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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날리 Jun 22. 2021

직장 유목민의 이직만 세 번째

언제까지 편집자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유목민: 가축 방목을 위해 목초지를 찾아다니며 이동 생활을 하는 민족     



요즘 “OO 유목민이다.”란 말을 흔히 사용한다. 나 또한 그렇다. 매일 얼굴에 바르는 크림만 해도 정착하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핫 아이템이라고 뜨기만 하면 호기심이 발동해 새로운 걸 사용해보려고 용을 쓴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걸까. 아마도 여러 이유가 있을 테다.     


1. 현재 연봉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2. 복지가 좋지 않아서

3. 부서에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

4.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5. 업무적으로 더 발전하고 싶어서     


나는 편집자가 되고 싶어서 처음부터 출판사에 취업했지만, 첫 회사는 그야말로 소규모 가족 회사였기에 그 당시 나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었다. 물론 경영악화로 인해 1년 8개월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지나간 얘기지만, 실업급여를 한 번만 타고 이직한 것이 조금 후회로 남긴 했었다. 당시에는 ‘내가 더 좋은 회사에 취업할 수 있을까?’ ‘오래 쉬면 취업이 안 될지도 몰라.’ 하며 마음이 조급해지고 걱정만 앞설 때였다.      


만약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본가에 있었다면 생각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퇴직금을 한 번에 주기 어렵다는 회사의 사정에 애써 태연한 척 기간을 나누어 받겠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했었다. 하지만 약속한 날짜에 퇴직금 일부가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결국 대표님께 문자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미뤄질 때마다 대표님께 기어코 문자 혹은 연락을 했다. 퇴직금은 엄연히 받아야 할 권리인데, 넋 놓고 가만히 있으면 회사에서 날 가마니로 생각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무려 4번(기한에 맞춰 들어온 적이 없었다만)에 걸쳐 퇴직금을 완전히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첫 회사를 그만둔 후 2개월을 쉬고, 이직을 했다. 주로 학회지, 교재를 만들던 단행본 출판사에서 수험서를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로. 두 번째 회사에서는 처음에는 취업팀에 배정되었다가, 얼마 안 있어 서비스팀으로 이동하게 됐다. 수험서 분야는 처음이었기에 난 첫 회사와 똑같은 사원이었다. 이곳에서 조리, 미용, 피부 분야 자격증 수험서를 교정 교열하고, 문제 검토 등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배우며 익혔다.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단행본과 수험서가 거의 같지만, 분야가 달랐기에 업무 방식이 조금 달랐다. 그래서 출판 시장조사부터 원고 정리, 외주 관리 그리고 각종 결재 서류 작성까지 새롭게 배워야 할 것투성이였다.   

   

그런데, 결국 ‘근무조건’ 때문에 5개월 만에 관두게 됐다. 근무했던 시절에는 매일 학교처럼 출퇴근을 출석부에 수기로 작성해야 했고,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어서 다른 건물의 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했다. 또 월요일마다 회장님의 말씀을 따로 정리해 일일이 확인을 받아야 했으며, 탕비실에 필요한 물품을 직원들 사비로 충당해야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근무환경이었다. 더군다나 도서의 편집 전체 진행은 우리가 맡아서 하지만, 도판 작업은 외주 작업자의 몫이었다. 그래서 외주 작업자의 집이나 사무실로 직접 가서 화면 교정을 봐야 하는 일도 간혹 생겼다. 그래서 당시 서울에서 인천으로 가서 그야말로 ‘화면 교정’만 보고 다시 밤늦게 집으로 복귀했던 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날 정도다. 그 밖에도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여하튼 그러한 이유로 다소 빨리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세 번째 회사는 똑같은 수험서 분야의 교육 출판사였다. 퇴사하고 쉬면서 바로 이직 준비를 하여 거의 한 달 만에 취업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쉴 수도 있었지만, 역시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어린 나이였다. 세 번째 회사는 같은 분야라 일을 더 편하게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곳에서 3년 이상 근무하며 사원과 주임을 거쳐 대리 직급을 달게 됐다. 내가 이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역시 근무 조건이었다. 성수기였던 하반기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매일 야근을 해야만 했다. 물론 야근 수당과 식비를 받을 수 있었고, 20대였던 나는 함께 ‘으쌰!’ 힘을 모으던 동료들이 있었기에 정신력으로 버텼던 것 같다.      



“우리 몇 시간 뒤에 다시 봐.”     


밤 10시, 11시쯤 퇴근하고 헤어지던 동료와 나눈 인사였다. 가족보다, 애인보다 더 자주 보던 사이였다. 이런 생활을 쭉 이어가는 게 맞는 걸까? 워라밸을 충분히 누려야 할 꽃다운 나이에, 망부석처럼 사무실 의자에 앉아 점점 거북목이 되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일은 적성에 맞았지만, 1:1 독자 문의나 행사 등 외부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이 많았고, 마음대로 연차를 쓸 수 없는 환경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나를 붙잡아두려는 회사에서 몇 번의 상담을 거쳐 퇴사하게 됐고, 약 4개월을 신나게 놀고 네 번째 회사에서 일을 계속하고 있다.

     

여러 회사에서 면접을 보면서, 회사를 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새 회사로 이직할수록 연봉을 더 올릴 수 있었고, 점점 더 규모가 큰 회사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모든 회사에는 장단점이 있다. 연봉은 올랐어도 복지나 근무환경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연봉은 낮은 대신 다른 조건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모든 게 완벽한 곳이 어디 있을까. 복지혜택이 좋고 고연봉을 받을 수 있는 대기업에 들어가면 어떨지 상상해본 적이 있다. 상상은 자유지만 그러다 급 현타가 찾아오기 일쑤다. 유목민 생활은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 기본적으로 늘지 않는 연봉을 생각하니 늘 취업과 이직 선상에 놓이게 된다.      


나는 늘 새로운 취미생활과 공부, 그리고 더 좋은 일과 직장에 대한 갈증을 풀지 못했다. 욕심만 가득하고, 상상력만 풍부해지며 실행력은 꽝이다. 앞으로의 내 인생에도 쏘는 사이다 같은 해답을 얻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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