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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Aug 26. 2022

저한테는 재미있었어요. 중독성이 있어요.

<우리는 왜 예술을>인터뷰1-(1):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박귀주



우리는 왜 예술을,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박귀주



 우리는 왜 예술을 경험하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었던 인터뷰는 바로 도슨트선생님들의 인터뷰였다. 예술을 경험하려면 누구나 처음으로 접하고 감상하는 순간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슨트들은 바로 그 순간 발을 딛도록 이끄는 이들이다. 그 순간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그 순간이 그대로 그치지 않고 그 감흥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다른 이들과 나누며 다른 이들의 감상을 이끄는 순간으로 증폭되도록 돕는 도슨트 활동은 예술을 알아간다는 것이, 향유가 어떻게 일상이 되고 또 기여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하여 아직도 예술이 불편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혹은 이제 막 예술에 발을 디디는 분들에게 혹은 예술도 일상적인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하는 이들과 선생님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예술을 경험하는 것이 갖는 의미를 함께 곱씹어보고 싶었다. 또 누가 아는가, 여러분이 이 글을 계기로 도슨트에 흥미를 갖고 전시에서 도슨트를 들어보고 현대미술을 조금 더 재미있게 여기게 될지.  

 첫번째로 소개할 박귀주 선생님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의 2기 도슨트로 약 20년 동안 서울시립미술관의 주요 전시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후배 도슨트들의 선발과 교육에도 선배 도슨트로 역할하며 대내외적으로 인정받는 베테랑 도슨트이기도 하다.

  본 인터뷰는 2018년 석사논문을 위한 질적 연구에서 도슨트 활동에 관한 약 6개월 간의 참여관찰과 다섯 차례의 심층 인터뷰의 내용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정리를 하며 박귀주 선생님의 뒤를 쫓아다니며 활동을 관찰하고 인터뷰 속에 오갔던 농담, 선생님의 차분하고도 단아한 목소리가 떠올랐고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 담겨있던 도슨트 활동에 대한 꾸준한 애정, 행간의 진심을 최선을 다해 전하고 싶었다.




저한텐 재미있었어요. 중독성이 있어.      


선생님 처음 도슨트를 하시게 된 계기가 기억이 나세요?

박: 저는 기억이 나죠. 왜냐면 (웃음) 프랑스에서 들어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거든요. 저희 작은 애 학교 들어가던 핸데 여름에 공고를 봤어요. 불어 도슨트를 모집을 하는 거예요. 그때는 인터넷도 많이 서툰 때였는데 ‘불어가 이렇게 쓰일 수도 있어? 도슨트가 익숙하지는 않지만 내가 미술도 좋아하고 하니까 불어를 최소한 잊어버리지 않는, 그러니까 써먹을 기회는 되겠구나. 최소한의 현상유지는 되겠네.’하고 왔어요.   

   

계기는 프랑스어였지만, 10여 년을 훌쩍 넘어 굉장히 오랜 시간 도슨트를 해오셨잖아요. 그렇게 하게 된 원동력이 뭘까요?

박: 음-, 도슨트 교육에서도 제가 말씀을 드리곤 하는데 저한텐 재미있었어요.

제가 도슨트 활동을 하는, 말하자면 계속 유지하는 이유는, 일단은 나한테 플러스가 된다고 생각하니까 하는 거예요. 그 플러스가 되는 면은 사람마다 각자 다를 거 아니에요. 저는 공부를 더 못했던 거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거 같아요. 내가 옛날에 결혼을 일찍 안 했더라면 별로 시댁 눈치 안 보고 공부하는 쪽으로 풀었을 것 같은데 못하고 계속 집안일을 해와서 이런 걸 통해서 만족-감을 얻는 느낌이 있는 거죠. 시간을 더 들인다는 걸 알면서도 하는 거 자체에 뿌듯하죠. 전시에 참여하면 약간의 강제성이 주어지잖아요, 그걸 즐기는 편인 거 같아요. 저한테 좋은 쪽으로 활용하는 편인 거 같아요.     


선생님, 그럼 도슨트를 계속하시게 된 원동력이 지적인 욕구 같은 게 있으셨던 거라고,

박: 그렇죠. 자기만족 같은 거죠. (웃음) 도슨트보다 훨씬 재밌는 일이 있으면 그걸 할 수도 있는데. 다른 걸 배워보고 싶은데 예를 들면 강의를 듣고 싶거나 새로운 거를 배우려 해도 이게(도슨트 활동이) 거의 다 걸리더라고요. (도슨트활동을 하려면) ‘아 몇 번을 빠져야 되네, 첫날부터 빠져?’ 그럼 돈 내고 하는데 그러기는 좀 아까운 거예요. 그러다 보면 다음 기회에 그러고 안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이게 우선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선생님 그럼 다른 배움에 대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에 오시는 걸 선택하신 거네요.

