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홀을 순조롭게 예약하고, 남은 결혼 준비는 다름 아닌 신혼여행. 우리는 모 여행사에서 발리 여행 상품을 계약하고 들떠 있었다. 그때가 2020년 1월 18일. 항공 발권 입금도 완료한 상태였다. 코로나 19가 국내에 발생하기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이러다가 신혼여행 못 가는 거 아냐? 믿기 싫었다.
2020년 3월 여행사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내용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인도네시아(발리) 입국심사 강화 관련 공지사항 안내였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모든 입국자(국적 불문)는 출국 시 항공사 카운터에 건강 확인서를 제시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발리를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었다.
4월이 되자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당시 남자친구(현 남편)와도 가네, 마네 수없이 논의를 했지만 코로나 여파는 생각보다 심각했고, 우리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발리 항공권을 취소했다. 처음 항공사에 보냈던 계약금 40만 원은 그해 12월까지 자동 연장되었다. 우리는 발리에서의 화려한 힐링 여행을 상상했지만, 이내 잊기로 하고 제주도로 여행지를 변경하고 준비했다. 부모님 세대에 가던 제주도를 지금 시대에 신혼 여행지로 가게 될 줄이야. 이건 정말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2020년 6월. 대망의 결혼식 날은 다행히도 코로나19가 엄청 심각하진 않을 때였다. 결혼식장에선 신랑과 신부를 제외하곤 전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식이 끝나고 마지막 사진 촬영을 할 때는 모두 마스크를 벗고 찍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다. 다들 그렇게 말했다. 우리 말고도 20~21년 시즌에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들은 죄다 제주도로 여행 갔으리라.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남편은 살면서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보지 못했는데…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나도 해외를 많이 가본 건 아니었다. 굳이 꼽자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갔던 ‘중국’과 29살 때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함께 떠난 ‘필리핀 세부’가 전부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해외여행 썰을 풀어놓을 때마다 나는 주로 가만히 듣고 있는 역할이었다. ‘나도 공감하고 싶은데.’ ‘해외 명소에 가서 그 나라 음식을 먹는 소소한 행복을 언제 누려볼까?’ 늘 상상만 해왔던 것 같다. 내가 못 가본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부러움 대상 1순위였다. 그런데 이런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남편이다.
남편의 이상한 징크스
남편에게는 남들과 다른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첫째, 남편이 단골이 된 식당은 얼마 못 가서 문을 닫는다.
둘째, 남편이 해외에 가려고 하면 꼭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남들이 이걸 알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게 뻔하지만, 정말이다. 익히 잘 알려진 파괴왕 주호민이 있다면, 청주엔 우리 남편이 있다. 내가 파주로 이사하고 나서 남편과 함께 부대찌개를 먹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남편이 여기 맛있다고 해서 두 번이나 갔었다. 그러다 그 부대찌개 집은 망해 간판이 사라지고 말았다. 부대찌개를 시키면 피자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왜 망했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장사가 잘 됐었는데.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부대찌개 집을 단골로 삼고 종종 남편과 갔었다. 어느 날, 새 부대찌개 집의 간판이 두루치기로 상호명이 변경된 게 아닌가. 나는 너무 신기해서 재빨리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우리 가던 부대찌개 집 간판이 바뀌었어!”
이뿐만이 아니다. 처음 남편에게 고백을 받았던 추억의 장소인 모 카페도 얼마 못 가 사라졌었다. 추억을 회상할 곳이 사라지니 무척 아쉬웠다. 지금이야 코로나 여파로 인해 여러 식당이 문을 닫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남편과 새로운 맛집에 가게 되면 꼭 신신당부한다. “여긴 절대 망하면 안 되니까 맛있다고 하지 마.”
2018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는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했고, 거대한 홍수가 일어났다. 그때 당시 우리 커플은 첫 해외여행으로 오사카를 가기 무려 하루 전날이었다. 물에 잠긴 오사카 간사이공항은 결국 폐쇄되었다. 천재지변으로 우리는 항공권을 100% 환불받았다. 당시 남편은 출근 중이었고, 나는 퇴사한 지 얼마 안 된 백수였기에 나 혼자 일본 여행 준비를 도맡아 했었고 취소 또한 내 몫이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호텔 예약을 환불하고, 유니버설 스튜디오 예매권을 중고 사이트에 팔았다. 그래, 그때도 일본 대신 제주도로 떠났네.
남편은 첫 해외여행을 목적으로 여권을 발급받았는데, 쓸모가 없어졌다. 미니언즈 덕후인 남편이 여행 가서 꼭 사고 싶었다던 미니언즈 팝콘은 결국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본에 가지 말라는 신의 계시였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인 신혼여행 역시 제주도로 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남편의 여권은 그 어떤 도장도 찍혀 있지 않아 깨-끗하다.
작년 10월. 여행사로부터 오랜만에 문자 한 통이 왔다.
계약금 40만 원은 올해 12월 31일까지 돌아오는 여행에 이관 진행된다는 안내였다. 더불어, 발리는 여행 제한이 풀리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입국 후 8일 격리를 해야 해서 여행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도 함께. 해외여행이 어려우신 경우 주변 신혼부부 또는 커플에게 양도도 가능하단다. 하필이면 허니문 전문 여행사여서 가족이나 부모님 여행은 어렵다고 한다. 우리 부부 결혼식 2주 뒤에 식을 올린 친구 부부도 마찬가지로 같은 여행사에 계약금이 걸려 있는 웃픈 상황.
이 글을 쓰며 남편의 첫 해외여행을 기원해본다. 우리 언젠가 손 붙잡고 함께 해외 갈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