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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Dec 03. 2022

낭만과 자본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일

<우리는 왜 예술을>인터뷰5-(1): 청년기획자 이요안나

<우리는 왜 예술을> 

청년기획자/예술가 이요안나



*우리는  예술을 경험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두 번째 청년기획자는 이요안나이다일러스트레이터이자 패턴디자이너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면서 더불어 창작자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다대중이 선호하는 혹은 유행에 따라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결과물에만 치중하기보다는 창작이 보여줄  있는 새로운 관점다양한 목소리를 전하는 그걸 통해서 더욱 나은 창작환경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어떻게 창작자이자 기획자로서 활동하게 되었는지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창작 작업을 혹은 창작자들을 매개하는 작업으로서의 예술기획을 만나게 된다예술이 이미 왜라는 질문이 무의미할 정도로 우리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눈을 뜨면 확인하는 스마트폰의 케이스컵의 디자인필기도구의 일러스트까지일상을 채운 물건들에 담긴 디자인 역시 창작의 결과물임을 알게 된다제품의 소비도 역시 향유의  방식임을 제품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지에 따라 스스로의 향유뿐만 아니라 제품 너머의 창작자창작물의 유통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칠  있다는 것도 확인하게 된다더불어 응원하고 싶어 진다. 그녀의 창작과 기획 작업을 통해서 더욱 많은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날  있기를다양한 창작자들이 힘을 얻고 작업을 펼쳐나갈  있기를예술을 경험하는 것은 일상과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라 이미 누리고 있던 일상의 일부를 새롭게 돌아보고 감상해보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인터뷰는 서울문화재단과 청년예술청 그리고 청년기획자플랫폼11111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하였던 "2020-2021 청년기획자의 현실을 기록하다"라는 청년기획자 심층 인터뷰를 발췌 정리하고 서면인터뷰를 추가하여 보완한 것이다.






기획자로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요안나: 패턴 일러스트레이터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이요안나입니다. 그동안 개인 창작 작업을 위주로 활동하다가 스스로의 한계를 느껴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체력과 열정만으로는 저의 장년, 노년의 작업을 상상할 수 없었거든요. 공동의 작업과 나의 작업 그 중간을 이어 줄 방법으로 기획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이 홀로 일하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이야기 장소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획자가 되고 싶습니다.


요안나님에게는 기획이 콘텐츠를 제시하기 위한 일종의 방법론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처음으로 하셨던 기획은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소개를 부탁드려요. 또 그 작업이 요안나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합니다.

이요안나: 처음으로 했던 기획은 (일이 아닌 스스로 기획한 일) 이모의 죽음 이후 가라앉았던 가족의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엄마의 피아노 학원을 카페로 바꾸었던 것이었어요. 이모를 사랑했던 고맙고 정겨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하루의 이벤트. 이모를 중심으로 여럿이 모여 카페에서 종종 수다했는데 자연스럽게 그런 자리들이 없어지니 엄마도 친척동생들도 기운이 없어 보였어요. 그래서 집에 있는 모든 차와 과일을 활용해서 수작업 카페 메뉴판을 만들고 담당자를 정하여 야매 요가 클래스와 만들기 시간을 가졌답니다. 각자 닉네임을 만들어 카페 놀이를 하고 장난치듯 하루를 보냈어요. 일상을 환기하게 하는 시간, 정겨운 사람들과의 시간을 기획하는 것이 좋아요. 


첫 기획 이후로도 지금까지 요안나님이 기획자로서 일을 계속하게 되는 동력이 무얼까요? 처음 해보고 나서는 사실 그만둘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이요안나 : 기획은 저를 작업실 안에 매몰되지 않게 만들어줘요. 창작 작업을 하면 계속 저의 공간 안에서, 책상 안에서 딱 그만큼의 생각과 작업에 몰두하게 됩니다. 옆을 볼 수 없게 차 안대를 씌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가거든요.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거죠. 작업은 뜬구름을 잡는 일이니까요. 가끔 작업만 하다가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만날 때 내가 너무 동떨어져있구나! 하는 감각에 깜짝깜짝 놀라곤 해요. 그래서 기획이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스스로를 현실에 노출시키곤 합니다.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예술가가 많고, 대체로 창작 작업에 대해 마음이 후한 사람들이어서, 그 사람들과 얘기할 때는 세상이 마냥 아름답게 느껴지곤 하거든요. 세상은 흥미로운 것으로 가득 차 있고, 보고 만져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거죠. 그런데 조금만 다른 영역의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런 제 상태가 문제라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완전히 다른 환경에 노출되는 것 같은 감각을 느낍니다. 그게 신기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어요. 그래서 기획을 통해 저 스스로의 위치를 자꾸만 바꿔보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몽상과 현실 속에 각각 던져보는 거죠. 저에게 기획은 온탕과 냉탕, 낭만과 자본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일이에요.   


기획은 저에게 계속 반대쪽의 생각을 해보게 만듭니다. 여기서 보았을 때 나는 누구고 무얼 하고 있는가? 저쪽에 서서 보았을 때 아까의 나는 어느 위치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앞으로 창작을 계속하려면 이 운동장 안에서 나는 무얼 해야 하는가? 이 운동장에 같이 선 사람들은 청팀 혹은 백팀은 각각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기획은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게 해요. 


창작자로서 출발하셨고 창작자로서의 삶이 요안나님의 중요한 부분인 것 같은데요, 창작자에서 기획자로 위치를 바꾸셨을 때는 느낌이 어떠세요. 

이요안나: 창작자인 저는 작업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창작자로 살 때는 삶이 되게 아름다워요. (웃음) 한마디로 그냥 스케치 북에 색연필만 줘도 한 달 내내 놀 수 있을 것 같고, 산책만 다녀와도 행복해져요. 그런데 사회에 나와보면 그것만이 중요한 게 아닌 거죠. 나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창작활동이라고 한다면 기획은 내후년 혹은 다음 스텝을 어디로 디딜 것인가?, 내가 속한 이 프리랜서의 삶이  50년 뒤에는 어떻게 바뀔까를 질문하고 생각하게 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기획자로서의 작업은 창작자로서의 본인을 사회라는 좌표 속에 놔 보는 작업 같은 건가요? 

이요안나: 네.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기획자로서도 창작자로서 재미와 같은 걸 느끼신 적도 있나요? 작업의 희열 같은 것 말이죠. 말씀하시는 걸 듣고 있으면 재미보다는 긴장감이나 우려가 느껴지는데요. 

이요안나: 기획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긴장감과 우려였어요. 이렇게 작업만 해서는 먹고살 수 없구나. 당장은 먹고살아도 내년 내후년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여전히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기획자로서의 재미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재미를 느낀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은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그 부담감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어요. 그랬더니 조금씩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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