박: 그렇죠. (웃음)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도슨트를 택하시게 된 까닭은 무언가요.

박: 일단 미술에 대해서 그 전시를 할 때마다 새로운 걸, (새로운) 작가를 접하게 되잖아요. 지식 면에서 미술관 전시에 참여하면 분명히 얻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계속 배우는 입장이 되는 거예요. 거기에 만족하는 거 같고요.

원고 작성을 할 때는 오래된 선생님이나 짧게 하신 선생님이나 힘든 거는 다 마찬가진데 한 번 준비를 하면 그거 가지고 (전시하는 동안) 하잖아요. 살짝 고생해서 원고만 완성되면 즐겁게 할 수 있는 거죠. 제가 소심한 스타일인데 비해서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니까 ‘어, 의외로 내가 이걸 또 그렇게 두려워하는 게 아니구나’ (도슨트) 하면서 알게 된 거예요. 미술관 와서 정확하게 알게 됐어요. 발표하고 났을 때의 성취감을 좋아하는 거죠. 아주 외향적인 성격은 아닌데 사람 만나는 일 자체를 즐기는 사람인 거 같아요.      


살짝 고생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작가들도 공부하고 작품들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도 찾아보시면서 일주일 넘게 방대한 리서치에 매달리시고 원고를 작성하느라 밤을 새시는 경우들도 왕왕 봤는데요. 사실 몸도 고되고 시간도 들어가는데도 그렇게 기꺼이 열심히 하시는 데에는 선생님께 이 활동이 지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것 그 이상의 무엇 같아요.

박: 다른 선생님들도 저랑 비슷한 말을 가끔 하시는데 살짝 중독 같은 게 있어요. 중독성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몇 달을 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 있잖아요. 미술관에 완전히 이렇게 발을 끊게 되는 게 아닐까. 내가. 그런 걱정이요. 도슨트가 강제로 해야 되는 게 아니니까요.

음... 중독성이요. (웃음, 같이 웃음)

박: 하다가 안 하면 좀-, 심심한 느낌. ‘어, 이제 뭐하지’ 그런 느낌이 있어요. (웃음) 선생님한테는 안 와닿죠. 제가 집에서는 웬만하면 도슨트 일 때문에 피곤하다는 티를 안 냈어요. 처음에 우리 남편한테 계속 입력을 시킨 게 ‘나는 집에서 힘든 게 미술관에 가서 그걸(도슨트를) 하고 오면 굉장히 기분이 좋더라’. 사실이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해소하는 방법이니까 터치를 하지 말아 달라고 계속 얘기를 했거든요. 이제 그냥 고정화되어버린 거예요. 제 삶의 일부가 됐다고 하나. 그렇게요. (웃음)

전시계획(공고)을 보면, 여기서 내가 뭘 참여해야지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서 내가 혹시 집안일 중요한 일이 있으면 이 건 못 하겠네 (스케줄을 고려해서) 빼는 거죠. 그게 반복되니까 생활하고 밀착된 관계가 된 거죠.


그럼 선생님의 일상적인 생활 중 하나의,

박: 하나의 꼭지가 된 거죠. 저는 아주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아니면 계속 전시에 (도슨트로) 참여할 생각이거든요.           



* 도슨트(docent)란 전시해설로 관람객의 감상을 돕는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도슨트는 전시의 기획의도에 따라 관람객을 이끌고 전시실을 돌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해설을 하는데 이때 작품에 대한 단순한 정보전달뿐 아니라 작가의 삶이나 기법적인 특징, 사회문화적인 배경 등 풍부한 맥락을 함께 전함으로써 관람객이 작품을 좀 더 잘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1907년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서 제도로 시작되고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광주비엔날레를 기점으로 도슨트 제도가 유입되었다. 미술관은 우리나라 법에서도 밝히고 있듯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한 곳”이지만 대중예술에 비해 미술전시의 관람률은 높지 않다. 미술관도 이를 인식하고 관람객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도슨트 제도는 그 일환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에서 대부분 자원봉사로서 도슨트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특히 시립미술관은 2003년부터 ‘도슨트 양성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도슨트 제도를 운영해온 모범사례로 꼽힌다. 도슨트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본인의 논문 “미술관 도슨트의 역할 갈등에 관한 문화기술적 사례연구”를 참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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