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연재
메리가 엠마를 건네 받았던 날, 그녀는 이렇게 오랜 세월을 엠마와 보내게 될 줄 몰랐다. 그 날 이후로 15년이 흘렀고, 그들에게 달라진 점은 사는 곳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도시 한 복판에 살던 메리는 이제 집들이 빼곡히 모여있는 곳으로 이사했다. 창문으로 고개만 돌리면 옆집 사람이 뭘 하는지 훤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집은 예전보다 좁아졌지만 책상 위 사진은 더 많아졌다. 엠마가 밖에서 자전거 타는 모습, 동물원 앞에서 풍선을 들고 서 있는 모습들이 담겨있다. 그런데 집 안에 걸린 사진들에는 흡사 한 명만 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다 마지막에 걸린 사진에서 엠마가 메리의 볼에 뽀뽀하는 사진으로 이 집에는 여자 두명이 오롯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잠깐 알 수 있을 뿐이다.
엠마는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메리 이모가 자고 있는 방 문을 열고 들어가서 침대로 비집고 들어갔다.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어 따뜻했다. 잠을 설쳐 흐트려져있는 머리카락을 비집고 엠마는 이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모, 오늘 장 보러 가는 날이지?"
메리는 잠에 덜 깬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아... 오늘인가? 뭐 먹고 싶은데?"
"나는 우유"
"그럼 일찍 가야겠네. 사람들 많이 없을 때."
엠마는 메리 이모와 오랜만의 나들이라 신이나 펄쩍 뛰었다.
둘은 새벽 아침 아직 사람들이 거의 깨지 않은 시간에 장을 보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들이 집을 나갈 때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되도록 적은 사람들이 있는 곳 아니면 어두워서 그들의 형체나 얼굴이 잘 안 보일 때다. 엠마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싫어했다.
메리는 아침인데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최대한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조용히 거리를 걸었다. 둘은 걷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장에 거의 도착하자 메리는 주변의 가장 큰 나무 뒤에 숨고, 엠마가 대신 가게에 가서 물건을 샀다. 이렇게 장을 보러 나오는 날에는 짐이 한 가득이다. 엠마는 이모 대신 한 동안 밖에 나오지 않아도 되도록 먹을 것들을 잔뜩 사곤 했다.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서 있다고 생각했지만 몇몇의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 거리며 메리를 쳐다보는 바람에 엠마는 마음이 급해져 서둘러 봉지에 물건들을 담았다.
물건들을 가방에 담고 메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늙은 여자가 메리 쪽으로 다가가더니 메리를 향해 정체모를 뭔가를 던졌다. 걸어오는 엠마를 보고 있던 메리는 피할 새도 없이 직격으로 맞았고, 하얀 액체들이 메리의 머리에 주르륵 흘렀다. 메리는 당황스러워 뭔지도 모를 액채를 황급히 손으로 닦아내는데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상한 우유였다.
“에이 눈 버렸네.”
늙은 여자는 메리의 어깨를 치고 가면서 말했다.
“너 같은 사람들은 그냥 블랙 아일랜드로 꺼져. 여기 피해주지 말고.”
메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고개를 돌려 머리에 흐르는 우유들을 닦아냈다. 그 순간 분노가 끓어오르면서 엠마는 메리의 손을 뿌리치고 노인에게 달려갔다.
“할머니!!”
메리는 재빨리 엠마를 붙잡았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서둘러 피했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메리는 고개를 숙이고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메리는 옷을 벗어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내가 밖에 나가서 누가 뭐라하던 말대꾸 하지 말랬지!”
“그치만 우리한테 욕하는데 어떻게 참고 있어!”
메리는 엠마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창문 쪽으로 가서 커튼을 쳤다. 꼭 누군가가 우리 집을 훔쳐 보진 않을까 걱정하는 듯 했다. 창문에 비친 회색의 두 눈동자가 서글프게 반짝인다.
회색 눈동자. 이 사회의 주홍글씨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