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오미 거울

전성기는 한 번이 아니라는 것

by 수요일


보오미 거울

1
하도 우려먹어서 이젠 식상한 이나영 이야기다. 태평양(지금은 아모레퍼시픽) 라네즈 모델이었던 이나영 20세 때. CF 감독은 늘 이나영은 한 각도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다양한 앵글의 영상을 못 찍고 거울 보듯이 그 한 각도만이 이쁜 이나영을 알려줄 수 있었다.

2
그건 영상이 아닌 포토 촬영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다양한 앵글로 찍힌 이나영의 모습은 이쁘지 않았다. 그 예쁜 모델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던지... 경쟁사는 한창 주가를 올리던 김남주를 모델로 피부과학 라끄베르를 내세워 우리를 압박했다.

3
시장에서 판매는 늘 1위였던 라네즈가 광고 선호도에선 늘 2위. 이걸 해결 못 하면 광고주는 계열사 대행사임에도 외부 광고회사와 비딩(경쟁 피티)이라도 시킬 참으로 벼르고 있었고.

4
머리를 짜내다가 앵글을 바꾸려면 이나영의 단발을 잘라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건 참 우습게도 머리를 자르러 갔던 청담동 미용실에서 어떤 여자가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던 모습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그 선명하게 달라진 모습이라니.

5
결국 이나영커트를 유행시킨 이 도박은 광고선호도, 모델선호도에서 1위를 되찾게 되었으니 완전한 성공이었다.

6
오늘 양치를 하다가 거울을 보았다. 아직 세상에 머물러야 할 시간이 많이 남은 중년이 나를 바라본다. 내가 보는 내 얼굴은 딱 저기까지지. 뒷모습은커녕 옆모습을 보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앞은 보오미 거울 효과로 나쁘지 않은데 내 키 내 시선, 내 보오미 거울을 벗어난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남들에게 보여지고 있을까.

7
단지 한 각도뿐일 내가 머리를 박박 민다고 스타일을 다시 단발로 바꾼 이나영처럼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까. 나의 전성기는 이제 돌아오지 않겠다만 사실 나는 전성기를 다시 맞고 싶지도 않다. 여유자작한 코로나 이전의 삶이라면 몰라도.


8
나는 현재에 만족한다. 많은 걸 잃었고 많은 걸 놓쳤지만 돌아간다고 해도 잡을 수 있을 거라 믿지도 않고 사실은 나머지 삶을 이만큼 되살아내기도 귀찮다. 한 번 간 건 다시 오지 마라 주의.


9
하지만 당신이라면 다르지 않아? 당신의 보오미 거울에서 벗어나라. 당신에게만 보이는 당신을 버리고 타인으로부터의 보오미거울을 갖길 바라. 보여지는 것보다 무척 아름다울 당신을 말이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프며 프고 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