로 구분한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유달리 남들보다 불안을 적게 경험하거나 혹은 많이 경험하는 사람이 있는 등 불안에도 개인차가 있다. 이처럼 개인의 타고난 특성이나 성격에 따라 발생하는 불안을 특성 불안(trait anxiety)이라고 부른다. 즉, 개인의 특성에 따라서 객관적으로 볼 때 별로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불안이 발생하는 형태와 원인은 다양하지만 불안이 미치는 영향은 비슷하다. 앞서 예로 든 김 아무개 프로의 경우, 생애 첫 우승의 향방을 결정짓는 마지막 18번째 홀의 중요성이라는 상황이 그로 하여금 불안을 느끼게 만들었다. 일단 불안이 시작되자 그의 근육은 긴장으로 굳기 시작했고, 이것은 당연히 몸의 여러 부분이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을 방해해서 자연스러운 스윙 동작을 어렵게 만들었다. 인간이 집중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데, 불안에 따른 지나친 흥분은 김 아무개 프로의 시야를 지나치게 좁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티샷에 필요한 여러 가지 중요한 정보를 놓치게 만들었다.
만약 당신이 김 아무개 프로처럼 라운드 중 불안이 갑자기 밀려들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심리기술(psychological skill)이라는 이름하에 이러한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다양한 심리적 기법들을 활발히 연구하며, 그 효과를 검증을 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심리적 상태를 훈련을 통해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스포츠 상황에서 불안에 대처하는 가장 오래되고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호흡법이다. 보통 몸이 긴장될수록 자신도 모르게 호흡이 얕아지면서 가빠진다. 이럴 경우 폐로 유입되는 산소의 양이 감소되기 때문에, 우리 몸은 자동적으로 이를 보충하기 위하여 심장 박동수를 늘리게 되며 이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 불안이 엄습하게 된다. 일단 김 아무개 프로처럼 처음 불안을 느꼈을 때는 천천히 심호흡을 깊게 몇 차례만 하더라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 물론 더전문적인 호흡법을 배우고 익힌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평소 매번 샷 하기 전 심호흡을 한두 번 하는 것을 자신의 프리샷 루틴에 포함시켜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론 불안이 찾아오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심리기술 훈련을 통해 조절하기 나름에 따라 불안이 수행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거나 거의 없앨 수 있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실전에서 심리기술을 적절히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단지 그 방법을 알고 있다고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평소 몸의 근육을 키우고 경기 기술을 연마하듯 경기 전 준비단계에서부터 꾸준한 연습을 통해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비로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마치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공부할 내용과 공부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