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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Aug 24. 2017

안녕

하비누아주


나는 오늘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그러나 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는 친구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길을 걸었다. 폭우가 내렸다가 뜨거운 폭염이 내리쬐곤 하는 날씨 속에 조금은 무더웠지만, 함께 한다는 느낌이 좋아, 그렇게 둘이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그녀는 걸려온 전화에 한참을 통화해야 했고, 나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녀 옆에 앉아 있었다. 가벼이 지나칠 수 없는 제법 심각한 사안이라 그녀는 꽤나 오랜 시간을 통화해야 했고, 나는 그녀의 가냘픈 어깨와 나란히 한 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제법 긴 시간을 통화하는 동안, 나는 그녀와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했지만, 대화가 오가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편안하고 깊은 시간들이 그녀와 나 사이로 천천히 흘러갔다. 그녀는 통화를 하다가, 건너편의 풍경을 보곤, 내게 짧게 참 아름답다, 그지 라고 말을 건넸고, 나는 여전히 아무런 말없이 그녀가 가리키는 풍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뜬금없이 건네지는 풍경에 대한 “아름답다”라는 짧은 한 마디에도 어색하지 않는 사이라는 건, 또한 얼마나 좋은가. 그녀와 나 사이에 쌓여온 시간의 무게들이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순간들이 좋았다.  


그렇게 그녀와 내가 각자 살아온 길다란 생애가 나란히 벤치에 앉아 있는 동안, 폭우가 그친, 눈부실 정도로 파란 하늘을 보았고, 새하얀 뭉게구름을 보았다. 벤치 옆, 초록의 풀들은 짙었고, 강아지풀들은 바람에 흔들렸고, 햇살 속에서 연두빛이거나 초록의 잔디들은 더욱 푸르렀으며, 봄꽃 만큼이나 흐드러지게 무성한 벚나무가 드리우는 부드러운 그늘 속에서, 구름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아름다운 오후의 시간들이 흘러갔다.





@ 안녕 - 하비누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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