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진을 통해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한다. 그만큼 사진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카메라와 SNS의 발달로 이제는 너도나도 업로드용 사진을 찍기 바쁘다. 개인 소장에서 과시형으로 사진을 찍는 목적이 바뀐 셈이다.
20대 초반의 연애 시절. 나는 전문 디지털카메라를 든 남자 친구에게 사진을 찍히는 여자 친구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 연애 시절 때의 남자 친구(현 남편)는 사진을 잘 찍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남자 친구에게 사진을 부탁하면 내 피사체는 늘 가분수로 나왔다. 사진 촬영을 부탁할 때면 "가분수로 찍지 마."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오죽하면 커플 셀카를 찍을 때도 팔이 더 짧은 내가 들고 찍어야 안심이 될 정도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20대 후반이 된 우리. 당시 남자 친구가 취업을 하면서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형님이 있었는데, 퇴사 후 개인 스튜디오를 차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남자 친구는 형님네 스튜디오에 자주 놀러 갔고, 아마도 자연스럽게 형님의 어깨너머로 카메라의 세계에 빠져 들었던 것 같다.
장거리 연애로 한 달에 두세 번 보기 바빴던 어느 날. 남자 친구는 갑자기 주말에 대전에 있는 영상 학원을 다니겠다고 내게 말했다. 안 그래도 주말에는 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그 시간에 학원을 다닌다고 하니 처음에는 섭섭했지만, 남자 친구가 영상을 배우고 싶은 꿈이 뚜렷해서 나는 그 꿈을 응원해주기로 했다. 영상 프로그램의 과정은 총 4주였고, 그 기간 동안 남자 친구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나도 나 대로 열심히 일하고 취미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기에 별 다른 타격이 없었다.
자기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를 배웠다는 성취감이 느껴져서일까. 4주 뒤에 나타난 남자 친구는 어딘가 모르게 달라 보였다. 남자 친구는 첫 카메라로 파나소닉을 구매했다. 남자 친구의 말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영상 전문 카메라였다. 이후 데이트를 하면 자연스럽게 내가 담긴 영상이 늘어갔다. 남자 친구의 영상 편집 실력이 점점 늘어가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학원에서 배운 기초와 독학으로 터득한 내용을 토대로 남자 친구는 개인 소장용 촬영에서 범위를 점점 더 확장해나갔다. 결혼 전 프러포즈 영상도 직접 제작하여 내게 감동을 주었고, 친구 결혼식에서도 영상 촬영을 자진해서 도맡기도 했다. 특히 친구 결혼식의 본식 영상 최종본을 봤을 때가 이 년 전인데, 지금도 장면이 생생하다. 영상 편집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비용을 주고 만든 영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혼 후 남편은 파나소닉 카메라를 들고 영상 말고도 사진을 자주 찍으러 다녔다. 피사체의 비율과 각도 그리고 구도까지 신경 쓰며 촬영하는 남편의 모습이 가끔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다 영상보다 사진 찍는 재미에 맛 들인 남편은 캐논 R6을 새로 장만했고, 그 카메라가 남편의 분신이 됐다. 이제는 함께 집을 나설 때면 내가 먼저 남편에게 "카메라 잘 챙겼지?"라고 물어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남편이 더 대단하다고 느낀 건 영상과 사진 말고 하나 더 있다. 바로 '보정'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남편은 독학으로 포토샵을 배웠던 것이다. 주말부부인지라 남편이 포토샵을 언제부터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우리의 주말 루틴을 이렇다.
예) 카페 탐방
1. 외출 전 카메라와 아이패드 챙기기
2. 남편의 사진 촬영(모델: 아내 & 음료와 디저트)
3. 아이패드로 카메라 연결하여 함께 이미지 확인 후 셀렉하기
4. 집에서 포토샵으로 셀렉 사진 보정 후 공유 드라이브 업로드하기
5. 업로드용 사진으로 블로그 포스팅하기
우리 부부는 카페에 가면 역할 분담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사진 및 영상 촬영과 후보정은 남편이,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등 글쓰기는 아내가 담당한다. 카페 탐방을 주제로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면서 팔로워 수가 늘어난 것도 물론 기뻤지만, 피드가 쌓일수록 사진의 퀄리티도 함께 상승했다는 점이 뿌듯했다.
오늘도 우리는 카페에 다녀왔다. 커피와 디저트가 나오면 서로 말없이 일어나서 남편은 카메라 세팅을, 나는 음식을 세팅한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전체 샷 - 단독샷 혹은 실내 샷 - 야외 샷 등 다음 단계로 척척 넘어간다. 옆에서 다른 사람이 우릴 봤다면 유난을 떤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님 신기하게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상관없다. 우리에겐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으니까.
소비(투자)에서 생산(작업물)으로, 카메라 든 남편과 글 쓰는 아내의 몹쓸 도전과 호기로운 상생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