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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날리 Jan 24. 2022

나 혼자 혼인신고를 했다

중고신혼 주말부부를 소개합니다

띠링. 문자가 도착했다.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우리는 법적 부부가 되었다. 그런데, 왜 중고신혼 주말부부냐고요?


재작년 6월로 시간을 잠시 거슬러 가보자. 정확히 11년 반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어렸을 땐 ‘당연히 27살쯤에 결혼하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거기에 5를 더한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다니... 이래서 인생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나 보다. 연애 기간이 긴 탓에 결혼하고도 우리 생활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부부 앞에 '주말'이 붙은 거랄까?  


결혼하고 나서 나도 이 질문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결혼하니 어때? 연애 때와는 달라?"

"아니, 똑같아."

"왜, 신혼이잖아."

"우린 중고신혼이야."


웬만한 부부보다 연애를 오래 해서 '중고신혼'으로 남들에게 우리를 소개하곤 한다. 이 대답에는 진실과 재미가 반반 섞였다. 요즘은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청약에 당첨되기 위해 혼인신고를 먼저 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1년 이상 신혼생활을 좀 즐기고 혼인신고를 한다던데, 언제 해야 좋을까?


결혼 전에도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던 사이여서, 혼인신고에 대한 불안감은 전혀 없었다. 이혼에 대한 걱정이 없으니, 청약 준비도 할 겸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다. 아차, 우리는 주말부부니까 같이 신고하러 못 가지? 그래서 연차 사용에 자유로운 내가 남편 대신 신고하러 가기로 했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하루 전날. 남편에게 장난 삼아 카톡을 보냈다.


본인 카톡 캡처



- 나 내일 혼인신고하면 되지? 후회 안 해?

- 오잉?


평소 반 이상은 이모티콘으로 대화하는 우리. 혼인신고 전 남편의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다. 평소와 다를 게 없어서 너무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혼인신고의 '혼'자도 모르는 혼알못이라, 인터넷에 <혼인신고하는 방법>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역시 정보의 시대답게 혼인신고 순서, 서류 준비물 등 각종 자료가 물밀 듯 쏟아져 나왔다. 차근차근 글을 읽으며 준비할 서류들을 챙겼다.


예비부부 중 한 명만 가야 한다면 배우자의 신분증과 도장은 필수. 주말에 미리 만나 남편의 신분증과 도장을 받았다. 등록기준지를 작성해야 하는데, 양가 부모의 등록기준지 주소를 기재해야 하니 가족관계 증명서를 필히 확인해야 한다. 내 기준에선 이런 작성 칸들이 너무 복잡했다.


게다가 혼인신고 시 '2명의 증인'이 필요했다. 조건은 미성년자 아닌 성인. 증인란에는 증인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적어야 하며, 도장(혹은 사인)이 꼭 있어야 한다. 보통 증인은 가족 중에 요청한다는데, 나는 또 가족과 떨어져 있으니 다른 증인을 구해야 했다. 그래서 문득 떠오른 건 매일 보는 직장 동료들이었다.


같은 부서 친한 동료 둘에게 대뜸 서류를 내밀었다. 주말부부의 사정을 아는 동료들은 흔쾌히 자신들의 개인 정보를 작성해주었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혼인신고 서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다시 되돌아가는 일은 없겠지?' 혹시 몰라서 서류 한 장을 더 준비해 증인의 사인을 두 번 받는 치밀함까지 내보였다.



혼인신고 D-day.



2020년 12월 4일. 연차를 내서 시청에 갔다. 파주에 살면서 혼인신고하러 시청에 처음 가보네. 이 시간이면 열심히 일하고 있을 텐데, 복작복작한 시청에 와 있으니 기분이 미묘했다. 접수번호를 뽑아 대기하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이것저것 서류를 내고 은근히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남편이랑 같이 오면 좋았을 텐데. 드라마에서 예비부부가 함께 혼인신고를 하러 가는 장면을 보고 나도 같이 가는 로망이 있었는데 말이지.


담당 직원분이 내게 말했다.

"원래 혼인신고 신랑분이랑 같이 오시는 건데, 혼자 오셔서 여쭤봐요. 신고하면 다시 취소 못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순간 눈이 마주친 직원분과 서로 말없이 웃음을 지었다. 어쨌거나, 혼인신고 신청이 끝났다! 신고를 끝내니 홀가분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 신이 나서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본인 카톡 캡처


혼인신고 뭐 별거 아니네! 서류와 준비물에 괜히 겁부터 먹었나 보다. 혼인신고 이후 보름이 지나 혼인신고 완료 문자를 받고, 비로소 진짜 부부가 되었다.


평생의 동반자가 생겼고 인생 2막이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떨어진 채 지내고 있다. 우리도 언젠가 합칠 날이 올 텐데, 그전에 동갑내기 중고신혼 주말부부의 일상을 야금야금 꺼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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