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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날리 May 18. 2022

남편 집에서 돈가스를 태웠다

둘 중 하나만 요리 잘하면 되죠

보글보글 된장찌개, 따끈따끈한 카레, 구수한 청국장.

남이 해주는 음식은 왜 이리 맛있을까. 나에겐 요리를 잘하고 싶은 마음과 요리하기 귀찮은 마음이 공존한다. 한때 요리에 취미를 붙인 적이 있었다. 아주 잠깐. 핑계를 두자면 일하고 와서 무언갈 차려 먹기엔 팔다리에 힘이 축축 빠져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배달을 시켜 먹은 횟수를 세는 것보다 내가 만들어 먹은 음식을 나열하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나는 최근까지도 배달 음식 애호가의 삶을 살고 있다. 배달비가 상승해도 음식을 해 먹기 귀찮으니 결국 배달 어플을 켜고 만다.


연휴를 앞둔 평일 어느 날, 모처럼 연차를 내고 남편 집으로 내려 간 적이 있었다.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없는 남편은 나를 부러워했다. 주말이면 남편이 기차역까지 마중 나와서 편히 집에 갈 수 있을 텐데, 이런 날은 홀로 버스를 타고 또 한 번 환승해서 집에 가야 했다.


"자기 없으니까, 나 혼자 집에 가 있을게."

"그럼 집에 밥이랑 반찬 있으니까 챙겨 먹어. 돈가스도 있으니까 해 먹고."

"응, 알았어!"


내가 남편 집에 도착하면 점심을 먹을 시간이니, 평소 아침을 거르는 나를 위해 남편이 손수 밥을 지어 놓은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소소한 정성이 감동을 불러온다. 아직 신혼은 신혼인가 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바로 냉장고를 열었다. 파주에서 청주까지 고단한 몸을 이끌고 온 터라 출출했다. 역시 우리 집 냉장고보다 남편 집 냉장고가 훨씬 풍족했다. 냉장고 속에서도 '어머님표 반찬들'이 존재감을 자랑했다. 나는 몇몇 반찬을 꺼냈고, 밥솥에서 남편이 지은 밥을 밥그릇에 담았다.   


돈가스를 튀기기 위해 인덕션으로 향했다. 남편 집의 인덕션은 올 때마다 낯설다. 웃프게도 남편이 나보다 요리를 더 잘하고, 요리를 더 많이 하니까 나는 인덕션과 아직 친해지지 못했다. 그래도 혼자 내가 해 먹어야 하니 자신 있게 불을 켜고 세기를 최대인 9단계로 맞추었다.


아주 잠시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은 별도로 체크하지 않았다. 체감상 3분 정도 지났을까. 돈가스를 반대쪽으로 뒤집은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본래의 색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돈가스가 시커멓게 타버린 것이다. 소중한 돈가스의 겉면은 타버렸지만, 속살과 반대편은 살려냈다. 오피스텔의 인덕션은 최대 세기로 높여놔야 빨리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믿고, 남편 집의 인덕션도 똑같이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남편 집의 인덕션은 화력부터 달랐다. 조금만 불 조절을 높여도 금방 타버린다. 나는 탄 돈가스 사진을 남편에게 보냈다.


나의 돈가스


"헐... 기름 안 둘렀어?"

"많이 둘렀어! 화력이 다르네. 탄 부분은 잘라먹을게."

"음... 앞으로 요리해야 돼!"


내 실패작인 돈가스를 남편에게 당당히 보여주었다. 늘 내가 요리한다고 하면, 남편은 알겠다고 말하면서도 어슬렁어슬렁 뒤에서 서성거린다. 그러다 결국 메인 셰프가 주객전도한다. 내가 다시 하겠다고 하면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를 믿으니까, 내가 하는 거야"라고. 그럼 내가 덧붙인다. "못 믿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남편 집에서 친하지 않은 가전제품이 하나 더 있다. 텔레비전이다. "지니야~" 하고 내가 부를 땐 꿈쩍도 안 하던 티브이가 남편이 부를 땐 말을 잘 듣는다. 이날 하필 리모컨도 말썽이었다. 더 알아보지 않고 바로 남편에게 카톡을 했다.


"자기야, 이번엔 티브이가 안 켜져. 신호가 없다고 떠."

"전원 켜고 왔는데. 리모컨에 전원 버튼 옆에 조그만 버튼 두 개 있어. 오른쪽 거 누르면 돼~"


남편은 일하고 있어도 나의 연락엔 답장이 빠른 편이다. 어쨌거나 무사히 티브이를 켜서 좋아하는 예능을 보며 혼자 밥을 먹었다. 돈가스의 탄 부위를 가위로 자르면서 나 자신이 너무 웃겨서 큭큭 웃음이 났다. 어린아이들도 인덕션을 잘 다루는데 다 큰 성인이 돈가스를 태우다니, 민망함이 급 밀려왔다. 요즘은 아내보다 남편이 요리 더 잘하는 부부가 많던데, 라고 위안을 삼아 본다.


요리 못 하면 뭐 어때? 부부 둘 중 하나만 요리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보통 청주 집에 내려가면 남편이 맛있는 요리를 해준다. 간단한 재료 썰기부터 간 맞추기까지 남편이 훨씬 능숙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래서 남편이 요리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보조 역할을 자처한다.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 세팅하기, 수저와 밥그릇 나르기, 간단한 재료 다듬기 등. 다 먹고 나면 자연스레 설거지를 도맡아 한다.


현재 주말부부이지만, 같이 살게 되면 하고 싶은 로망이 있다. 바로 퇴근한 남편에게 잘 차려진 밥상을 선물해주고, 요리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집에 사다 놓은 요리 책은 소품이 되었지만, 책과 유튜브를 통해 차근차근 요리를 해봐야겠다. 데이터 요리라도 좋다. 화려하지 않아도 소박한 식탁을 차려보고 싶다. 내가 만든 집밥을 맛있게 먹는 남편의 모습을 잠시 상상하며:)





코너 속의 코너, 같은 요리 비교샷



(좌) 남편이 만든 맛깔스러운 떡국, (우) 아내가 만든 떡국(이라 쓰고 국물 없는 만둣국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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