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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날리 Feb 15. 2022

사랑은 KTX를 타고

지방에 남편 두고 자꾸만 북으로 가는 아내


주말 격주로 KTX를 타다 보면 재미난 광경을 종종 발견한다. 한때 내 옆자리에 앉은 한 여성분이 통로에 앉은 나를 넘어서 반대쪽 창가로 인사를 건넨다. 궁금해서 반대쪽을 흘낏 바라보니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남성이 서 있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까지 애틋한 인사가 이어진다. 연인의 손하트가 서로 잘 보일 수 있게 나는 조금 더 의자 등받이에 내 몸을 밀착한다. 애정이 철철 넘치는 커플을 보며 내 연애 시절이 생각나서 내적 웃음이 나왔다.


우리 집은 어릴 때부터 잦은 이사를 다녔다. 대구에서 태어나 경산에서 초중학교를 보내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청주로 이사를 왔다. 반면 남편은 청주 토박이다. 대학 캠퍼스 커플이었던 우리는 스무 살에 처음 만나 청주에서 줄곧 데이트를 했다. 하지만 대학을 먼저 졸업한 내가 무작정 취업을 빌미로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는 자연스레 롱디 생활을 하게 됐다.


‘몸이 멀리 떨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던데.’

‘남자친구는 아직 학생이고, 지방에 있다고? 그럼 얼마 안 가서 헤어지겠네.’


서울에 살면서 지겹도록 들은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우리가 롱디의 개념을 넘어섰다는 것을. 이미 서울에 올라오기 전부터 우리는 약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왔다. 5년의 세월은 생각보다 길었다. 게다가 그 5년이란 시간에는 곰신 시절도 포함된다. 무작정 출판사에 다니겠다고 짐을 싸서 그 좁디좁은 서울 원룸텔에서 지낼 때도,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나를 보러 오겠다고 버스를 타고 서울에 왔다. 그렇게 우리는 청주와 서울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물론 힘든 적도 많았다. 직장인인 나와 학생인 남자친구. 올빼미족인 나와 반대로 10시 전에는 무조건 잠드는 바른생활의 사나이였던 남자친구. 둘의 생활패턴이 다르고 얼굴을 보고 얘기하기가 어려우니, 오해가 쌓이면 바로 풀 수 없어 답답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평일에는 서로 못 보니 주말 이틀이 더없이 소중했다. 덕분에 서울에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롱디가 몇 년간 이어지자, 우리는 한 달에 2~3번밖에 못 만나도 애정 정선에 이상은 없었다.




서울에서 파주로 올라간 아내



남들은 그저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대학생 때 주변 친구들이 저마다 애인이 바뀔 때도, 우리의 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2018년에 네 번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됐고, 그다음 해에 나는 서울에서 파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내 인생에는 분명히 역마살이 끼어 있나 보다. 남편은 나에게 어디까지 올라갈 거냐고, 이러다가 북으로 가겠다고 농담을 건넨다. 결국 나는 파주 피플이 되었고, 남편은 여전히 청주 토박이로 청주에서 살고 있다. 이 생활은 결혼하고 나서도 변함이 없다. 어찌 보면 내가 좀 더 북한과 가까워졌으니 우리의 물리적 거리는 더 멀어진 셈이다.


결혼하고 나서는 격주로 청주와 파주를 오갔다. 내가 이번 주말에 청주에 내려가면, 다음 주말에는 남편이 파주로 올라온다.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이동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이동하는 데만 진이 다 빠졌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KTX를 애용하게 됐다. 식비도 많이 들지만, 식비 못지않게 교통비가 장난 아니게 들었다.


이대로 계속 비싼 기차를 타고 다녀도 괜찮을까?

이런 생활이 지속되면, 돈은 언제 모으지?


남편과 교통비에 대해 논의를 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내린 결정은 ‘N카드’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 N카드는 이용 횟수와 이용구간을 선택하여 구매하면, 유효기간 내에 주중, 주말 구분 없이 열차 출반 전까지 할인승차권을 구매하여 이용할 수 있다. 자유석을 예매할 때 기본 할인이 15% 정도 되니 우리가 계속 이 카드를 이용한다면 더 이득을 보는 것이다. 유효기간이 끝나면 다시 똑같이 설정하여 구매하면 끝. 주로 남편이 2인용을 구매하여 나에게 공유해준다.



 

N카드를 이용하기 시작한 주말부부




재작년부터 시작해서 벌써 1년 반 이상 이용하고 있다. 카드 이용 횟수는 총 12회. 1구간은 오송과 행신. 2구간은 오송과 용산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행신역이 가장 가깝고, 남편이 있는 곳에서는 오송역이 가까우니 이것이야말로 최적의 구간이다. 이제는 카드 횟수가 줄어들면 남편이 알아서 구매한다. 처음에는 기차를 타고 헤어질 때 창문 사이로 애틋한 손인사를 했었는데 말이지. 심지어 이 손인사를 하기 위해 미리 올라가는 방향에 맞춰 좌석까지 지정했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주말 연애에 이어 주말 부부로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레 소비에 대한 절약에서 시간에 대한 절약으로 이어지게 된 것.    


내가 오송역에서 파주로 올라갈 때 보통 일요일 저녁 7시에 기차를 탔었는데, 지금은 오후 3시 50분으로 시간이 당겨졌다. 여기에는 아내가 좀 더 편히 쉬길 바라는 남편의 바람이 담겨 있다. 남편도 일요일 오후 6시에 내려갔었는데, 이제는 낮 2시 50분쯤 기차를 타러 나간다.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음에도 이상하게 서로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이게 주말 부부의 위엄인가?


항상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차를 끌고 마중 나오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러한 배려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항상 배웅해주는 남편에게 "오늘도 바래다줘서 고마워!"라고 인사를 건네고 헤어진다. 매번 역 주차장을 이용할 때 발생하는 주차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 전부터는 역 앞에서 내가 혼자 내려서 올라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좌석에 앉은 모습을 확인한 뒤에 헤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사랑은 KTX를 타고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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